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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Aug 03. 2023

나쓰메 소세키 <마음>


"나는 외로운 사람입니다" 하고 선생님이 말했다. "그래서 학생이 와주는 게 기쁩니다. 그래서 왜 날 그렇게 자주 찾아오느냐고 묻는 겁니다."
...
"학생은 아마 나를 만나도 어딘가 외로운 느낌이 남을 겁니다. 내게는 학생을 위해 그 외로움을 근본적으로 없애줄 만한 힘이 없으니까요. 조만간 학생은 다른 데로 눈길을 돌리게 될 겁니다. 머지않아 우리 집에는 발길을 끊게 되겠죠."
...
다행히도 선생님의 예언은 실현되지 않았다. 경험이 부족했던 당시의 나는 이 예언 속에 내포되어 있는 명백한 의미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중에서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도련님>을 읽은 적이 있었다. 이 작품들은 그의 초기작들이고 <마음>은 그로부터 시간이 약간 흐른 뒤의 작품이기에, 또 신문에 연재되었던 작품이기에 좀 다를 수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그의 작품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일단은 전반적으로 잘 읽히고 또 유쾌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밝은 것은 아니었다.  3부작으로 되어 있는 각각의 이야기에서 뒤로 갈수록 더 무거워지다가 3부에 들어서면 그 무게를 지탱하기 어려워 지지하고 있던 실이 끊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요. 사랑이 주는 만족감을 아는 사람은 좀 더 따뜻하게 말하는 법이지요. 하지만... 하지만 사랑은 죄악입니다. 그걸 아나요?"


물론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어떤 일들이 있었을지는 약간 짐작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미스터리물이 아니다.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보다는 왜 그랬는지,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이 작품의 주인공은 1,2부의 '나'가 아니라 선생님이자 3부의 '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선생님이 알려주고자 한 것이 나에게 전달되는 과정이 소설 전반에 그려지는 것이고.


그런데 이 작품에는 당시 일본의 시대상의 반영이기도 하겠지만 (일본의 조선 강제병합 직후이기도 하고) 한국인으로서는 다소 불편한 사건들이 많이 나온다. 메이지 일왕의 이야기라든가 청일전쟁, 러일전쟁이 나오고 특히 노기 대장의 이야기는 그 불편함의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그리고 그 사건과 더불어 선생님의 생도 끝을 맺고, 이야기도 끝이 난다. 사실 그가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고 비판을 받기도 하니 새삼스럽진 않을 수도 있겠다.


죽은 셈 치고 살아가려고 결심한 내 마음은 이따금 외부의 자극을 받아 팔딱였습니다. 하지만 내가 어느 방면으로든 나아가려고만 하면, 무서운 힘이 어디선가 나와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게 내 마음을 꽉 움켜쥡니다. 그러고서 그 힘은 내게 넌 아무것도 할 자격이 없는 남자라며 윽박지르듯이 말합니다. 그러면 나는 그 한마디에 온 힘이 쭉 빠졌습니다. 얼마가 지나 다시 일어서보려고 하면 또 옥죄어왔습니다. 나는 이를 악물었습니다. 왜 남 하는 일을 방해하느냐고 악을 썼지요. 불가사의한 힘은 싸늘하게 웃습니다. 네가 더 잘 알 텐데, 라면서. 나는 또다시 온 힘이 쭉 빠졌습니다.
나는 내 과거를 선과 악 모두 다른 사람들이 참고로 삼도록 한 셈입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아내만은 예외임을 알아주십시오. 아내에게만은 아무것도 알리고 싶지 않습니다. 아내가 내 과거에 대해 갖고 있는 기억을 되도록 순백색 그대로 보존하고 싶은 것이 나의 유일한 희망이니, 내가 죽은 후에라도 아내가 살아 있는 한은, 자네에게만 고백한 나의 비밀로서 모든 걸 가슴속에 간직해 주길 바랍니다.


그가 왜 이 작품의 제목을 <마음>으로 했는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다. 아무래도 시대와 사회의 차이가 있기에 보편적인 정서 이외의 부분은 편차가 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단은 그 보편적인 정서에 좀 더 집중해야 할 듯싶다.


<마음>은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세계의 전환점이 된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지 못했기에 이후의 작품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기회가 되면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평가를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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