*2016년에 읽은 책이지만 지금 시점에서 다시 기록해둔다. 이 글은 1Q84 작품 자체에 대한 내용보다는 그 영문판에 대한 내용이 더 많을 것 같다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가 일본에서 출간된 것이 2009년이고, 국내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출간 당시 일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인기였으며, 하루키의 대표작으로도 꼽히게 되었다.
당시에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으나 미루다 보니 시간이 흘렀고, 결국 2016년이 돼서야 읽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읽은 것은 영문 번역판이다. 일본어로 된 일본 작가의 작품을 영문으로 번역된 것을 읽다니 제정신인가 싶지만 나는 가끔 그런 짓을 한다. 특히, 국내에 번역되어 있지 않은 작품 또는 절판된 경우에 그렇다.
영문판으로 읽은 이유는 이 책의 한국어 번역본이 전자책으로 나와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전자책에 대해 부정적이어서 그의 작품들 중에 전자책으로 나온 경우가 별로 없었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고, 번역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후에는 전자책으로도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 작품의 경우에는 2020년이 돼서야 전자책으로 나왔다.
이 작품은 2011년에야 영문 번역본이 나왔는데 그때 킨들용 전자책도 같이 나왔다. 아무래도 미국은 전자책 이용 인구가 많기 때문에 감안한 것 같다. 당연히 아마존에서 구입하려고 했지만 우연히 국내 서점사인 YES24에서도 판매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포맷은 다르지만 동일한 책이었다. 그래서 YES24에서 구매해서 크레마 카르타로 읽었다. 아마존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그게 더 저렴했기 때문이다. (순전히 그런 이유였다)
3권 합본이라 분량도 전자책 기준 거의 2000페이지에 이를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이고 (국문 번역본 종이책도 그 정도 분량인 것 같다), 영문이라 부담되는 점도 있어서 읽을까 말까 고민했었다. 나도 '읽어야 할' 또는 '읽고 싶었던' 많은 책들이 쌓여 있는 지라 이걸 읽기 시작하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기에.
그럼에도 호기심에 읽기 시작하자 계속 읽게 되었다. 솔직히, 처음 읽었을 때는 '이게 뭐지?' 싶었다. 그러고 보니 하루키의 책은 오랜만에 읽는 것이었다. 그의 스타일을 잊고 있었던 걸까. 하지만 뒷내용이 궁금해서 계속 읽게 됐고, 약 2주일 만에 다 읽었다.
영문으로도 하루키 특유의 문체와 느낌을 잘 살린 것 같았다. 마치 하루키가 직접 영문으로 작성한 듯한 문체. 번역도 상당히 매끄러웠다.
번역자는 제이 루빈(Jay Rubin)과 필립 가브리엘(Philip Gabriel)의 공동번역으로 되어 있었다. 알아보니 두 사람 모두 하버드대 일문학과 교수였는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을 주로 번역했었고, 그 외에도 여러 일본 문학들을 번역했다고 한다. 하루키에 대해서는 미국 내에선 거의 독보적인 존재들. 그래서였구나, 하루키의 느낌을 영문으로 그대로 살릴 수 있었던 것이.
그런데 그 말도 이상하다. 나는 일본어를 모르기 때문에 하루키의 작품들을 국문 번역본으로 밖에 읽어보지 못했다. 그러니 하루키의 원래의 문체라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알까? 그래 봐야 번역본들끼리의 비교일 텐데 말이다.
특이한 점은 1, 2권은 제이 루빈 교수가, 3권은 필립 가브리엘 교수가 번역했다. 그 사실을 몰랐을 땐 못 느꼈지만, 그 사실을 알고 나자 두 사람의 번역 간 미묘한 차이가 느껴지는 듯했다. (뭐라 말할 수는 없음) 그런데 원래 이 작품이 2권으로 완결을 내려고 했다가 나중에 3권이 추가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달라진 것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번역했더라도 크게 상관은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어디선가 본 글인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일본 원서와 영문 번역본을 비교해보면 아무래도 일본 원서와 영문 번역본 간에 뉘앙스가 다른 부분이 많다고 한다. 그건 두 언어 간의 차이 때문일 수도 있는데 이 두 사람은 영어 쪽에 좀 더 중점을 두고 번역을 했다고 한다.
영어를 사용하는 독자들이 좀 더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번역하는 것에 대해 제이 루빈 교수는 '나는 하루키의 작품을 다시 창작한 셈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읽은 것은 하루키의 작품이 아니다'라고도 했다고 한다. 물론 좀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그만큼 번역하는 과정에서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을 국문 번역본으로는 안 읽어봤고 영문으로 읽은 내용만 기억하고 있기에 그냥 그게 하루키의 작품이라고 믿고 있다. 다만, 아무래도 정서상의 차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루키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성적인 표현 등은 순화된 것 같기는 하다. (그 역시도 국문과 비교를 할 수가 없어서 그냥 짐작일 따름이다)
그래서였던 것 같다. 영문으로 된 원서보다는 좀 더 술술 잘 읽힌 것이. 어려운 단어나 표현도 많지 않아서 고등학생 영어 실력 정도면 무난하게 읽을 수 있을 듯. 또한 볼드체, 이탤릭체, 큰따옴표 등 다양하게 구분해서 쓰고 있어서 혼동을 피하게 하였다. 앞서 말한 대로 분량이 많기에 그 부담감만 이겨내면 될 것 같다.
줄거리는 인터넷을 찾아보면 나올 테니 굳이 여기에 다시 적지는 않겠다. 사실 줄거리가 좀 복잡하기는 하다. (읽은 지가 오래돼서 그런 것도 있다) 하루키의 소설이 그런 것들이 많지만, 두 개의 시간 또는 공간이 따로 진행되다가 어느 시점에서부터 합쳐져서 같이 진행된다. 그 가운데 여러 등장인물들이 나오는데 그 등장인물들은 처음엔 별개였다가 또 연관성이 밝혀지게 된다. 많은 인물들이 나오지만 다 무관한 사람들은 아니었던 것.
알려져 있다시피 이 책의 제목인 '1Q84'는 여러 가지 중의적인 의미가 있다. 먼저, 조지 오웰의 <1984>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며, 작중에서 1984년의 시점이지만 그 '이세계'에서는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니 'question mark'를 의미하는 'Q'를 넣어 '1Q84'라고 하자라는 내용이 있다. 일본어로 '9'와 'Q'는 '큐'로 같은 발음이 되기도 하고, '9'와 'q'가 비슷한 글자라는 점도 착안했을 것이다.
<1984>라는 작품과의 연관성도 작품 내에서 드러난다. 아무래도 종교집단인 '선구'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인 것 같은데 이 단체와 리더의 비밀에 대해서도 작품 내에서 조금씩 밝혀진다. 그 정체를 알아가는 것도 이 작품의 재미인데, 다 읽고 나면 왜 <1984>를 염두에 두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1984>와 빅브라더는 작품 내에서 직접 언급되기도 한다.
뭐라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참 독특하고 이상하면서도 흥미로운 작품이다. 다만 반복되는 표현과 곳곳에서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 튀어나오는 하루키의 개인적인 생각 같은 것들, 그리고 너무 잡다한 것들이 '이거 분량 늘리려고 이렇게 넣은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긴 했다.
그것들이 내용 전개 상 복선이 되기도 하고, 뒤에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알지만, 그리고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도 알지만 그런 부분을 읽는 건 지루함을 참는 고역이기도 하니까.
영문판이라 더 그랬을까? 한글판도 마찬가지였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재밌었다. '역시 하루키!'라는 생각이 들만큼. 재미있는 작품은 어떤 언어로 읽어도 동일한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론 번역이 중요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