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chinko> 영국판 원서 독서 후기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올해 가장 핫했던 책을 꼽아보라면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애플 TV에서 드라마로 방영된 영향이 컸을 텐데, 그러한 화제성을 고려하더라도 이 책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하지만 그러한 반응은 중간에 번역본 출판사가 바뀌는 과정을 통해 더 가열된 측면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인기가 있는데 절판된다고 하면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까.
이 책은 기존에 문학사상사에서 번역본이 나와 있었다. 미국 등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긴 했지만 국내에서는 그렇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듯싶었는데 드라마 방영이 되면서 인기가 올라갔다. 그러나 올해 중반 판권의 계약이 만료되어 재연장을 하려 했지만 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원작자가 번역본의 번역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고, 미국 내 판권 관리업체가 이를 거절했다고도 한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애가 탈 노릇.
결국 번역본 출판사가 바뀌어 인플루엔셜과 계약이 되었고 새로운 번역을 거쳐 하반기에 다시 책이 출판되었다. 그래서 이 책의 번역본은 두 가지가 존재한다.
이 책을 읽고 싶었으나 출판사가 바뀔 거라는 얘기에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고, 정작 새로운 번역본이 나왔을 때는 읽기를 주저하게 되었다. 왠지 조금 기다리면 구독서비스에 올라오지 않을까 싶어서. ('윌라'를 제외하곤 현재까지 구독서비스에 올라오진 않았다)
그러다가 교보문고에 갔더니 원서 할인판매를 하고 있는데 이 책도 있기에 사 왔다. 내가 구입한 것은 영국판이다. (표지에 한글로 된 '파친코'라는 글자가 인상적이다)
굳이 원서로 읽을 생각은 아니었지만 저렴해서 충동구매를 한 셈이다. (여담으로, 나는 간혹 책들을 원서로 읽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원서가 번역본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그랬다)
1주일 정도에 걸쳐서 읽었다. 전체 분량이 부록 합쳐서 550페이지 정도 되고 본문만 530여 페이지 정도라 다소 부담이 되긴 했지만 내용이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더 빨리 읽은 듯하다. 번역본으론 두 권으로 약 800페이지 정도의 분량이라고 한다.
이 책의 영어는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단어나 문장표현이 고등학교 영어 정도 수준이라 원서를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작가가 한국계라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이민진작가는 7살에 미국으로 이민 가서 한국어를 거의 못하고 영어만 쓴다. 게다가 예일대 역사학과 출신에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를 하기도 했었기에 영어 실력에 대해선 의심할 바가 없다. 오히려 평이한 문장을 사용했기에 더 읽기 쉽고 대중성이 있지 않았을까.
이 책은 전체가 3부로 되어 있다. 1부는 '고향'으로 1910~1933년, 2부는 '모국'으로 1939~1962년, 3부는 '파친코'로 1962~1989년까지다. 거진 80여 년간, 4대(더 정확하게는 5대)에 걸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기에 이야기도 많고 등장인물도 많다. 특히 뒷부분으로 갈수록 등장인물이 많아져서 다소 산만한 느낌도 들고 재미가 반감되는 느낌도 있다.
이에 대해 작가는 일부러 인물들을 많이 등장시켰다고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 가려진 인물들을 더 많이 조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작가가 역사학 전공이어서 그런지 역사에서 전면에 드러나지 못했던 민중들의 삶에 관심이 많았고, 다양한 삶의 모습을 통해서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또한 재일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도 등장시켜 자이니치에 대한 그들의 시선도 보여준다.
작가가 이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예일대 재학시절이던 1989년이다. 당시 일본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을 통해 '자이니치'의 현실에 대해서 알게 된 작가는 이를 작품으로 써보려 했는데 실제로 작품을 집필하게 된 것은 1996년부터였고, 2002년에 2부였던 '모국'의 일부를 "미주리 리뷰'라는 곳에서 출판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2007년경 남편이 일본 주재원으로 가게 되자 함께 일본으로 가 4년간 거주하며 자료를 수집하고, 자이니치들을 인터뷰하면서 2부를 다시 쓰고, 작품을 다듬어 총 3부로 구성된 이 작품을 완성하게 되었다. 어쩌면 재미교포로서의 본인의 경험이 이 작품에 더 애착을 갖게 한 것은 아닐까.
이 작품에서는 선자 (원서에서는 'Sunja'인데 '순자'인자 '선자'인지 헷갈렸으나 번역본에서 '선자'라고 되어 있다기에 그렇게 한다)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연대기처럼 시간순으로 수직축처럼 이어지고, 그 가족의 주변인물들의 이야기가 수평축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본에서의 자이니치들의 현실, 차별받고 목숨의 위협마저 받았던 삶을 그린다.
또한 양진, 선자, 경희 등을 통해 당시 여성들의 삶도 자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강인하면서도 여전히 남녀차별 속에 살아야 했던 이들의 삶은 자이니치로서의 삶의 무게를 가중시켰다. 특히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경희의 희생정신은 정말 소설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은 정도였다.
반면 일본인 여성들의 삶의 모습은 그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수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여성들의 모습도 있었고, 시대에 반항적이고 거부하는 여성들의 모습들도 있었는데 이를 통해 작가는 일본의 전통적인 여성상과 혼란스러운 시기의 일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작품에서는 '전지적 서술자 시점' 혹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전개가 된다. 이는 전통적인 소설 서술방법이긴 하지만 작가는 의도적으로 그러한 관점을 택했는데 이 역시도 각 개개인의 심정을 더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이해하기 쉬운 반면 작품의 긴장도나 밀도는 다소 반감되는 측면이 있다.
또한 이 작품 내에서는 한국 근현대사의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작품 도입부가 일제강점기 시작 시점이고, 중간에 만주전쟁, 태평양전쟁 등으로 뛰어넘었다가 해방 후 일본의 재건기, 발전기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3.1 운동을 비롯한 독립운동, 무장투쟁, 종군위안부 문제, 원폭 피해자 문제, 재일조선인(재일한국인도 일부 포함)의 북송문제 등도 언급이 되지만 자세히는 나오지 않는다. 한국인들이라면 그런 내용들을 바로 캐치할 수 있겠지만 외국인들은 그러한 부분까지 알기는 어려울 것 같다.
더구나 작품 내에서의 기간이 길다 보니 아무래도 작품의 구조가 다소 엉성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이는 작품 내에서의 각 사건의 연결고리가 다소 성기게 되었기 때문인데 분량에 비해 너무 많은 내용을 다루고자 한 결과인 것 같다. 그나마도 시간을 뛰어넘으며 몇 가지 중심적인 내용에 주력했는데도 그러했다.
작가의 입장에서는 한국사 및 일본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지만 그 선택에서는 인터뷰이들의 증언이 중요한 요소가 되었을 것 같다. 사실 개인의 삶에서의 중요한 사건들이 반드시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실들과 일치하지는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극한 상황에서 너무 쉽게 넘어가는 측면도 있었다. 선자나 주변인이 겪는 문제는 대체로 한수를 통해 쉽게 해결되는 듯 보인다. 요셉의 빚을 갚을 때도(간접적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을 때도, 오사카에 폭격이 가해지기 직전에도, 노아가 대학 등록금을 마련할 때도 한수가 등장했다. 한수가 해결사인가? 그런 것도 긴장도를 떨어뜨리는 요소가 되었을 것이다.
작품에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기독교적인 분위기 (중요한 인물들의 이름이 성경에서 따온 것이고, 이삭의 직업이 목사인 것, 선교사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등)도 독자에겐 반감을 일으킬 수 있는 요소이지만, 오히려 이로 인해 미국이나 외국에서는 더 인기가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동양을 근대화시킨 것이 서양, 선교사들이라는 시각을 보여준다고 할 수도 있을 테니.
그런데 이 작품의 제목이 왜 '파친코'일까? 물론 파친코는 작품 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는 일본 내에서 마땅하게 자리를 잡거나 사업을 하기 어려운 재일한국인들이 그나마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사업 가운데 하나였고, 그 시장이 자동차 산업보다도 더 크다는 언급도 작품 중에 나온다.
능력이 있는 사람들도 자이니치라는 이유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차별을 받고, 결국엔 파친코라는 사업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도 보여주고자 했다. 그 대표적인 모습이 노아와 솔로몬의 경우일 것이다. (노아의 경우엔 조금 다른데 이는 출생의 비밀 때문에)
반면 고로나 모자수처럼 파친코로 성공한 이들의 모습도 나오는데 이를 통해 파친코가 그들의 인생을 함축적으로 나타냄을 보여주려 한 것 같다. 모자수의 독백(인지 생각인지) 중에 '파친코가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렇지만 일본에서도 파친코 사업은 부정적으로 보인다. 모자수처럼 정직하고 투명하게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얼마나 그랬을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사기에 가까운 운영을 할 수도 있고, 범죄조직과도 연계된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 내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 한수는 야쿠자로 묘사되는데 (일본인 대부업체 사장의 눈에 들어 사위가 된 경우지만 정확하게 야쿠자인지는 모르겠다) 그는 여러 사업을 벌이지만 파친코 사업은 하지 않는 것 같다. 사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작품 후반부의 주인공격인 솔로몬의 경우에는 부유했던 모자수 덕분에 외국인학교를 다니며 미국 유학까지 다녀왔기에 그러한 차별로부터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었겠지만 결국은 그러하지 못했다. 그 역시도 주기적으로 외국인 등록을 해야 하고, 한국 여권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자이니치 3세라는 그러한 현실을 부정하지 못하고 받아들이는데 그러한 가운데 일본, 일본인에 대해서도 우호적인 모습도 보인다. 이에 대해서 약혼자였던 피비와 트러블도 일으키면서도 말이다. 왜 그랬을까? 어쩌면 이것이 지금 자이니치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작품을 추천할 수 있을까? 나는 추천할만하다고 생각하지만, 호불호는 갈릴 수 있을 듯하다. 기대가 컸다면 실망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많은 내용을 담고 있기에 우리 역사의 그늘을 들춰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p.s. 원서의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한국어 또는 일본어 단어, 문장을 표기했다는 점이다. 이는 이탤릭체로 표기되어 있는데 예를 들어 '엄마'를 'umma', '여보'를 'yobo', '어머'라는 감탄사를 'uh-muh' 등으로 나타냈다. 가끔 상대방을 부를 때 '~야'라는 의미로 '-ya'라고 붙여서 얘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본어의 경우에도 '정말?'이라는 표현을 'Honto?', '그렇네~'를 'Soo nee', '~입니다'를 '~desu' 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일본인의 언어습관대로 '~상 (-san)', '~짱 (-chan)', '~사마 (-sama)' 등을 이름 뒤에 붙이는 건 그렇다고 치고. 그 외에 아예 일본어를 통째로 옮겨서 발음대로 영문 표기를 하기도 하는데 과연 외국인들이 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 물론 한국어나 일본어가 문맥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에 대한 주석이나 부가적인 설명도 없으니 궁금해할 법도 하다.
이에 대해서 번역본에서는 어떻게 했는지 궁금해서 읽어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인플루엔셜 번역본에서는 그냥 다 우리말로 번역해뒀다고 한다. 원서의 그 느낌이 많이 사라졌을 것 같다.
또 한 가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은, 등장인물들의 출신지역을 고려하여 사투리로 번역했다는 점이다. 당연히 그랬어야 할 것 같긴 한데 원서에서는 그런 부분이 표현되어 있지 않으니 몰랐었다. 그래서 혹자는 번역역본이 더 낫다고 하기도 하는데 선택은 자유니까.
p.s.2. 영국판 뒷부분에는 작가의 말과 리딩그룹 가이드, 작가와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어서 작품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특히 리딩그룹 가이드는 독서모임을 할 경우에 유용한 질문들이었기에 여기에 옮겨본다. (해석은 각자가...)
Reading Group Guide
1.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How does the opening line reflect the rest of the book and do you agree?
2. In a way, Sunja's relationship with Isak progresses in reverse, as her pregnancy by another man brings them together and prompts Isak to propose marriage. How does Lee redefine intimacy and love with these two characters?
3. "Their eldest brother, Samoel, had been the brave one, the one who would've confronted the officers with audacity and grace, but Yoseb knew he was no hero. Yoseb didn't see the point of anyone dying for his country or for some greater ideal. He understood survival and family." What kinds of bravery are shown by different characters, and what motivates this bravery?
4. Compare Noa's biological and adoptive fathers, Hansu and Isak: What qualities does each try to foster in Noa, and why? Whom does Noa most resemble?
5. What does "home" mean to each of the main characters? Does it ever change? In what ways does a yearning for home colour the tone of the novel?
6. How do courting and marriage alter from one generation to the next?
7. Compare the ways in which the women of this novel-from Sunja to Hana-experience sex.
8. How much agency and power do you think Sunja really has over her life?
9. Sunja tells Noa that" Blood doesn't matter." Do you agree? What parts of the novel support or weaken Sunja's claim?
10. Yangjin and Kyunghee agree that "A woman's lot is to suffer." Do you I think the women suffer more than the men in this book? If so, in what ways? How does the suffering of Sunja and Kyunghee compare to that of Yoseb, Noa and Mozasu's?
11. Much is made of Sunja's fading beauty, as well as the physical appearance of all the women who surround her. What does this reveal about society at this time? Do you see this emphasis on female beauty reflected in present-day culture?
12. Throughout the book, characters must often choose between survival and tradition or morality. Can you think of any examples that embody this tension?
13. Many of the main characters struggle with shame through- out their lives, whether due to their ethnicity, family, life choices, or other factors. How does shame drive both their successes and failures?
14. The terms "good Korean" and "good Japanese" are used many times throughout the book. What does it mean to be a "good Korean"? A "good Japanese"?
15. "Both men had made money from chance and fear and loneliness." Pachinko begins with the family of a humble fisherman that, through the generations-and through times of poverty, violence, and extreme discrimination- gains wealth and success. What were the ways in which the family managed to not only survive, but also eventually thrive? What is the relationship among money, race, power, and class?
16. "Wherever he went, the news of his mother's death preceded him, wrapping the child in a kind of protective cloud; teachers and mothers of his friends were watchful on his behalf." In what other ways does death act as a "protective cloud" in this novel?
17. Compare the many parent-child relationships in the novel. How do they differ across families and generations? What hopes and dreams does each parent hold for their children- and are these hopes rewarded?
18. Even in death or physical absence, the presence of many characters lingers on throughout the book. How does this affect your reading experience? How would the book have been different if it were confined to one character's perspective?
19. Why do you think the author chose Pachinko for the tit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