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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Dec 13. 2022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야간비행>


예전에 <어린 왕자와 떠나는 인문학 여행>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은 생텍쥐페리의 대표작인 <어린 왕자>에 대한 내용이지만, 그의 생에 대한 내용도 많아 전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의 삶에 대해 실망스러운 점도 있었지만 (인간적인 면도 당연히 있겠지) 아무튼 이 책을 통해 그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사진들도 많이 있었는데 특히 그가 몰았던 비행기, 항로 지도, 비행 면허증 등의 사진도 있었고, 어쩌면 <어린 왕자>의 모티브가 되었을 수도 있는, 리비아 사막에서 비행기가 고장 났던 사진도 있었다. 그리고 <야간비행>에 대한 소개도 간략히 있었다.


비행기 조종사로서의 경험이 <야간비행>에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이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는 아르헨티나 야간비행 항로 개척에 참여했었다고 한다.


이 책은 짧으며, 그 수많은 비행기록 중에 어느 한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왜 이 책을 썼을까? 야간비행의 위험성을 알리고 싶어서? 그 개척자들의 희생을 알리고 싶어서?


먼저 이 책의 주인공은 누구일까부터 생각해보면, 조종사인 파비앵과 그의 상사인 리비에르를 들 수 있다. 파비앵은 실제로 조종을 하지만, 리비에르는 상황실에서 전체 비행을 컨트롤한다. 리비에르는 목표지향적이고, 조종사들을 위험으로, 심지어 죽음으로 내모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그의 내면의 목소리가 많이 나온다. 양가의 감정을 드러내기 위한 것일 수도 있겠다.


'나는 정당한가 부당한가? 나는 알 수 없다. 내가 엄격하게 굴면 사고는 줄어든다. 책임이란 개인에게 있지 않다. 그것은 모든 이에게 적용되지 않으면 아무에게도 적용되지 못하는 막연한 힘과 같다. 내가 정말 정당하게 군다면, 야간비행은 매번 죽음의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사랑받기 위해서는 동정심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충분해. 하지만 나는 동정심을 절대로 내색하지 않고 감추지. 나도 인간적인 부드러움과 우정에 둘러싸이고 싶기는 해. 의사는 직업상 그런 것을 접하겠지. 그러나 내가 다루는 건 사건이야. 사건에 잘 대처할 수 있도록 저들을 단련시켜야 해. 나는 매일 저녁 내 사무실에서 비행일지를 앞에 놓고 이런 야릇한 법칙을 깨닫지. 내가 방심하거나 규칙대로 잘 굴러간다고 그 흐름을 따라가게 내버려 두면, 이상하게도 사건이 터져. 마치 내 의지만이 비행기가 비행 중 파손되거나 우편기가 폭풍으로 인해 지연되는 일을 막을 수 있다는 듯이 말이야. 그래서 가끔은 나도 내 힘에 놀라게 되지.'


이로 인해 야간비행 항로를 개척하고 이를 정착시키지만 당시 항공기술로는 상당히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대부분의 것들을 조종사의 시각과 판단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에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 특히 악천후에서는 그야말로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리비에르는 그것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 항로는 아름답지만 가혹해. 우리에게서 많은 사람을, 그것도 젊은이들을 빼앗아갔지. 이렇게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지만 얼마나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지!' 그렇지만 리비에르에게는 목적이 모든 것에 우선했다. 
그는 저울추처럼 자신의 내면에 응축된 힘을 감지했다. '내 생각이 옳아, 나는 승리할 거야. 그게 당연한 귀결이야'라고 리비에르는 생각했다. 사람들이 어떤 위험도 피할 수 있는 완벽한 해결책을 요구할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법칙은 경험에서 나옵니다. 법칙을 안다고 해도 경험을 능가할 수는 없습니다." 


이 책에서 파비앵의 운명은 정확하게 그려지지 않았지만 그 결말을 짐작해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 단순하게 마무리되어서 당혹스러운 면도 있다. 그에 대한 리비에르의 반응 또한 그렇다. 그것을 단지 '대를 위한 소의 희생' 정도로 간주할 수 있는 문제일까. 한 인간의 영웅적 서사일까?


단 한 번이라도 출발을 중단시켰다면, 야간비행의 명분은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내일이면 그를 비난할 마음 약한 사람들을 앞질러 리비에르는 그날 밤에도 또 다른 승무원을 출발시켰다.

승리...... 패배...... 이런 단어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 생명은 이런 이미지들의 저 아래쪽에서 이미 새로운 이미지들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파비앵이 비극을 좀 더 강조하기 위해 아직 신혼임을, 그리고 그의 아내도 등장시켰다. 하지만 그 역시도 비중이 낮아 결국 이 책의 전체적인 밸런스가 맞지 않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밤'이라는 단어와 '비행'이라는 단어는 낭만적으로 느껴지고 설레기도 한다. 그건 현재의 야간비행은 그런 위험성이 상당 부분 해소되어 안전하게 다닐 수 있고 또 일상화되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리비에르나 파비앵 같은 개척자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했지만.


이 작품에서도 밤 비행의 풍경이 아름답게 묘사된다. 야경은 아무래도 지상의 불빛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기에, 그러한 인공적인 모습이 자연의 모습을 압도한다. 사실 야간엔 자연 풍경이랄 것이 달이나 별, 구름 등을 제외하면 거의 없으니까.


어둠이 검은 연기처럼 피어오르더니 어느새 계곡을 가득 채웠다. 이제는 계곡과 들판을 구분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미 마을에 불이 들어왔고, 그들은 별자리처럼 빛으로 서로 인사를 나누는 듯했다. 그 역시, 손가락을 움직여 자신의 표지등을 깜빡이는 것으로 마을에 화답했다. 바다를 향해 등대를 밝히듯 집집마다 거대한 어둠에 맞서 자기 별에 불을 밝혀, 대지는 서로에게 보내는 환한 신호로 가득했다. 사람들의 삶과 관련된 모든 것이 이미 반짝이고 있었다. 파비앵은 이번에는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마치 정박지로 들어가는 것처럼 느리고 아름답게 이루어지고 있음에 감탄했다.


그러한 묘사가 아름다운 것은 작가의 필력 때문이기도 하다. 생텍쥐페리의 문장은 <어린 왕자>를 비롯해서 다른 작품들에서도 보였지만 (문체는 조금 다르지만) 상당히 아름답다. 그 비극마저도 아름답게 그리고 있어서 마지막 부분은 마치 '승천'하는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의 놀라움은 극에 달했다. 너무 밝아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는 몇 초간 눈을 감고 있어야 했다. 그는 밤에 구름이 그렇게 눈부시게 밝을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보름달과 모든 별자리들이 구름을 찬란하게 빛나는 파도로 바꿔놓았다. 

...

그렇지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어둠의 손들로부터 그는 풀려났다. 마치 잠시 혼자 꽃밭을 걸을 수 있게 된 죄수처럼 그를 포박하던 줄이 풀린 것이다. 


누군가의 행복은 누군가의 불행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불행은 더 완벽함을 향해 나아가게 한다. 또한 그 불행이 내게 닥친 것이 아니기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여러 감정과 카타르시스를 함께 던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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