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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Aug 04. 2023

윤성근 <헌책 낙서 수집광>


지금부터 만나게 될 책은 그 자체로는 대단한 게 아니다. 책을 읽은 사람의 삶이 책과 연결되어 새로운 생각으로 나타날 때 책은 특별해진다. 그 생각이 또 다른 우연의 여행을 통해 다른 사람 손에 들어가 전해질 때 책은 새로 태어난다. 흔적이 있는 책을 찾아 읽는 즐거움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책은 다 같은 책이지만 세상에 똑같은 책은 없다. 책을 읽는 우리 각자의 삶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 말을 하고 싶어서 헌책방에서 일하며 책을 쓴다. 세상을 여행하는 모든 헌책과 거기 남은 다정한 흔적에 감사하며, 이제 그들이 들려준 비밀스러운 이야기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윤성근 작가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라는 중고서점을 운영하며, 고객이 의뢰한 책을 찾아주는 자칭 '책탐정'이기도 하다. 책을 찾아주고 의뢰비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책으로 펴낸 것이 <헌책방 기담 수집가>이다. 


이전에 그 책을 읽은 적이 있다. '헌책방', '기담', '수집'이라는 도저히 조합이 될 것 같지 않은 단어의 조합이 주는 호기심에 읽게 된 책이었는데 이 책에는 '책', '이야기', '추리'라는 요소가 들어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그래서 <헌책 낙서 수집광>이라는 책이 나오자 같은 기대를 하며 구입했다. 그러던 차에 독파에 이 책이 올라오자 반가운 마음에 챌린지를 신청했다.


이 책도 '책', '낙서', '추리'가 나온다. 물론 이야기도 나오는데 그건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더 많다. 그것은 그 낙서에 대한 추리의 산물이기도 하다.


게다가 '수집광'이라고 적었다. 수집가에서 한층 더 나아갔다. 단지 더 자극적인 제목으로 이목을 끌기 위한 것이려나.


간혹 다른 사람에게 책을 빌려 읽거나 혹은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 메모가 되어 있는 경우를 보기도 한다. 그럴 때 그 글을 쓴 배경이나 그 사람의 생각을 추측해보기도 하는데 이 책은 그러한 것들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아무래도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으니 그러한 것들을 더 자주 접하게 되었을 것이다.


서점에서 나눠주던 시가 적힌 책갈피와 어떤 영업사원의 명함, 공중전화카드, 메모지, 편의점 영수증, 병원진료기록, 시험지 그리고 누군가에게 쓴 편지와 빛바랜 낙엽까지 별별 게 다 있었다. 책상 위에 펼쳐놓고 가만히 보니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 진정한 보물이었다. 


전작에서는 책을 찾아주고 그 사람의 사연을 듣는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과정이 없으니 추리와 자신의 이야기로 채워지는 비중이 좀 많았지만 그래도 책 이야기가 그것들을 받쳐주고 있으니 지루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무엇보다 책에 대한 저자의 애정과 소신이 많이 느껴졌다.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그들의 삶에 대한 경의를 보여준다. 물론 때로는 냉소적이거나 분노하는 모습도 보여주기도 하지만.


책은 산과 같아서 멀리서 보면 풍경이지만, 가까이 있을 땐 숲이고 그곳을 자주 걸으면 어느덧 길이다. 책이산과 같은 또 다른 이유는 그 안에서 자주 길을 잃기 때문이다. 눈앞에 길이 하나만 있는 사람은 길을 잃지 않는다. 산에는 여러 길이 있고 설마 저기가 길인가 싶은 곳도 조금만 걷다 보면 또 다른 길로 연결되는 걸 발견한다. 길이 많기에 길을 잃을 수 있고, 그 안에서 처음엔 생각지도 않았던 새로운 길을 찾기도 한다. 
어떤 책도 독자에게 한 가지 길만 보여주지는 않는다. 책 속에 길이 있다지만 그 길은 하나가 아니라 숲 속의 오솔길처럼 여러 갈래다. 길을 자주 잃어본 사람만이 누구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발견한다. 길을 개척하며 걷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예술가라 부른다. 그가 가는 길은 보통사람이 보기엔 엉뚱한 곳 같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산정상에 이르는 새로운 길이 된다. 그러니 세상의 이름 모를 예술가들이며, 자신이 만들어가는 길을 부끄러워하지 말길 바란다.
나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세상에 재밌는 소설, 흥미진진한 영화가 많다고 하지만 진짜 삶의 이야기만큼은 아니다. 한 사람이 살면서 남긴 발자취는 소설책 한두 권이 아니라 도서관 전체에 맞먹는다. 보르헤스의 말처럼 그 도서관은 바벨처럼 끝없이 확장한 우주와 같다. 나락 한 알에도 우주가 들었다는데 하물며 사람은 어떠하리. 그리고 엄마의 이야기는 우주라는 말로도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끝없는 사랑으로 가득하다.
살다 보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내가 해봐서 안다 등등 시끄럽고 요란한 표지판들을 자주 만난다. 하지만 다 무슨 소용이랴. 그것들이 내 갈길을 대신 가는 것도 아닌데. 내 길은 내가 가야 하고 선택과 결과 모두 내게 속한 세계이기에 삶은 의미가 있다. 자, 오늘도 힘내어 걸어보자. 가방 속엔 언제나 힘이 되어주는 작은 책이 함께하고 있으니까.


아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나도 읽어본 책들이 나와서 반가웠고, 또 이 책에 소개되었던 책을 찾아서 읽어보기도 했다. 역시, 책에 대한 책은 또 다른 '읽을 책 목록'을 생성하게 한다. 


또한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많아서인지 작가에 대해서도 좀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약간의 자부심과 약간의 고집스러움도. 하긴, 그런 것이 없다면 요즘 같은 시대에 헌책방을 운영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글쓰기도 겸하고 있는데 다음에는 또 어떤 책이 나올지 궁금해진다. 또한 나는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도 좋아하는데 나중에는 그런 추리물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해본다.


책을 좋아하는 어린이에서 이제 책과 함께 생활하는 어른이 된 나는 여전히 글에서 교훈을 찾거나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교훈은 글에서 나오지 않는 걸 알기 때문이다. 교훈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언제나 한 사람의 숭고한 삶에서 나오는데 그 삶을 글에 담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삶 자체가 글이 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권정생을 읽을 때 가슴에 스미는 거룩함의 정체는, 그가 바로 이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는 증거다. 어린이였을 때 나는 이미 어른이라고 느꼈는데 지금은 어른의 경계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나이 먹고 키가 자랐다고 다 어른은 아닐 텐데. 이 책에 어느 날의 일기를 쓴 사람도 나와 비슷한 마음인가 보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오늘은 우리 함께 고민을 나누면서 하루쯤 지내보면 어떨까. 어른이 되어도 친구는 필요하다. 아니, 어른이 되려면 괜찮은 친구가 있어야 한다고 해야 맞겠다. 우리는 아직 어른이 아니니까 함께 읽고, 조금은 또 울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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