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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Jun 15. 2023

공부란 무엇일까?

누구나 학창 시절을 보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법정 의무교육은 중학교까지지만 사실상 고등학교까지는 대부분 다니고 있고, 대학 이상의 학력도 보편화되었습니다. 그러니 짧게는 12년, 길게는 그 이상의 시간을 학생으로서 보내게 됩니다.


학생은 공부를 합니다. 학생의 정의 자체가 '배우는 사람'이니 배우는 것이 당연하고, 배우는 것을 '공부'라고 칭합니다. 


또한 '학습'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배우고 익히는 과정. 사람으로서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무엇이 되었든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그러한 학습의 범위는 광활한데, 단순히 교과과정으로서의 학습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에 공부는 학생 시절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 해야 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공부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오래 공부를 했는데도 말이죠. 우리는 공부의 본질적 의미는 모른 채 맹목적으로 시스템에 따라 공부라는 것을 해왔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공부와 학습에 대응하는 영단어를 찾아보면 공부에 대응하는 영단어는 study, 학습에 대응하는 영단어는 learn입니다. study와 learn의 차이에 대해서 찾아보니 study는 배우거나 연구를 하고 있는 과정을 의미하고, learn은 study에 의해 지식이 생겨난 결과를 의미하는군요.


즉, 공부는 배우는 과정, 학습은 배움의 결과라고 볼 수 있을 듯해요. 지식이 내 것이 된 것이겠지요. 또는 관점에 따라 공부는 단기적, 학습은 장기적인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고, 학습은 공부의 연속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공부는 미완의 의미가 더 크고, 그렇기에 여전히 어떠한 연속성 상에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저도 공부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얘기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제가 생각하는 공부란 '훈련'입니다. 다른 이들의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드는 훈련, 그리고 내가 알아낸 지식을 다른 이들에게 알리는 훈련인 것이죠. 그것을 위해 내 안에 지식의 체계를 쌓아가고 이를 기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갑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배움이고 공부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본능에 깃들어 있는 것들을 제외한 모든 것이 다 지식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으니까요. 동물들도 그러한 학습과정을 거치기는 하나 인간처럼 고차원적인 것은 아닙니다. 


세상을 본인의 경험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기에 이미 정리되어 있는 기존의 지식을 습득해서 그것을 내 안에서 정제하는 것이죠.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하지만 공부는 인생에서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평가를 위해서, 입시를 위해서 억지로 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죠. 


그런데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공부가 제일 쉬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대학생 때까지의 공부는요. (고백하자면, 저는 어려웠습니다. ㅋ)




토머스 헉슬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이고 또 평생의 모토로 삼고 있는 말입니다. 


Try to learn something about everything and everything about something


우리는 고등학생 때까지는 'something about everything'을 위해 배우고, 대학생 이후에는 'everything about something'을 위해 배우게 됩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전자는 '교양', 후자는 '전공'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 두 가지가 모두 중요하지만 저는 교양 쪽에 더 비중을 두고 싶네요. 사실 우리가 인간으로서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이 교양의 범주에 포함되니까요. 에드워드 윌슨교수나 최재천교수도 교양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었죠. 그래서 저도 꾸준히 독서를 하려고 하고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지식탐구의 즐거움은 나이와 관계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단편적인 지식들의 저장이 아니라 습득된 지식들 간의 연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이 체득되다 보면 그것들이 서로 연결되고 맞물리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될 때도 있고, 서로 다른 지점에서 출발한 것들이 같은 맥락으로 통하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전혀 다른 학문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만나게 되는 것도 알게 되죠. 그러한 것을 '메타인지'라고 하는데 그것이 타고난 능력인지 후천적으로 길러지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둘 다 이긴 하겠죠. 


이러한 메타인지의 정의는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결국 공부는 그러한 메타인지 능력을 발달시키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듯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기존 지식을 이해하여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우선이겠죠. 그것이 '안다'는 것일 겁니다. 또한 사고의 폭을 넓히고 생각의 유연성을 기르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한 것의 기반이 되는 것이 지식체계이기도 하고, 시야를 넓혀주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함으로써 '통섭적 사고'도 가능해질 수 있겠죠?


그러려면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는가도 알아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구별조차 없이 그냥 안다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죠. 정작 아는 것은 없으면서요.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했던 것이기도 하겠죠. 그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제 아이가 '공부는 왜 해야 해요?'라고 물어보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장황하게는 설명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학생이니까 해야 해', '학생의 본분이 공부니까'라는 답은 안 할 것입니다. 저는 아마도 '세상을 더 슬기롭고 즐겁게 살아가기 위해서'라고 할 것 같아요. 그리고 '더 많은 기회를 얻기 위해서'라고 덧붙일 것 같네요. 


세상에 공부보다 재밌는 것들이 많지만 그러한 것들은 대부분 자극적인 것들이고, 그러한 것들조차 공부의 범주로 포함시킬 수 있기에 공부는 끝이 없는 것이라고요. 


설사 그것이 체득되어 어떠한 결과로 나타나지 못하더라도 저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공부는 반드시 만족할만한 아웃풋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만약 I/O만 본다면 너무 숨 막히잖아요. 결과가 전부가 아니니까요. 그 과정에서 재미를 느낀다면 그걸로도 된 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p.s.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계의 현실은 암울합니다. 공교육이나 사교육의 목적과 방향은 어디로 향하는 걸까요? 사실 우리는 고등학생 때까지 많은 것들을 배웠고, 그것들만 제대로 알았더라도 살면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것들이 많았을 거예요. 다만 시험을 위해서만 공부를 하고, 교사들도 그렇게 가르치다 보니 재미도 없고 머리에 남는 것도 없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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