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는 포르투갈계 미국인 신경과학자이다. 그는 현재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신경과학 석좌교수이자 심리학, 철학, 신경학 교수이자 소크 연구소의 겸임교수이다. 그는 이전에 20년 동안 아이오와 대학교에서 신경과 학장을 역임했다. 다마지오는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다. 신경과학에 대한 다마지오의 연구는 감정이 사회적 인지와 의사결정에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C%95%88%ED%86%A0%EB%8B%88%EC%98%A4_%EB%8B%A4%EB%A7%88%EC%A7%80%EC%98%A4
<느낌의 진화> 저자인 안토니오 다마지오에 대해 위키피디아에 나온 간략한 소개입니다. 그는 주로 감정에 대한 신경과학연구를 하면서 '신체 표지 가설'을 내세웠는데 현재는 다마지오의 연구진뿐만 아니라 여러 실험실에서도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며 이에 대한 근거를 찾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 '신체 표지 가설'은 이 책의 내용과도 연관이 있으며, 이에 대해서 이 책의 해제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신체 표지somatic marker란 감정과 관련된 신체적 느낌을 말한다. 단지 뇌의 상태만이 아니라 표정과 자세, 근육의 긴장도, 심장의 맥박, 다양한 내분비 활동 등의 신체적 변화가 통합되어 이른바 감정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신체 표지의 일부는 긍정적인 정서가valence, 소위 '좋은 감정'과 관련되고, 일부는 부정적인 정서가, 즉 '나쁜 감정'과 관련된다. 물론 단 두 가지 감정으로 나뉘는 것은 아니다. 환경적 맥락과 과거의 기억, 여러 상황 등이 종합적으로 나타나면서 복잡다단한 감정을 유발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감정을 '읽으면서' 의사 결정에 이용한다.
그는 또한 '감정'의 근원이 무엇인가에 대한 연구도 중점적으로 하였습니다. <통섭>에서도 살펴봤듯이,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 주장은 이후에 틀린 것으로 밝혀졌고, 이후에는 생물학적 관점에서 마음을 다루는 연구가 많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다마지오는 더 나아가 진화적 관점에서 그것을 조명하고자 한 것이죠. 이 책은 그러한 연구의 결과를 포함하여 진화의 과정에서 감정이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진화해 왔는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원제는 <The strange order of things>입니다. 우리말로 그대로 풀어보면 '그것들의 이상한 순서'가 될 텐데요, 그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그 의미는 이 책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알게 됩니다. 아니, 이미 초반부에 답이 나오긴 하지만 미리 김이 샐 필요는 없습니다. 그에 대한 이유 또한 계속 설명해 주니까요. 그리고 마지막 13장에서 그 의미를 종합적으로 다시 이야기해 줍니다.
참고로 '다마지오 3부작'이라고 하는 책들이 있는데요, 저도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데카르트의 뇌>, <사건에 대한 느낌>, <스피노자의 뇌>가 그 작품들입니다. <느낌의 진화>는 3부작에는 포함되지는 않지만 그 3부작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3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부는 '생명 활동과 항상성', 2부는 '문화적 마음의 형성', 3부는 '문화적 마음의 작용'입니다.
1부에서는 다시 인간의 본성과 항상성의 개념, 단세포 생물에서 고등생물체 이르기까지의 신경계의 발전과 그로 인한 마음의 기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부가 이 책의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마음의 기원을 좀 더 자세하게 언급하면서 그것이 확장되고, 감정과 느낌, 의식이 생기는 것을 고찰하고 있습니다. '내적 심상과 외적 심상의 등장, 의미와 기억, 언어적 서사, 미래에 대한 기억으로서 예측, 정동, 정서가, 사회성과 관련된 정동, 다층적 감정, 신체와 정신의 연결, 내장 기관의 역할, 감정에 대한 인지적 해석과 과거 기억의 통합, 의식, 주관성' 등 조금 어려운 개념들이 많이 나오기는 하는데 잘 따라가다 보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듯합니다.
3부는 저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주제와 조금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는데요, 앞서 얘기했던 '마음'을 적용해서 문화와 의학, 그리고 불멸성에 대해서 논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특히 문화 관련해서 얘기할 때는 인간의 문화 전반, 그리고 종교와 철학, 윤리, 예술, 자연과학까지 아우르고 있는데, 마치 <통섭>에서 그랬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사회생물학' 얘기가 나오니 에드워드 윌슨과도 연관이 되고, 또 '진화심리학'과도 연결될 것입니다. 어쨌거나 다마지오는 '문화적 현상이 항상성을 유지하는 도구로 기능했다'라고 하면서 다양한 문화적 현상을 항상성의 차원에서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흥미로웠던 점은 <통섭>에서도 나왔던 '미로'와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비유가 이 책에서도 나왔다는 것입니다. 설마 <통섭>에 대한 오마주일까요?
쉽지는 않지만 우리는 현재 삶과 그 삶의 문화적 대상과 관습을 느낌과 주관성, 말과 결정이 생기기 이전 옛날의 삶과 연결할 수 있다. 이 두 삶 사이의 연결 고리는 길을 잃기 쉬운 미로 안에서 돌아다니고 있다. 우리는 여기저기서 미로를 빠져나오게 해 줄 실타래를 찾을 수 있다. 바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이다. 생물학, 심리학, 철학의 임무는 그 실타래의 실이 끊기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 책의 내용을 최대한 포함해서 요약해보고자 합니다만,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책을 읽을 때는 내용을 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정리하려고 다시 보다 보니 제가 뭘 이해했나, 제대로 이해는 했나 싶습니다. 이 책의 내용이 기존의 통념과 관념들을 뒤집을 만큼 임팩트가 있었고, 또 그러한 주장을 하기 위해 다소 복잡하게 내용을 풀어가고 있어서요.
우선 이 책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한 내용도 해제에 나와 있어서 옮겨 봅니다.
핵심 주장을 몇 문장으로 요약해 보자. 수십억 년 전 단세포 시절, 항상성 유지를 위해 생긴 마음의 전구체가 나타났다. 신경계가 나타나면서 개체의 내부와 외부에 대한 느낌을 탐지하고, 이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는 주관성을 가진 의식을 형성했고, 이어서 추론과 상징이 가능해졌으며 언어적 서사 능력이 나타났다. 이는 개체의 유희적 실험과 집단적인 협력을 통해서 신체적 움직임이나 그 물리적 결과라는 형태로 창발 했으며 우리는 이를 '문화'라고 부른다. 이 모든 과정은 바로 유전과 진화라는 기전을 통해서 긴 세월 동안 지속할 수 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물론 책 전체의 내용이 그렇게 몇 개의 문장으로 정리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략적으로 이런 내용이었다고 기억하면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책에서 나왔던 '느낌', '감정', '정서', '기분', '정동'을 구분하기가 참 어려웠던 것 같아요. 해제에도 이와 관련된 내용이 있었는데 해제에 이런 내용이 있는 줄 알았더라면 먼저 읽어보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정신병리학적으로 이들 각각의 용어는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고 하네요. (참고로 <느끼고 아는 존재> 번역본에서는 좀 더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고 하네요)
느낌 (feeling) : 하나의 경험에 대한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반응이며, 뚜렷하지만 순간적인 반응
감정 (emotion) : 원래 기분의 생리학적 부수물, 정신 신체적 부수물
기분 (mood) : 지속적이고 전반적인 상태
정동 (affect) : 대상을 향해 분화된 특정한 느낌
7장에서는 정서와 느낌이 별개의 개념이며, 감정이 느낌을 형성하는 상황과 메커니즘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개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의들을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고 더 헷갈립니다. 그래서 우리의 느낌과 감정과 기분이 이렇게 복잡한 것일까요? 수많은 심리학자, 철학자들이 이에 대한 의견을 내놓았지만 확실한 것은 없는 듯합니다.
그는 책의 머리말에서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를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이 책은 한 가지 관심사, 한 가지 개념에 관한 책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느낌, 즉 정서와 감정의 세계에 흥미를 느껴 왔고 내 삶의 많은 기간을 그것을 연구하는 데 바쳤다. 나는 정서와 느낌이 왜 그리고 어떻게 생겨나는지, 감정이 어떻게 우리의 자아를 구성하는지, 감정이 어떻게 우리가 품은 최선의 의도를 돕거나 망치는지, 뇌가 어떻게 우리 몸과 상호작용해서 그와 같은 기능이 잘 작용하도록 돕는지를 연구해 왔다. 이 과정에서 내가 발견한 새로운 사실과 그에 대한 해석을 이 책에서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전반적인 개념은 매우 단순하다. 인간의 문화적 노력면에서 동기 부여자, 감시자, 협상가로서 감정이 그동안 수행해 온 역할을 우리가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 이 책에서 궁극적으로 밝히려는 것은 인간의 문화적 활동이 바로 느낌에서 비롯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느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 본성의 여러 갈등과 모순을 이해하려면 느낌과 이성 간의 호의적인 관계 그리고 동시에 적대적인 상호관계를 이해해야만 한다.
그가 책을 쓰게 된 이유를 해제에서 조금 더 인용해 보겠습니다.
본 책은 다마지오의 핵심 주장을 진화적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다. 즉 생명의 탄생 시기부터 인간 문명에 이르기까지 긴 진화적 과정 동안 감정이 생명 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감정 활동 자체는 뇌가 존재하기도 이전부터, 심지어 신체와 외부 세계의 경계가 막 만들어지기 시작하던 시기부터 항상성을 유지하는 대리인의 초기 형태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곧이어 자아에 대한 주관적인 인식과 타인과의 공감·협력으로 이어지고, 다시 사회제도, 종교, 철학, 도덕, 정의, 정치, 기술, 예술, 과학 문명 등 창대한 결과를 빚어냈다고 주장한다. 조금 과격하게 말하자면 '태초에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루었다'라는 식이다.
즉, 제목에서 말하는 '이상한 순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중추신경계-감정'의 순서가 아니라 '감정-중추신경계'의 순서였다는 것입니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뇌가 없는데, 생각을 할 수 없는데 과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요? 그는 그 가정이 옳으며, 그것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포부를 가졌던 것이죠.
이를 위해 그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차근차근 논조를 이어갑니다.
느낌은 어떻게 최초의 문화에 대한 물결을 일으키고 문화의 진화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남아 있게 되었을까?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나는 마음, 느낌, 의식, 기억, 언어, 복잡한 사회성, 창조적 지능 등을 갖춘,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의 삶을 초기 생명체의 삶, 즉 38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생명체의 삶과 연결시킬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 이것을 제대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길고 긴 진화의 역사에서 위에 언급한 핵심적인 기능들이 발달하고 나타난 순서와 시기를 찾아내야 했다.
그런데 여러 생물학적 구조와 기능이 나타난 순서는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랐다. 책의 제목처럼 기묘했다strange. 생명의 역사를 통해 일어난 여러 사건의 순서는, 즉 이른바 문화적 마음이라는 멋진 도구를 우리가 형성해 온 방식은 기존의 관념들과 일치하지 않았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의 본질과 영향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마음과 문화에 관한 우리의 사고방식이 생물학적 진실과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느낌은 뇌 혼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화학 분자와 신경 회로의 상호작용으로 뇌와 신체가 같이 만들어 내는 현상'이라고 얘기했죠. 그의 기존의 주장에 기반한 것이기도 하지만, 철저하게 생물학적으로 보겠다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단지 '환원주의'적으로 보려는 것은 아니라고도 합니다.
사실 이 책의 중요한 내용들은 글머리에 나와 있어서 대략 어떤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될지는 알려주었습니다. 다만 그걸 따라가는 것이 벅찼을 따름이죠. 역시나 대가의 저서답게, 다방면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으니까요.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항상성'이었는데요, 이 항상성의 유지를 위해 느낌이 생겼고, 그것이 좀 더 복잡하게 구성되면서 (신경계와 연결되면서) 마음이, 그리고 문화와 문명까지도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문명은 결국 그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한 거라는 얘기입니다.
지금부터 우리의 직관과는 어긋나는 관찰 결과를 담아내는 것부터 설명해 보자. 그것은 바로 생명기전 자체, 그리고 생명현상을 조절하는 본성에 관한 설명이다. 다시 말해, 항상성 homeostasis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는 일련의 현상이다. 느낌은 마음에 표상된 항상성이다. 느낌에 가려진 채 작용하는 항상성이라는 기능은 초기의 생명 형태와 오늘날 몸과 신경계의 놀라운 협업을 이어 주는 연결 고리이다. 그리고 몸과 신경계의 협업은 의식과 느낌을 가진 마음minds을 출현시켰고, 그 마음은 다시 인류의 가장 독특한 특성인 문화와 문명을 탄생시켰다. 이 책의 중심에는 느낌이라는 개념이 있지만 느낌의 힘은 항상성에 있다.
문화를 느낌과 항상성에 연결하면 자연과 더 강력하게 연결되고 문화 과정에서 더욱더 인간다운 표현humanization이 가능해진다. 느낌과 창조의 문화적 마음은 기나긴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데, 항상성에 이끌린 자연선택이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문화를 느낌, 항상성, 유전자에 연결하는 것은 문화의 개념과 관습과 요소들을 생명 작용에서 점점 분리시키는 관행과는 반하는 것이다.
그가 그렇게 주장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즉, 우리가 그동안 잘못 생각해 왔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볼 일은 아니다. 문화적 행동의 복잡성과 그것이 미치는 광범위한 긍정적 영향과 부정적 영향을 생각해 볼 때, 문화적 행동은 처음부터 의도를 가지고 시작되었으며 오직 높은 지적 능력을 가진 동물만 이룰 수 있었다고 추측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비인간 영장류 수준이 되어야 감정과 이성의 결합을 통해서 집단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문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문화가 나타나기 이전에 일단 마음, 즉 느낌이 나타났고, 의식이 발생하면서 그러한 느낌을 주관적으로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창조적 이성이 어 느 수준 이상 발전한 후에야 문화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동안 문화에 대해 가진 오랜 믿음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러한 것에 대한 반론을 드는 것이 박테리아와 단세포 동물, 그리고 사회적 곤충의 예입니다. 전혀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그러한 얘기는 흥미로웠어요. 그런 것들의 행동패턴을 인간과 동등한 수준의 것으로 보는 것은 당연히 말이 안 되지만 그것들이 느낌, 감정의 기원이 되었을 것이라는 건 꽤 설득력이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그의 주장에 살짝 넘어간 것 같아요.
항상성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하게 언급이 됩니다. 특히 인간과 박테리아의 공통 기반이자 연결 고리가 항상성이었다고 말합니다. 어찌 보면 생명체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기능일테니까요.
항상성은 이미 그 자취를 찾을 수 없는 최초의 생명으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의 핵심에 있는 근본적인 작용 절차set of operations이다. 항상성은 생각 없이 이루어지고 말로도 표현되지 않는 강력한 추진력이다. 또한 항상성이 작용한다는 것은 크고 작은 모든 생명체에서 생명이 지속성 enduring과 탁월함 prevailing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생명의 '지속성'에 항상성이 관여하는 부분은 명확하다. 항상성은 생물의 생존을 담당한다.
느낌은 각 생물 개체의 마음에 그 생물의 생명 상태를 드러낸 것이다. 그 상태는 긍정적인 상태에서 부정적인 상태까지 넓게 펼쳐져 있다. 항상성이 부족한 경우 대개 부정적인 느낌이 표출된다. 반대로 항상성이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으며 개체에게 유리한 기회가 열려 있을 때 긍정적인 느낌을 받는다. 느낌과 항상성은 매우 긴밀하고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느낌은 마음과 의식적 관점을 가진 생물이 생명 상태, 즉 항상성의 상태를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느낌은 어떤 의미에서 항상성의 대리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진화의 과정에서 느낌이 등장한 것은 동물이 신경계를 갖추었을 때부터이며, 이것은 약 6억 년 전이라고 합니다.
신경계는 점점 자신 주변의 세계를 다차원적으로 지도화하기 시작했다. 그 세계는 생물의 내부에서 시작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마음 그리고 그 안의 느낌이 생겨나게 되었다. 신경계가 그리는 지도는 다양한 감각적 능력에 기초하고 있으며, 결국 후각, 미각·촉각·청각·시각을 포함하게 되었다. 4장에서 9장까지에 걸쳐 이야기하겠지만 마음(그중에서도 특히 느낌)의 생성은 신경계와 그 신경계의 주인에 해당되는 생물의 상호작용에 기초한다. 신경계 혼자서 마음을 만들 어 내는 것이 아니라 생물의 몸에서 다른 모든 부분과 협업하여 마음을 생성한다. 이런 생각은 뇌가 마음의 유일한 원천이라는 기존의 통념과 거리가 있다.
인간이 문화를 형성할 능력을 가진 마음을 갖추는 데까지 진화하는 과정에서, 느낌의 존재는 항상성의 역할에 커다란 도약을 가져왔다. 감정의 도움으로 동물의 내면적 생명의 상태를 정신적으로 표상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단 감정이 생기자 생명 상태와 필요성에 대한 직접적인 지식이 더해지면서 항상성 유지 과정은 점점 풍부해졌다. 물론 여기서 지식이란 의식을 가진 지식이다. 결국 감정에 이끌린 의식적 마음은 다음 두 가지 사실과 사건들을 정신적으로 표상한다. (1) 동물의 내면세계의 상태와 (2) 동물의 환경 조건이다. 후자에는 특히 다양하고 복잡한 상황 속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일어나는 반응이나 공통의 목적을 가진 다른 동물들의 행동이 포함된다. 그리고 그 행동들은 각 개체의 충동, 동기, 정서 등에 영향을 받는다.
이후에 전개되는 과정은 다시 생물학 및 해부학적인 지식이 좀 필요해서 어렵게 느끼셨을 수도 있을 듯합니다. 게다가 세포의 대사활동에 대하여 스피노자의 '코나투스'에 비유하기도 하니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명확하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생명의 탄생에 있어서는 '복제자 먼저' 이론과 '대사 먼저' 이론이 있다고 하는데요, 다마지오는 '대사 먼저 가설'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생명 물질이 처음에는 활발한 화학반응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하며, 이 과정에서 항상성이 생겼을 거라는 것이죠. 나중에 복제자가 생겨났고요. 그가 항상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쪽으로 더 끌렸겠죠.
흥미롭게도 대사 먼저를 강조하는 설명에서는 항상성이 세포에 최대한 제 할 일을 완벽하게 해서 세포의 생명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이것은 복제 먼저 이론에서 유전자가 세포에게 하는 것과 똑같은 역할이다. 단지 유전자의 목표는 세포가 아니라 유전자 자신의 생존과 지속이라는 점이 다르지만, 결국 생명이 정확히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항상성의 요구는 세포의 대사 기구에서뿐만 아니라 생명의 조절과 복제 기구에서도 나타난다. DNA 세계에서는 서로 구분되는 두 종류의 생명(단독으로 살아가는 세포들과 여러 개의 세포가 합쳐진 생물들)이 모두 궁극적으로 스스로를 복제하여 자손을 생성하는 유전 기구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생물의 번식을 돕는 유전 장치는 또한 대사의 근본적 조절 역시 돕는다.
간단히 말해서 생명이라고 하는 불가능해 보이는 영역은 단순한 세포 수준에서든(핵이 있든 없든) 아니면 우리 인간처럼 수많은 세포로 이루어진 거대한 다세포생물이든 다음 두 가지 특성으로 규정할 수 있다. 바로 생물 내부의 구조와 기능을 유지해서 생명을 조절하는 능력과, 자신을 복제해서 자손을 남겨 영원한 삶을 지속하고자 하는 특성이다. 매우 놀라운 관점에서 바라볼 때, 어쩌면 우리들 각각, 우리 안의 세포들과 우리 밖의 이 모든 세포들이 하나의 거대하고 어마어마하게 많은 촉수를 가진 생명체의 일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38억 년 전에 생겨나서 지금까지 계속 존재해 온 단 하나의 유일한 생명체인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항상성에 대해서는 단순하게 생각하거나 혹은 오해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는 기존의 개념으로는 자신이 말하는 항상성을 설명하기는 부족하다고 하죠.
첫째, 항상성 과정은 단순히 일정한 상태에 도달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이 아니다. (...) 둘째, 생리적 작용은 (...) 상당한 범위의 단계와 정도에 걸쳐서 조절이 이루어진다. (...) 셋째, 광범위한 의미의 항상성은 개인과 개체 차원에서든 사회 집단 차원에서든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마음이 자동적인 조절 기전에 개입하고 새로운 형태의 생명 조절 장치를 창조해 낸다는 사실 역시 포함해야 한다. (...) 넷째, 단세포생물 수준에서든 다세포생물 수준에서든 항상성의 정수는 에너지를 관리하는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다. 에너지의 관리란 외부에서 에너지를 획득하고, 신체의 수리·방어·성장·번식·자손의 양육과 같은 중요한 업무에 에너지를 할당하는 일을 말한다.
그는 항상성이라는 개념을 '중립적 상태가 아니라 좀 더 편안하고 좋은 상태를 향해 스스로를 상향 조절하는upregulate 생명의 작용이라고 정의'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이러한 항상성의 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항상성을 지칭하는 영단어는 homeostasis인데 여기서 homeo는 '비슷한'이라는 의미라는군요. allostasis나 heterostasis도 제안되었지만 이들은 범위를 강조하기 위해 도입된 개념이라고 하네요. 하지만 많이 이용되지는 않는 듯합니다. 또한 다마지오는 '항동성(homeodynamics)'도 선호한다고 하는데 이는 생명체의 능동성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항상성에 대한 요구는 협력 절차의 이면에 자리 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세포생물 전반에 걸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보편적인 general' 신체 시스템의 출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와 같은 '전신 시스템' 없이는 다세포생물의 복잡한 구조와 기능이 제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와 같은 시스템의 주된 예에는 순환계, 내분비계(호르몬을 조직과 기관에 방출), 면역계, 신경계 등이 있다.
이 얘기도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그러면서 특히 신경계의 중요성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죠. 신경계의 특징, 해부학적 구조, 세포의 구조, 신호 전달 방법 등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신경계의 신호전달이 단순히 전기신호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혈액 내 화학분자들의 작용도 간과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건 저도 잘 알지 못했던 것이라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뇌는 신체의 특정 영역에 직접적으로, 또는 몸의 곳곳을 순환하는 혈액을 따라서 특정 화학물질을 전달함으로써 몸에 작용한다는 것이죠.
처음에는 '뉴런들의 그물망'처럼 단순했던 신경계는 일차적인 지각 기능을 수행하고 소화기관의 연동운동을 하는 정도의 역할 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우리의 장 신경계에서도 나타나는 특성이라고 하네요. 최근에 장이 '제2의 뇌'라고 하는 얘기를 종종 들었는데, 그 얘기를 듣고도 저는 별로 납득이 되지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이 책에서 해당 내용을 읽으니 그 중요성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저자는 장이 '제1의 뇌'라고 지칭할 정도였네요. 최초의 신경계였다는 의미겠죠.
하지만 그런 단순한 신경계는 기억력도 없고 지각 능력도 단순합니다. 특히나 이미지를 만들 수 없는데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마음을 구성하는데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 이미지에 대한 것은 2부에서 계속 언급됩니다.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할까? 과연 이미지는 정확히 무엇을 성취하는 것일까? 이미지가 존재한다는 것은 생물이 감각을 통해 묘사한 외부와 내부 양쪽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기초해서 내면적 표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생물의 신경계 안에서, 신경계가 아닌 몸 다른 부분과 협력해 만들어지는 그 표상은 그와 같은 절차를 수행하는 생물에게 엄청난 차이를 가져다줄 수 있다.
몸을 조절하는 능력, 즉 항상성을 향상할 수 있으므로 생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죠. 여기에는 운동능력도 포함됩니다.
몸과 신경계 사이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는 다시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우리가 고상한 마음에 관해 이야기할 때 아예 제쳐 두었거나 아니면 적어도 가볍게 생각했던 몸은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유기체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을 쪼개서 생각해 보자면, 몸은 서로 협력하는 시스템(계)으로 이루어져 있고 시스템은 서로 협력하는 기관들로, 기관은 서로 협력하는 조직으로, 조직은 서로 협력하는 세포로, 세포는 서로 협력하는 분자, 분자는 서로 협력하는 원자로, 원자는 서로 협력하는 아원자입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사실 생물의 가장 뚜렷한 특징 중 하나는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 사이에 비범하다고 말할 정도의 협력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로 비범한 수준의 복잡성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 간단히 말해서 복잡성은 생물의 구조가 점점 큰 덩어리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기능적 창발성emergence의 보증수표이다.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신경계의 출현은 다세포생물(동물)의 삶을 가능하게 해 주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다. 신경계는 생물 전체의 항상성을 관리하는 하인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러나 신경계를 구성하는 세포 역시 생존하기 위해서 똑같이 항상성에 의존한다.
2. 신경계는 그것이 속한 생물, 특히 그 생물의 몸의 일부이며 몸과 밀접하게 상호작용을 한다. 이 상호 작용은 신경계가 생물을 둘러싼 환경과 주고받는 상호작용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3. 신경계의 출현이라는 놀라운 사건은 그때까지 내부 장기에 의해 화학적 방법으로 관리되던 항상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신경에 의해 조절되는 항상성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문을 열었다. 나중에 느낌과 창조적 지성을 갖춘 의식적 마음이 발달함에 따라 사회문화적 공간에서 복잡하고 다양한 반응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이 열렸다. 이 복잡한 반응은 항상성의 요구에 의해 생겨났지만 나중에는 항상성의 경계를 넘어서서 상당한 자율성을 획득했다. 그것은 우리의 문화적 삶의 끝이나 중간이 아닌 시작부터 나타난 현상이었다. 그러나 가장 높은 수준의 사회문화적 창조물에서도 가장 보잘것없는 생명체, 즉 박테리아에서 나타나는 생명과 관련된 절차의 흔적을 볼 수 있다.
4. 고도로 발달한 신경계에서 몇 가지 복잡한 기능들은 훨씬 단순하게 작동했던 그 시스템의 원시적 도구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를 들어 느낌과 의식의 기초를 대뇌피질에서 찾는 것은 생산적이지 못하다. 뇌간의 핵과 말초신경계의 작동이 느낌과 의식의 전조가 될 현상의 비밀을 밝혀 줄 가능성이 높다.
그럼 '마음'은 어떻게 생겨나게 된 걸까요? 그는 이에 대한 이야기를 5장부터 9장까지 다섯 개의 장에 걸쳐 다소 길게 하고 있습니다.
맨 처음 마음은 자신의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단세포생물의 감지sensing와 반응responding에서 출발했다. 그 감지와 반응이 어떤 것과 비슷한지 상상해 보려면, 먼저 세포를 둘러싸고 있는 막에 작은 구멍들이 나 있다고 상상해 보자. 그 구멍에 특정 분자가 존재할 경우 그것은 다른 세포들에게 화학적 신호로 작용할 수 있고 또한 구멍들은 다른 세포들이나 환경이 내놓는 신호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 어떤 냄새를 내뿜고 그 냄새를 맡는 것과 비슷한 기전을 상상해 보자. 감지와 반응은 처음에는 이런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러한 감지와 반응은 마음보다 먼저 나타났지만, 마음을 가진 생물에게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하죠. 이윽고 다세포생물이 나타났고, 각각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들로 분화되어 전신시스템이 갖추어졌습니다. 그리고 신경계가 그것들을 컨트롤하며,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자극들을 원천으로 이미지를 형성하고, 사건을 지도화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내부세계와 주위환경을 표상할 수 있게 되었죠.
이런 점에서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의 순서는 보다 분명하다. 먼저 생물체 내부의 가장 오래된 요소들(내장과 혈관 등 순환계의 대사적 화학작용과 이 기관들이 만들어 내는 운동)에서 비롯되는 이미지를 이용해서 자연은 점차적으로 느낌을 만들어 냈다. 둘째, 그보다 덜 오래된 요소들(골격계와 거기 에 붙은 근육들)을 이용해서 자연은 생명을 담은 용기 또는 생명이 거주하는 집에 해당되는 몸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종류의 표상을 결합하자 의식이라는 새로운 경로가 열렸다. 셋째, 위와 동일한 이미지를 만드는 도구와 이미지에 내재된 힘(어떤 대상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힘)을 이용해서 자연은 언어를 만들어 냈다.
그러한 우리의 몸 안에는 기초적인 항상성과 관련된 '오래된 내부세계'와 골격근으로 이루어진 '덜 오래된 세계 (또는 새로운 내부세계)'가 있다고 하는데요, 후자에는 '감각의 관문'이 위치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지각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군요. 우리의 근육이 지각을 형성하는데 관여한다니. 언뜻 와닿지 않으면서도 또 수긍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마음은 신경계와 몸의 관계를 통해서 확장되는데, 신경계와 몸의 관계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이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오래된 내부 세계는 우리가 느낌이라고 부르는 이미지의 생성에 주로 기여하며, 새로운 내부세계는 우리 자신의 구조에 관한 전반적인 이미지를 마음에 전달하고 느낌의 형성에도 일정 부분 기여한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이러한 과정에서 뇌구조와 관련되어 해부학적인 설명이 이어지는데요, 저도 뇌의 해부학적 구조와 역할을 대략은 알지만 책에서는 이미지의 생성과정을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정리가 잘 안 되더군요. 특히 다마지오는 뇌간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는데 그 부분도 언급되기는 합니다.
통합된 이미지의 결과물로 '마음'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뇌의 다른 영역에 작용해서 '감정 반응'이 생깁니다. 그리고 '내부상태의 통합과 지도화의 결과물'이 바로 '느낌'이라고 하는군요. 그래서 마음의 기본단위는 이미지입니다. 음...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이미지는 우리 몸의 내부에 저장될 필요가 있는데 그러한 과정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도 늘 궁금했던 부분인데 사실은 저장하는 과정보다는 그것을 불러오는 '역활성화' 과정이 더 신기하지만요. 그러면서 해마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윽고 다마지오는 느낌에 대해서 좀 더 파고 들어갑니다.
느낌은 정신의 경험으로, 그 정의 자체로서 의식적이다. 만일 느낌을 의식할 수 없다면 우리는 느낌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직접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느낌은 몇 가지 측면에서 다른 정신적 경험들과 다르다. 첫째, 느낌의 내용은 언제나 그 느낌이 속한 존재의 신체를 나타낸다. 둘째, 이와 같은 특별한 조건의 자연스러운 결과로써, 내부 세계의 묘사(즉 느낌의 경험)에는 정서가라고 하는 특별한 특성이 깃들어 있다. 정서가는 매 순간 생명의 상태를 직접적인 정신적 기호로 번역한다. 생명의 상태는 반드시 좋거나 나쁘거나 그 중간 어디쯤으로 묘사된다. 우리가 생명의 연속에 이로운 조건을 경험할 때, 우리는 그것을 즐겁다거나 기쁘다거나 쾌감을 느낀다거나 하는 긍정적 용어로 묘사한다. 조건이 이롭지 않을 때 우리는 그 경험을 부정적 용어로 묘사하고 불쾌하다고 말한다. 정서가는 느낌의 결정적 요소이고 좀 더 확장해서 말하자면 감정을 나타내는 결정적 요소이다.
네, 난해합니다. 이쯤 되니 이 책이 철학책인지 과학책인지 좀 혼란스럽습니다.
요약하자면 느낌은 우리 몸 안의 생명 상태에 대한 특정 측면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 경험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느낌은 놀라운 업적을 성취한다. 우리 몸 내부의 생명 상태를 시시 각각 보고하는 것이 그 업적이다. 보고라는 개념을 우리 몸의 각 부분을 기록해서 올리고 중앙에서 한꺼번에 쫙 펴놓고 읽어 볼 수 있는 온라인 파일의 페이지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편리하겠지만, 이런 간편하고 무심하고 생명이 없는 디지털 파일이라는 비유는 느낌을 묘사하는 데 적절하지 않다. 우리가 앞서 언급한 정서가 때문이다.
느낌은 생명 상태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나 느낌은 단순히 엄격한, 컴퓨터화될 수 있는 종류의 '정보'가 아니다. 기본적인 느낌들은 추상화되지 않는다. 느낌은 생명 작용을 구성하는 다차원적 표상에 기초한 생명의 경험이다.
느낌은 정보를 제공하고 다루지만 그것은 단편적인 정보가 아니라서 다소 애매하고 막연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 느낌 덕분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이군요.
그런데 '정서가'라는 용어가 자주 나오는데요, 이에 대해선 이렇게 설명합니다.
정서가는 경험에 내재된 속성으로 우리는 그것을 쾌 또는 불쾌 또는 그 중간 어느 지점으로 받아들인다. 느낌이 아닌 표상의 경우 '감지하다'나 '지각하다' 등의 표현으로 지칭할 수 있다. 그런데 느낌의 표상은 느껴지는 것이고 그에 따라 감정이 일어난다. 이런 특성이 바로 느낌이라는 경험을 독특하고 특별하게 만든다. 물론 느낌의 내용이 뇌가 속해 있는 몸이라는 점도 느낌의 또 다른 독특한 특성이다.
이러한 느낌의 종류는 항상성 느낌인 자연 발생적 느낌과 자극에 의해 촉발된 느낌이 있습니다. 자연 발생적 느낌이 기저에서 주변을 계속 모니터링하는 것이라면, 자극에 의해 촉발된 느낌은 첨두부하와 같이 특별한 자극에 의해 정서적 반응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 몸에는 동요가 생기게 되죠.
그러한 정서적 반응은 우리의 뇌에서 비롯되지만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촉발되며, 우리의 의지가 개입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패턴이 있을 수도 있고, 교육 등에 의해 자아통제가 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정서에는 사회성이 관여되어 있어 이로부터 사회성과 문화가 생겨났다고 이야기합니다. 즉, 그 정서가 나 혼자만이 것이 아니라 집단 수준이 되는 것이죠. 그러한 예의 하나가 '거울 뉴런'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우리 몸의 항상성이 유지되며, 그 과정은 느낌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초기 생명체까지도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네요. 그러나 그러한 초기 생명체가 가졌던 것은 느낌의 근원은 되지만 단순한 행동 프로그램일 뿐, 마음에서 비롯된 느낌은 아닐 것입니다. 일단은 신경계가 갖추어져야 그러한 것을 논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 테니까요. 그러므로 신경계가 없었다면 느낌이나 감정이 진화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하지만, 진화는 그런 식으로 되지 않았습니다. 즉, 느낌과 감정을 진화시키기 위해 신경계의 출현은 필연적이었을 거라는 거죠.
그러나 신경계가 나타나기 이전에도 항상성을 위한 시스템은 존재했었을 것인데, 면역체계도 그러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단순한 항상성 메커니즘이었을 따름이겠죠. 반면, 신경계만이 느낌을 만들어내는 주역은 아닙니다. 느낌은 신체와 신경계가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내는 현상입니다. 단순히 신경계가 몸에 명령을 내리는 형태는 아니라는 것이죠.
저는 이 부분에서 흥미를 느꼈는데요, 특히 말초신경계의 역할과 몸과 뇌 관계의 특이점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랬습니다. 소위 BBB(뇌-혈관 장벽)라고 하는 관문이 없어 직접적으로 화학 신호를 받을 수 있는 뇌기관이 있다는 사실과 뉴런 중에 무수축삭으로 된 것이 있는 이유도 흥미로웠어요. 무수신경세포는 그 개방성으로 인해 연접정도가 가능해져 신호 전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어떤 역할인지는 아직은 밝혀지지 않았군요.
또한 장신경계의 역할이 간과되었다는 점도 얘기하고 있는데 소화기관의 상태가 장 신경계를 통해 뇌와 신호를 주고받게 되고, 느낌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되지만 그것도 아직 연구가 진행 중인 듯합니다.
'의식'은 또 다른 범주의 주제입니다.
'의식 consciousness'이라는 말은 앞에서 언급한 특성들로 설명되는 매우 자연스럽지만 뚜렷이 구분되는 정신적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이 정신적 상태로 인해 그 의식의 주인은 주변 세계를 개인적으로 경험한다. 또한 그만큼 중요한 것은 이 정신적 상태로 인해 의식의 주인이 자신의 존재 특성들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다. (...) 따라서 '의식'이라는 말과 그 말이 일으킬 수 있는 혼란을 피하기 위해 '주관성subjectivity' 이라는 말만 쓰고 싶은 유혹에 빠질 정도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유혹을 떨쳐 내야 한다. '의식'이라는 말은 의식 상태를 이루는 또 다른 구성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통합된 경험 integrated experience'이다. 통합된 경험은 정신적 내용을 어느 정도 통합된 다차원 파노라마에 위치시키는 과정을 말한다. 결론적으로, 주관성과 통합된 경험은 의식의 핵심적인 구성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의식은 주관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러한 주관성은 또 감각 관문의 작용과 느낌이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그러한 주관성이 이미지가 통합되어, 즉 경험으로 통합되어 의식이 생겨납니다. 이 역시 몸과 뇌가 긴밀하게 작용하면서 나타납니다. 결국 감각에서 의식까지 이어지는 흐름이 생기게 되는 거죠.
이 책에 나왔던 주제들은 하나같이 다 어렵습니다. 어찌 보면 철학적인 주제일 수도 있을 듯해요. 관념론적, 형이상학적 주제로 많이 다뤄졌던 것이기도 하고요. 과거에는 뇌의 작용과 신경계 등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해서 이론을 만들어냈지만, 지금은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들에 근거해야 하므로 이론을 전개하기고 좀 더 어려울 수도 있을 듯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과학은 발전해 나가는 것이겠지요.
2부인 5장에서 9장까지 이어지던 긴 이야기가 마무리되며, 3부인 10장에서는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여기에서는 진화심리학적인 관점도 나왔지만, 저자는 '항상성이 문화의 생물학적 뿌리'라고 말합니다. 항상성 유지를 위한 메커니즘이 정서적 행동을 유발하고, 마음이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개인의 생존을 위했던 그 수단은 집단으로 확장되고, 그것이 집단의 존속에 더 유리하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방향으로 진화를 했겠죠. 그 가운데 느낌이 중재자로서 중요하게 작용했습니다.
그러한 문화는 종교, 도덕, 정치까지 확장되었는데 이 책에서 나온 바와 같이 그러한 것들 가운데 항상성이 어떻게 관여되었는가 고찰하는 과정은 다소 무리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예술, 철학, 과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고요. 물론 각각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고찰해 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기엔 내용이 너무 방대해지거나 혹은 그 근거 기반이 빈약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문화를 항상성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와 그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역시도 '통섭'의 한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과감하게 말하면, 우리가 현재 진정한 문화라고 생각하는 것은 항상성 명령에 의한 효율적인 사회적 행동이라는 외피를 쓴 간단한 단세포 생명체에서 조용히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문화가 그 이름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은 수십억 년 후 문화적 마음, 즉 지금도 같은 종류의 강력한 항상성 명령의 지배를 받는 탐구적이고 창의적인 마음에 의해 생기가 불어넣어 진 인간이라는 복잡한 유기체가 활동을 하면서부터였다. 마음이 없던 초기의 생명체들이 그런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는 현상과 문화적 마음이 번성한 후기 생명체들 사이를 잘 살펴보면 항상성의 요구와 일치하는 것으로도 보일 수 있는 일련의 단계들이 존재한다.
그러면서 문화가 발생하게 된 조건과 단계를 간략하게 설명합니다. 결국 의식적인 느낌과 창의적인 지능이 둘 다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죠. 또한 동기가 필요했고, 인지능력과 언어능력이 중요하게 작용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저녁의 마법'에 의해 더 발전하게 되었죠. 지금도 그 저녁의 마법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야근하면서 글을 정리하고 있다죠. ㅋ)
그 뒤에 이어지는 '의학, 불멸성 그리고 알고리즘'이나 '현대 사회의 인간 본성'은 이 책의 주제에서 다소 벗어난 느낌도 드는데요, 다마지오는 그에 대한 얘기도 꼭 하고 싶었나 봅니다. 왜 대가들의 책을 보면 뒷부분에서는 이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다가 급수습을 하며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을까요? 그러한 것도 전혀 무관하다거나 불필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요. 더군다나 너무 나가다 보면 자신의 전문분야를 벗어날 수도 있게 되고, 그로 인해 이태껏 애써 논지를 펼친 것들에 대한 신뢰감 저하로 이어질 우려도 있습니다.
아무튼 11장과 12장의 내용은 심각하지만, 그 난이도에 있어서는 앞선 1, 2부보다는 다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또한 흥미도 좀 떨어지고 지루해질 수도 있지만요.
13장에서는 이제 다시 원래의 주제로 돌아와 마무리를 합니다. 앞서 얘기했던 것을 정리하며, 책의 원제목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줍니다. 비로소 이 책의 목적을 이해할 수 있는 듯합니다.
이 책의 원제목 The strange order of things은 두 가지 사실에 의해 정해졌다. 첫 번째는 무려 몇억 년 전 특정한 종류의 곤충 종들이 인간의 사회적 행동, 관습, 도구와 비교했을 때 문화적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사회적 행동, 관습, 도구의 집합을 발전시켰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는 그보다 훨씬 더 전인 아마 몇십억 년 전에 단세포 유기체도 개념적으로 인간의 사회문화적 행동의 여 러 측면들과 비슷한 사회적인 행동을 나타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들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생각과는 확실히 배치된다. 생명 영위 방법을 개선할 수 있는 사회적 행동 같은 복잡한 행동은, 꼭 인간은 아니더라도 정교함을 구현할 수 있을 정도로 복잡하고 인간과 가깝게 진화된 유기체들의 마음에서만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기존의 생각이었다. 내가 말하고 있는 사회적 특징들은 생명의 역사 초기에 출현했고, 생물권에 수없이 많이 존재하고 있으며, 지구상에 인간 비슷한 생명체가 나타나길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이 순서는 정말로 이상한 것이며, 가장 보수적으로 말해도 예상치 못한 것이다.
문제의 방정식은 맹목적으로, 과정 내부로 부터 상향식으로 풀렸다. 돌이켜 보면 양쪽 모두를 위한 일종의 선택 과정이었다. 이 성공적인 선택은 항상성의 명령적 요건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무슨 마법 같은 것이 아니었다. 이 선택은 환경과 물리화학적 관계를 맺고 있는 세포 내부의 생명 작용에 가해지는 구체적인 물리적·화학적 제약들로 이루어졌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상황에서 알고리즘을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성공적으로 살아남은 유기체의 유전적 장치는 이 전략이 미래 세대에 전해지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이 이상한 진화의 순서는 항상성의 신비한 중요성을 보여 준다. 저항할 수 없는 항상성 명령은 생명 영위 과정에서 불거지는 다양한 문제를 자연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행동으로 해결하려고 시행착오를 거쳐 실행되었다. 유기체들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속한 환경의 물리적 작용과 세포벽 내부의 화학적 작용을 찾아내고 걸러내 역시 의도와는 상관없이 생명의 유지와 번성에 필요한 해결 방법을 생각해 낸다. 최소한 적절하고 대부분은 좋은 해결 책이다. 놀라운 사실은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다른 경우, 즉 생명체의 복잡한 진화 과정 중 다른 시점에서 만날 때도 유기체는 똑같은 해결 방법을 생각해 낸다는 것이다. 특정한 해결 방법들, 비슷한 구성들, 어느 정도의 불가피성으로 흐르는 경향은 살아 있는 유기체의 구조와 환경 그리고 그 유기체와 환경의 관계로부터 비롯되며, 그것은 명백하게 항상성에 의존한다.
이렇듯 진화의 과정에서 항상성은 그 방향까지도 결정하게 해 주었습니다. 우리의 느낌과 의식이 된 것들이 이룬 조합은 점차적이고 점진적이지만 불규칙하게 별도의 진화 과정을 따라 진행되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감정과 주관성은 핵심적인 기관인 신경계가 생기기 이전부터 나타났다. 대뇌피질이 출현하고 나서 감정과 주관성이 생겼다는 주장을 지지할 이유가 없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대뇌피질 밑에 위치한 뇌간 핵과 종뇌 핵은 느낌과, 더 나아가서 의식에 대한 우리의 지식 중 일부인 감각질을 책임지는 핵심적인 구조이다. 의식에 대해서는 두 가지 과정만 앞에서 언급했었다. 인체 모형 관점 구축 과정과 경험 통합 과정이다. 이 두 과정은 대부분 대뇌피질에 의존한다. 게다가 느낌과 주관성의 출현은 인간에게서만 일어난 일이 아닌 데다 최근의 일도 전혀 아니다. 캄브리아기 정도 되는 아주 먼 옛날에 일어난 일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느낌의 근원을 찾아 고생대까지 거슬러 올라갔지만 아직은 밝혀진 것들이 너무 적고, 관련된 연구는 이제 막 시작한 단계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지식이 축적됨에 따라 인간은 휴머니즘이 강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 앞에서, 미지의 것 앞에서는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직까지 모르고 있는 것들이 훨씬 더 많으니까요.
이렇게 이 책에 대한 정리와 소감을 마칩니다. 두서없이 정리하다 보니 글이 생각보다 길어졌는데, 이 책의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네요. 그리고 내용을 따라가는 것이 다소 벅차게 느껴지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흥미로운 내용이었습니다.
그의 다른 저서들을 읽어본다면 그의 연구와 주장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까요? 하지만 난해함을 극복해야 하는 문제가 있군요. 특히나 다른 책들은 더 그렇다고 하니, 일단은 후속작인 <느끼고 아는 존재>부터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느끼고 아는 존재>도 <느낌의 진화>와 비슷한 맥락에서 전개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다마지오 3부작에도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