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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Mar 30. 2023

록산 게이 <나쁜 페미니스트>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 개정완역판이 나왔지만, 오래전에 구매했던 구판으로 읽었다. 개정판에서는 추가된 내용이 있고 구성이 조금 달라졌지만 전체적인 내용이나 맥락은 동일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전판에서 빠진 부분은 왜 빠졌던 것일까? (어떤 내용인지 따로 확인해보지는 않았다)


책의 내용이나 방향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페미니즘에 대한 내용이 주가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다른 내용들이 더 많았다. 특히 문학, 대중문화에 대한 평론 형태가 많아서 (그의 전문분야이기도 하겠지만) 마치 비평집 같은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도 여성을 비롯한 인종, 성소수자 등 사회의 억압과 편견에 맞서는 내용들을 담고 있기에 전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겠다.


저자인 록산 게이는 아이티계 미국인으로서 미국 내에서의 여러 가지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렇기에 페미니즘과 인종차별이 별개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대중문화 속에 들어있는 불평등과 편견, 혐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우리의 인식 속에 그러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일깨워주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얘기된 것은 그나마도 극히 일부의 사례일 뿐이다.


또한 어린 시절에 겪었던 성폭행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저서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룬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사건이 그에게 성폭행, 강간에 대한 명백한 거부와 반대 입장을 취하게 했으며, 페미니스트가 되게 했으리라고 짐작해 본다.


그는 스스로를 '나쁜' 페미니스트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나쁜'은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데 페미니스트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스스로가 '부족한', '불완전한'이라는 의미에서 '나쁜'을 의미한다. 


그가 그런 불완전한 페미니스트인 이유는 페미니즘 자체가 불완전하고 결함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을 인정한다. 페미니즘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고 또 어느 한 방향으로만 갈 수는 없다. 그리고 개개인에게는 또 각자의 방식으로서의 페미니즘이 존재한다. 


물론 페미니즘에도 문제가 있고 결함이 있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시시각각 변하는 이 사회를 중심을 갖고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준다. 페미니즘은 나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게 해 주었다. 페미니즘은 서로 자기 말만 하려고 아우성치는 이 세상에서도 내 작은 목소리가 중요하다는 믿음을 갖게 해 주었다. 어떻게 하면 이 불완전한 페미니즘과 그것이 할 수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을 서로 조화롭게 만들 수 있을까? 페미니즘이 결함이 있는 이유는 이것이 인간이 만든 운동이고 인간이란 태생적으로 결함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페미니즘에 비이성적으로 높은 기준을 세워놓고 페미니즘에게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있어 달라고, 혹은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내려달라고 조르고 있는 것만 같다. 페미니즘이 우리 기대에 못 미치면 페미니즘이라는 이름 아래 행동하는 인간들에게 결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페미니즘 자체가 잘못되었다며 정한다.
(...)
그래서 나는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단점과 모순으로 똘똘 뭉친 보통의 인간이니까. 나는 페미니스트의 역사에 정통하지도 않다. 설사 원한다 해도 내 책이 주요 페미니스트 고전으로 읽히지도 않을 것이다. 내 관심사와 개인적인 성향과 의견은 주류 페미니즘과 같은 선상에 있다고 할 수 없다. 
(...)
나를 따라다닐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꼬리표를 환영한다. 왜냐하면 나는 인간이니까. 그래서 엉망진창이니까. 누군가의 본보기가 되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는다. 완벽하려 하지 않는다. 내가 모든 해답을 갖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전부 옳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내가 믿고 있는 것을 지지하고, 이 세상에 뭔가 도움이 될만한 일을 하고, 내 글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면서도 온전히 나 자신으로 남고 싶을 뿐이다.


그러한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페미니즘이 가능할까? 그런 넓은 스펙트럼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페미니즘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 그래서 페미니즘 내에서도, 페미니스트를 표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생가고,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는 일도 생기는 듯하다. 더구나 그러한 가운데 일부분을 전체로 호도하여 페미니즘에 대한 혐오도 일삼는다.


나는 페미니즘을 되도록 단순하게 해석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페미니즘이 어렵고 복잡한 개념이고 지금도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으며 빈틈도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그저 이렇게 생각할 뿐이다. 페미니즘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도 못하고 그렇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나는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권리를 믿는다. 여성에게는 자신의 몸을 지킬 자유가 있고 필요할 때는 복잡한 절차 없이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남녀가 같은 일을 했을 때 동일한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선택이기도 하다. 어떤 여성이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지 않다면 그 역시 그녀의 권리이기에 존중한다. 하지만 그녀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 또한 나의 의무이며, 나라면 하지 않을 법한 선택을 하는 여성들을 지지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근본원칙이라고 믿는다. 나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여성들이 평등과 자유를 쟁취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타문화권 여성들에게 자유와 평등의 모범 답안을 제시할 입장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
모두 천편일률적인 페미니즘을 믿어야 할 필요도 없다. 페미니즘은 복수명사로 그 안에 다양한 페미니즘이 공존할 수 있다. 각자 지지하는 페미니즘을 존중하고 우리 사이의 균열을 최소화하는 데 충분히 신경을 쓰기만 하면 된다.


그가 주장하는 페미니즘은 단순하다. 남성과 여성은 동등하며,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역사적으로도 쉽지 않았고, 현재도 그러하다. 점진적으로 개선이 있다고는 해도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페미니즘운동은 꾸준히 이어질 것이고, 이런 시도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글들에 대한 공감과 동의가 확산될 것이고 그러한 공감대 위에서 페미니즘은 더 나아갈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더 이상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사용될 필요가 없는 날이 왔으면 한다.


어떤 페미니즘 이슈를 이야기하건 간에 나는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즘의 절대적인 중요성과 필요성을 부정할 수도 없고 부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모순적인 사람이지만 확실한 건 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개똥 같은 취급을 당하고 싶지는 않다는 점이다. 나는 나쁜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스트가 아예 아닌 것보다는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는 편이 훨씬 낫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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