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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Nov 25. 2022

베른하르트 슐링크 <책 읽어주는 남자>


* 2009년에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상당히 인상적으로 보았다. 원작을 읽은 것은 2017년인데 책 역시 영화 못지않게 인상적이었다. 이 책에 대한 소감을 적으려다가 문득, 주인공인 한나의 입장에서 책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는 나의 느낌도 포함되어 있다.


아래의 글은 내가 가상으로 써본 한나의 편지이자 유언장이다. 강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주의를 요한다.




내가 다시 세상에 나갈 날이 다가왔다는 것은 내게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과 같다. 마음을 먹기에도 오래 걸렸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려니 두려움이 앞선다. 이 늙고 왜소한 몸으로 다시 세상에 나간다 한들 누가 날 반겨줄까? 미하엘? 아니다. 그는 이미 내게 충분히 실망을 했고 또 더 이상 그에게 기댈 수도 없다. 그리하여 나의 선택은 한 가지뿐이다. 스스로 나의 목숨을 끊는 것.


내 삶은 참으로 외로웠다. 가족도 친척도 없이 홀로 살아왔다.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해 읽고 쓰는 법을 모른다. 그것이 평생의 한으로 남았다. 하지만 남에게 밝힐 수 없는 비밀이다. 불이익을 당할 지언 정 나는 그것을 숨겨야만 했다. 그것 때문에 나는 단순한 일들을 주로 했었다. 글을 읽고 쓸 필요가 없는 일들. 하지만 그리하여 결국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왜 그랬느냐고 물어보고 싶을 것이다. 당시에는 나처럼 문맹이 많았기에 부끄럽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 가진 것도 없는 내게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과 같은 것이었다. 마치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처럼, 그것은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내 것이 되지 못했다.


처음부터 숨기려 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약간의 부끄러움이었다. 사람들의 멸시와 조롱이 두려웠다. 그러나 그러한 비밀이 노출될 위험이 반복될수록 나는 점점 더 나 자신에게로 숨었고, 다른 방법으로 교묘히 위기를 모면했다. 아니, 점점 더 세상에서 밀려나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을 속여왔지만 이미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상황을 감내할 수가 없었다. 


나치 친위대로 들어가 유대인 수용소의 감시원 역할을 할 당시, 고달프고 지루했던 감시원 생활을 견디기 위해 나는 어린 소녀들을 뽑아 책을 읽게 했다. 어린아이들은 나의 부탁을 의심 없이 받아들여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라도 책을 읽고 싶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아우슈비츠로 보내져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보진 못했다. 그 아이들은 나의 비밀을 알고 있었을까? 어쩌면 나는 아이들이 나의 비밀을 눈치챌까 두려워 그렇게라도 비밀이 감춰지는 것에 대해 안도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잠시 동안의 즐거움이었을 따름이어도.


수용소를 옮기는 '행군' 도중 발생한 '비극' 이후 다른 감시원들끼리 입을 맞춘 후 보고서를 적어내는 것을 보았다. 무슨 내용인 지는 모르겠으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별 문제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감시원이었고 시키는 대로 했을 따름이니까. 하지만 몰랐다. 그게 지금의 결과로 이어질 줄은. 그들 역시 내가 문맹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어찌 모를 수가 있겠는가. 속은 것은 나였다. 


그리고 전쟁이 끝났다. 여전히 나는 살기 위해 이런저런 일들을 했다. 전차에서 요금을 받는 일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그 소년을 알게 되었다. 나를 찾아온 소년. 미하엘 베르크. 나는 그가 나이를 속인 것도 알았다. 열일곱 살이라기엔 그는 너무 앳돼 보였으니까. 그의 거짓말도 티가 났다. 그는 사춘기 소년, 풋내기였다. 그럼에도 그의 나이를 부정하고 싶었다. 그깟 나이 차이 좀 줄인다고 해서 죄의식이 덜해지는 것도 아닌데도.


그가 나를 향해 육체적 욕망을 가졌던 것처럼 나 역시 그에게 그러했다. 그를 사랑했다. 너무나 외로웠기에 그를 거부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건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다. 처음부터 그를 온전히 돌려보냈어야 할 것을. 오래전에 소녀들을 아우슈비츠로 보내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처럼 그 소년에 대해서도 그러한 죄책감을 별로 느끼지 못했던 걸까.


그러나 우리는 정말 사랑했던 것일까? 나는 미하엘이 나를 사랑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가 나를 떠날까 봐 두렵기도 했다. 그는 젊고 또 앞날이 창창하다. 나 같은 존재에게 얽매어 있을 존재가 아니다. 그는 언젠가는 떠날 것이다. 그러기 전에 내가 먼저 떠나리라. 그러나 그 계기가 관리직으로 승진하게 됨으로써 이루어질 줄은 몰랐다. 어차피 떠나게 될 것이라면 그게 좋을 듯했다.


몇 년 뒤 우리는 재회했다. 전범 재판 현장에서였다. 나는 피고인석에 있었고, 그는 방청석에 있었다. 그가 매번 찾아왔다는 것을 알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그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가 있는 쪽의 시선은 피했다. 


예전의 비극의 보고서가 증거로 나왔을 때, 나는 마지막까지 글을 읽을 줄 모른다는 점을 숨기기 위해 나의 범행을 시인했다. 설사 그 보고서 내용을 알았더라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어차피 세상에 의지할 것도 바랄 것도 없었다. 내가 그를 떠난 뒤 세상은 더 비참하게 느껴졌으니까.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종신형이 선고되고 교도소에서 지내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저지른 일들이 그렇게 극악무도한 일이었을까? 단지 살기 위해서였고, 어쩔 수 없어서였는데 너무 가혹한 건 아닐까? 다른 감시원들의 죄까지 모두 내가 뒤집어쓰게 된 셈이다. 재판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나는 여전히 그 죄를 모두 뒤집어쓰게 될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러한 중에 미하엘에게서 녹음된 테이프가 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꽤 많은 분량이 오기 시작하더니 꾸준하게 왔다. 그걸 듣고 책을 빌려 읽으며 글을 읽는 연습을 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글을 읽고 쓰게 됐다. 그러자 세상을 마주하게 될 용기도 점점 생겨났다.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그리고 나치가 저지른 일들, 진실을 알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낭독된 음성 이외에 자신에 대한 얘기는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는 어떤 생각인 걸까. 아직도 나를 원망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한 의문은 그를 만나게 됨으로써 확신으로 바뀌었다. 


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나는 아마도 내일 아침에 시체로 발견될 것이고, 그 소식은 그에게 전해질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는 모르겠다. 나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죽음으로 대신하며, 작은 배상을 남겨둔다. 나의 희망대로 쓰일 수 있기를. 그에게 남기는 마지막 바람이다.


나의 과거와, 나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과, 그리고 나의 사랑. 이제는 모두 안녕. 


                                                                                                                            - 한나 슈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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