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유전자에서 문화까지
6장에서 마음을 얘기하고서 7장은 문화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얘기하고 있는데요, 이 연결고리가 이해가 될 듯하면서도 잘 안 되는 측면이 있었어요. 통섭 얘기를 하면서 유전자와 문화 얘기는 왜 했을까요?
사실 7장에서는 '통섭'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유전학, 심리학, 그리고 진화심리학, 인간행동유전학 등의 내용이 나오죠. 하지만 그 필요성에 대해서 앞부분에서 잠깐 언급하고 있습니다.
자연과학은 양자물리학에서 시작하여 뇌과학과 진화생물학을 아우르는 인과적 설명의 직조물을 짜 왔다. (...) 이 설명의 연결망은 이제 문화 자체의 가장자리를 건드리고 있다. 이 연결망은 인문학과 사회과학으로부터 자연과학을 구분하는 경계에 다다랐다.
학문의 커다란 가지들을 통합하고 문화 전쟁을 종식시키는 방법은 딱 하나뿐이다. 과학 문화와 인문학 문화 간의 경계를 국경으로 보지 않고 양쪽의 협동 작업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미개척지로 보는 방법뿐이다. (...) 두 문화는 다음의 도전을 공유한다. 우리는 실제로 모든 인간 행동이 문화를 통해 전달된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문화의 기원과 전달에 생물학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알고 있다. 따라서 남아 있는 문제는 생물학과 문화가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가이며 특히 모든 사회에 걸쳐 진행되는 그런 상호 작용이 어떻게 인간 본성의 공통성을 만들어 내는가 하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한 종으로서의 유전적 역사와 그것을 멀리 내팽개친 사회의 최근 문화사를 잇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그것이 두 문화 간 관계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즉, 과학과 인문학 간의 경계를 허물고, 과학이 인문학의 영역으로 들어가기 위한 틈새를 만드는 건데요, 그러기 위해 인문학의 기반이 되는 문화를 목표물로 삼았습니다. 또한 인간의 행동이 문화를 이루고, 또 문화를 전달하는 것이기에 인간의 행동을 야기하는 인자들을 추적하고자 했던 것이죠.
그러한 인간의 행동을 야기하는 중요한 요소로 우선 유전자를 들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유전자가 마음을 만들어내고, 문화는 공동의 마음에 의해 창조되므로 이 장의 제목처럼 '유전자에서 문화로' 연결된다는 것이겠지요.
문화는 공동의 마음에 의해 창조되지만 이때 개별 마음은 유전적으로 조성된 인간 두뇌의 산물이다. 따라서 유전자와 문화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이 연결은 유동적이다. 얼마나 그런지는 불명확하지만 말이다. 또한 이 연결은 편향되어 있다. 즉 유전자는 인지 발달의 신경 회로와 규칙적인 후성 규칙(後成規則, epigenetic rules)을 만들어 내고 개별 마음은 그 규칙을 통해 자기 자신을 조직한다. 마음은 태어나서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성장한다. 물론 자기 주변의 문화를 흡수하면서 성장한다. 하지만 그런 성장은 개체의 두뇌를 통해 유전된 후성 규칙들의 안내를 받아 이뤄진다.
그러면서 '후성 규칙'이라는 것이 언급됩니다. 이 용어는 이 장에서 중요하게, 여러 번 나오고 있는데 아랫부분에서 다시 얘기하도록 할게요.
어떤 이들은 주변 문화와 환경에 더 잘 생존하고 번식하도록 해 주는 후성 규칙들을 대물림한다. 그리고 그런 규칙을 전혀 갖지 않은 사람이나 있어도 약한 규칙을 가진 이들은 생존과 번식에서 밀려난다. 바로 이런 방식으로 좀 더 성공적인 후성 규칙들은 많은 세대를 거치면서 그 규칙들을 규정하는 유전자들과 함께 개체군 내에서 널리 퍼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인간 두뇌의 해부·생리적 구조가 진화해 왔듯이 행동도 자연선택에 의해 유전적으로 진화해 왔다.
이러한 것을 '유전자.문화 공진화'라고 하는데 이는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 과정의 특수한 확장'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의 방식은 유전적 진화뿐만 아니라 문화적 진화에도 유사하게 적용된다는 것이죠. 이는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meme(<통섭>에서는 '모방자'라고 번역했군요)'을 언급한 것과도 유사합니다.
이 장에서도 그러한 '문화의 기본 단위'들이 언급되는데, 저자는 기존의 개념들과 달리 그것이 '의미 기억의 ‘연결점(node)’ 또는 참조점으로 간주해야 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개념과 기호를 통해 식별되며, 서로 연결되어 '의미'가 생겨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물리적으로 존재하는가 하는 것은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앞장에서 '뇌지도'에 대한 얘기를 하기도 했었지만 뇌지도와 그러한 가상의 연결점간의 매핑은 저자의 바람만큼 가시적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으니까요.
여기서 내가 하고자 하는 작업은 통섭의 중심 프로그램이 그럴듯하다는 점을 밝히는 일이다. 좀 더 구체적인 맥락으로는 기호학과 생물학 간의 인과적 연결 가능성을 확립하는 일이다. 만일 그 연결이 경험적으로 확립될 수 있다면 의미 기억의 연결점들에 관한 미래의 발견들은 결국 모방자의 정의를 좀 더 날카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발전은 기호학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욱 풍부하게 만들 것이다.
기호학과 생물학 간의 인과적 연결 가능성을 확립하겠다는 목표를 밝혔지만 이번장을 읽은 소감은 그러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가지 얘기를 했지만 어떤 일관적인 방향이 없어서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죠.
그러면서 유전과 환경의 상호 작용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이는 유전학에서 나온 사례들도 있고, 심리학에서 나온 사례들도 있는데 저자는 환경의 영향을 중요하게 평가하면서도 그러한 근거의 이해에 대해서는 다소 깊이가 없는 듯합니다. 예로 든 설로웨이의 연구 결과(출생순서에 따른 차이)는 논란이 되고 있죠. (이는 주디스 리치 해리스의 저서들에서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특성이 유전적인 것인지 환경적인 것인지 구분하는 것은 어렵고, 그러한 구분은 의미도 없습니다. 유전적인 영향과 환경적인 영향 모두 고려해야 하고, 특히 유전적인 것이 환경에 의해 어떻게 발현되는가를 보는 것도 필요하죠. 그러면서 쌍둥이 연구, 유전도 등에 대한 예시를 듭니다.
유전도는 주어진 환경의 변이들에 유전자가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는가를 측정하는 방법이지만 이는 '비정상적인' 발현 위주로 연구가 되고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연구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유전적인 차이가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겠죠.
문화에 대해서도 유전주의자들과 후천주의자들의 의견이 달라집니다. 하지만 그것이 역사와 환경의 산물일 개연성이 높다는 점에선 동의한다고 하죠. 개인들은 특정한 사회 내에서는 매우 다른 행동 유전자들을 가지고 있지만 사회들 간에는 그런 차이들이 통계적인 수준에서 대부분 사라진다고 하니까요.
반응 양태와 유전도를 명확히 이해하는 일은 때로는 다소 전문적이고 건조해 보일 수는 있지만, 유전과 환경이 인간의 행동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첫걸음이다. 따라서 생물학과 사회과학의 통섭을 꿈꾸는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이 책이 쓰일 당시엔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료되기 전이었고, 유전자지도작성은 아주 초기 단계였습니다. 물론 아직도 유전자지도는 갈 길이 멀고 어렵습니다. 단순히 DNA 염기서열을 밝혀내는 것에 비해 어떤 유전자가 어떻게 발현되어 어떤 작용을 하는지를 밝혀내는 것은 훨씬 더 복잡하니까요. 하나의 유전자가 하나의 형질 발현에만 관련되어 있을 수도 있지만 여러 가지 형질과 관련되어 있을 수도 있고, 반대로 여러 가지 유전자가 하나의 형질의 발현에 관련되어 있을 수도 있고요.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행동유전학'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 분야도 아직 발전이 더디지만 저자는 이 분야에 대한 기대를 보이고 있습니다. 연구가 제대로 된다면 '인간 본성의 기초에 관한 좀 더 분명한 그림이 그려질 것'이라고 하죠.
인간의 문화는 보편성이 있고 (조지 머독이 언급한 67가지의 목록을 보여줬죠) 서로 독립적인 곳에서 각각 발현된 문화들도 어느 수준 혹은 양태로 수렴 진화한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그것이 어떻게 후손에게 전달되는 과정도 '특정 행동들을 상대적으로 더 잘 배우게 만드는 신경 형질들'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유전적으로 대물림되는 형질은 앞에서 언급된 문화의 단위 때문이 아니라 '특정한 종류의 기억 요소들을 고안해 내고 전달하는 성향'이라고 합니다. 이를 마틴 셀리그먼 등은 '준비된 학습'이라고 했네요.
준비된 학습이라고 보고된 많은 사례들은 후성 규칙들로 묶이는데, 생물학에서는 해부 구조, 생리, 인지 그리고 행동이 발생하는 과정에서 대물림되는 모든 규칙성을 통칭해서 후성 규칙이라고 부릅니다. 앞서 얘기했던 후성 규칙이 여기에서 좀 더 자세하게 기술이 되네요. 또한 이러한 준비된 학습은 대체로 적응적입니다.
그러므로 후성규칙을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진화 원리로 무장한 후에 심리학적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하고 있죠. 이러한 분야를 '진화심리학'이라고 하네요.
진화심리학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사회 행동이 어떠한 생물학적 기초를 갖고 있는지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사회생물학과 인간 행동의 기초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심리학이 만나서 생겨난 잡종 분야인 셈이다. 하지만 유전자·문화 공진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점점 늘어 가는 이 시점에서 단순성과 명료성을 위해, 그리고 이따금씩 벌어지는 이념 논쟁에 휘말릴 때 지적인 용기를 위해 우리는 진화심리학을 마땅히 인간사회생물학(human sociobiology)과 동일한 것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저자는 후성 규칙을 두 단계로 나눠서 보고 있습니다. 일차 후성 규칙들은 감각 기관에서 자극들을 거르고 암호화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하여 두뇌가 그 자극들을 지각하도록 하는 자동 과정들이며, 이차 후성 규칙은 많은 양의 정보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기능하는 규칙성입니다. 이 규칙들은 지각, 기억, 감정의 파편들을 끌어들여 우리의 마음이 특정 모방자는 선택하되 다른 것들은 배척하게끔 만들죠. 즉 우리가 편향된 선택을 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모든 감각들에는 일차 후성 규칙들이 연결되어 있고, 그런 규칙들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들 중에는 연속적인 감각을 구분된 단위로 끊어 주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차 후성 규칙들은 인간의 감각 체계를 대체로 시청각 정보를 처리하는 것으로 조정되고, 모든 언어의 감각표현 중 75% 정도는 시청각 관련된 것이라고 하죠.
이차 후성 규칙들은 이른바 구상화 과정에서 따라 나오는데, 이는 아이디어와 복잡한 현상을 친숙한 대상과 활동에 비유하여 좀 더 단순한 개념으로 압축하는 절차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후성 규칙들의 유전적 기초는 무엇이며, 어떤 유전자들이 관여할까요? 그러나 이에 대해서 밝혀진 바는 별로 없습니다. 아마 지금도 비슷할 것 같아요.
유전자.문화 공진화의 단계를 추적했지만 뭔가 명확한 것이 없네요. 인간행동유전학이나 진화심리학에서 밝혀내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이겠죠.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정리를 합니다.
-유전자의 규정을 받는 후성 규칙들은 문화적 습득과 전달을 가능케 하는 감각 지각과 정신 발달의 규칙성이다.
-문화는 어떤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달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을 돕는다.
-성공적인 새 유전자는 개체군의 후성 규칙을 변화시킨다.
-변화된 후성 규칙은 문화적 습득이 이뤄지는 경로의 방향과 효율성을 변화시킨다.
그런데 유전적 속박과 문화의 다양성은 과연 관계가 있을까요? 유전적 속박이 있음에도 문화는 다양해졌고, 그러한 문화는 다시 어느 지점으로 수렴합니다. 이는 유전자에 의해 발현된 기관이 느끼는 감각을 뇌에서 언어로 처리하고, 그것을 어휘로 표현하는 예로 들어 (본문에서는 색깔에 대한 예를 들었습니다) 그 문화 단위가 확산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결국 문화는 유전자로부터 발흥하여 유전자의 검인을 영원히 간직한다는 것이 결론이네요.
뇌는 대상과 속성 간의 정확한 연결을 위하여 계속해서 의미를 찾는다. 이때 속성은 의미들을 가로지르며 외부 세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우리는 후성 규칙이라는 제약의 현관을 지나 그 세계로 들어간다. 준언어와 색깔 어휘의 예에서 드러났듯이, 문화는 유전자로부터 발흥하며 유전자의 검인을 영원히 간직한다. 한편으로 문화는 은유와 새로운 의미를 창조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획득했다. 인간 조건을 이해하려면 유전자와 문화를 모두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과학과 인문학을 분리한 채 이해하려 한다면 부질없는 짓이 된다. 인간 진화의 실재성을 인식하면서 이 둘을 함께 묶어 이해해야 한다.
이번장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는데요, 서두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이번장은 우리가 통섭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왜 필요한지를 잘 모르겠어요.
인간행동유전학이나 진화심리학은 여러 분야가 접목된 통섭의 예시로 볼 수도 있을 듯합니다만, 단순히 그러한 예시를 위해 이번장을 쓰진 않았을 것 같아요. 그리고 7장부터 (사실은 6장부터) 본격적으로 사회과학, 인문학분야에 대한 각개격파를 시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