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신작 <오펜하이머> 개봉 소식에 원작인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관심 역시 뜨겁다. 약 20여 년 전에 발간된 이 책을 미국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많은 이들이 찾고 있고, 출판사인 사이언스북스에서는 재빠르게 '특별판'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보급판을 내놓았다. 가격은 거진 반값 정도로.
이 책의 번역본은 2010년경 양장판으로 나온 바 있고, 비슷한 시기에 전자책으로도 출판되었다. 하지만 1,15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쉽게 손이 가는 책은 아니었다. (여담으로, 무한도전에서 하하가 이 책으로 독후감을 썼던 내용이 최근에 다시 회자되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을 읽고 싶었다. 내 전공 상 오펜하이머와 물리학자들은 친숙하지만 맨해튼 프로젝트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오펜하이머의 삶도 궁금했다. 이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특별판의 경우엔 양장판보다 크기도 작고 페이지수도 적어서 정말 빽빽하게 편집되어 있다. 그래서 이 무지막지한 책을 특별판으로 읽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꺼운 책의 경우에는 전자책을 선호하는데, 이 책은 전자책의 가격도 비쌌다. 특별판보다도 비싸서 특별판과 양장판 중간 정도의 가격이었다. 전자책은 특성상 화면편집을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기에 출판사 입장에서는 굳이 전자책을 더 저렴하게 낼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고민했다. 전자책을 살 것인지, 특별판을 살 것인지, 양장판을 살 것인지. 그러다가 결정했다.
"그래, 아마존에서 킨들용으로 사자"
아마존에서는 킨들용으로 $14.99에 판매하고 있었으므로 번역본 특별판 정도의 가격이 될 듯했다. 하지만 이것이 옳은 결정이었을까...
초반부는 쉽게 읽혔다. 흥미로웠고 꽤 집중되었다. 그래서 생각보다는 빨리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영화가 개봉하는 8월 15일까지 완독 하리라 마음먹었다. (책을 구입한 것은 8월 3일)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갈수록 등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특히나 그가 버클리에 와서 정치적인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집중력도 떨어졌다. 내용은 지루했고, 구성은 산만하게 느껴졌다. 뭔가 얘기가 좀 되려는가 싶다가 다른 사람들의 말들(인터뷰 내용이나 혹은 자료에서 발췌한)이 끼어들었다. 가뜩이나 등장인물들이 너무 많은데, 영어로 보려니 그 사람들 이름을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도 난관이었다. (결국 이름을 발음해 본 사람은 몇 명 없었다)
나는 이런 구성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읽기 시작한 것을. 그래도 뒷부분으로 가면 좀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끝까지 그랬다. 결국 8월 내로 완독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가뜩이나 원서로 읽는지라 번역본에 비해 두 배 이상의 집중력을 필요로 했는데 내용이 그러니 보통 책 보다 서너 배의 집중력을 필요로 했다.
회사에서는 킨들 스크라이브로, 집에서 및 외출 시에는 킨들 오아시스로 읽었다. 틈나는 대로 짬짬이, 정말 열심히 읽은 결과 3주일 만에 드디어 완독 했다.
완독 소감으로는, 우선 정말 대단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저자인 카이 버드와 마틴 셔윈이 25년간 정말 열심히 자료 조사를 했고,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했으며, 오펜하이머의 행적을 추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한 내용들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각각의 사건들에 대해서 좀 더 이해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 바람에 분량이 그렇게 많아지고 구성이 산만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이 책은 총 5부, 40장으로 되어 있다. 오펜하이머의 부모님 이야기로 시작해서 그의 출생부터 사망까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말미에 에필로그와 함께 사진들이 나온다. (에필로그와 사진들에 대한 얘기는 이따가 다시 하기로 한다)
저자인 카이 버드는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이며, 마틴 셔윈은 역사학자이자 대학교수다. 아마도 전체적인 구성은 카이 버드가 하고, 자료 조사 및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증은 마틴 셔윈이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마틴 셔윈이 미국의 원자력사에 대한 전문가이기에 둘 모두 오펜하이머 및 핵무기 개발사에 대한 관심도는 높았으리라 생각된다.
5부로 나뉜 내용은 그의 일대기를 적절히 구분하였다. 1부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물리학자가 되기까지, 2부에서는 그가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와 함께 하게 된 사람들에 대해서, 3부에서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책임자로서의 활동을 다룬다. 4부에서는 일본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후의 그의 심경과 행적들을, 5부에서는 매카시즘의 희생자가 된 이야기들이 나온다.
이 책의 부제가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승리와 비극 (The Triumph and Tragedy of J. Robert Oppenheimer)'이기에 그가 영광의 순간에 올랐다가 비극의 희생자가 되는 과정을 잘 서술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2부는 지루하기는 했지만 그가 정치에 눈을 뜨게 되는 과정을 그렸기에 꼭 필요한 내용이었다는 생각이 들고, 5부의 청문회 내용도 이 책의 클라이맥스로서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는 아버지 덕에 어렸을 때부터 풍족하게 지냈으며, 심지어 개인 요트까지도 있었다. 그는 평생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었고, 취미생활에 있어서도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면서 지낸 듯하다. 승마와 요트는 그의 평생 취미였다.
어린 시절부터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의 과정을 보면 그가 영특했고 과학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다지 사교성은 좋지 않았고 정신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듯한 대목도 있었다. 학교 다닐 때 캠프에 갔다가 친구를 고자질한 탓에 친구들로부터 발가벗겨져 창고에 갇힌 일은 좀 심하긴 했지만 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고 치자.
그런데 캠브리지대학 재학 당시 지도교수에 대한 스트레스로 인해 독사과로 그를 죽이려고 했던 것 등은 과연 그가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로 인해 계속 정신과진료를 받아야 했지만. 그나마 그가 대학교수로 임용된 이후부터는 특별한 이상행동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의 정치적 행보가 좀 더 본격화되었고, 여성 편력이 종종 드러나 보였을 따름이다.
이 책의 제목은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잘 알려진 대로 신들의 불을 훔쳐서 인간에게 준 죄로 코카서스 산에 쇠사슬로 묶여 계속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은 티탄족의 신이다. 인간이 '제3의 불'이라는 원자력을 발견하고 그것으로 가공할 파괴력을 지닌 핵무기를 개발하여 막대한 희생자를 낳은 것을 빗대어 그렇게 제목을 붙였을 것이다.
프로메테우스처럼 그 역시 핵무기를 개발하는데 큰 공헌을 했지만 독수리(매카시주의자들)에게 계속 간을 쪼아 먹히는 (공산주의자이자 반역자로 몰리는) 상황이 되었다. 그로 인해 그는 보안등급도 박탈당하고 원자력위원회에서도 물러나게 됐다. 심지어 그가 소장으로 있던 프린스턴대학교 연구소의 자리마저 위태로웠지만 프린스턴대학교 이사회는 그의 자리를 보전해 주었다.
“The Beast in the Jungle”
We may be likened to two scorpions in a bottle, each capable of killing the other, but only at the risk of his own life.
J. ROBERT OPPENHEIMER, 1953
그리고 그가 그런 시련을 겪고 있을 때 그를 믿고 지지해 준 많은 동료들이 있었다. 많은 이들이 그의 편이었다.
“A Manifestation of Hysteria”
I am very distressed, as I assume you are, over the Oppenheimer matter. I feel that it is somewhat like inquiring into the security risk of a Newton or a Galileo.
JOHN J. MCCLOY to President Dwight D. Eisenhower
“A Black Mark on the Escutcheon of Our Country”
It is sad beyond words. They are so wrong, so terribly wrong, not only about Robert, but in their concept of what is required of wise public servants....
DAVID LILIENTHAL
그가 프로메테우스였다면 그의 동생 프랭크 오펜하이머는 에피메테우스라고 할 수 있을 듯이다. 신화에서도 두 형제가 인간들을 만들고 그들을 위해 애쓴 것처럼 두 형제는 둘 다 물리학자로서 각자의 역할을 했다. 두 형제는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서로를 지켜주려고 했었다. 그로 인해 로버트는 더 어려움을 겪게 되기도 했던 것이다.
여담으로, 책에서는 오펜하이머라고 했다가, 로버트라고 했다가, 애칭인 오피라고도 하면서 계속 이름이 바뀐다. 그래서 나도 이 글에서 오펜하이머, 로버트라고 같이 쓰겠다.
그렇다면 공산주의가 판도라의 상자였을까. 프랭크는 공산주의 이력으로 인해 형보다 더 어려움을 겪었다. 심지어 그는 물리학자로서의 자리를 잃고 목장일을 하면서 보내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중에는 다시 대학교 교수로 돌아오게 되었다)
하지만 오펜하이머가 공산주의자였는가, 소련의 스파이였는가 하는 점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이 책의 전반적인 입장, 그리고 보안 청문회 내용이나 그동안 알려진 바로는 공산주의자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는 미국 공산당에 가입한 바는 없으며, 단지 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파에 후원금을 보내기 위해 공산당 통로를 이용했을 뿐이며, 그마저도 러시아가 독일과 불가침협정을 맺으면서부터는 후원도 중단했었다.
그는 순수한 목적으로 스페인 공화파를 돕고자 했으나 상황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다. 파시즘/나치즘과 공산주의의 대결, 그러한 이념의 대립은 결국 많은 비극을 가져왔고, 제2차 세계대전과 맞물려 더욱 복잡해졌다. 이는 그가 공산주의자로 몰리게 된 원인이기도 했다.
“We Were Pulling the New Deal to the Left”
I had had about enough of the Spanish cause, and there were other and more pressing crises in the world.
그가 공산주의자로 몰리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내 키티의 공산주의자 이력, 동생의 공산주의자 이력, 그리고 수소폭탄 개발에 비협조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내와 동생을 사랑했고 그들을 지키고자 했다. 그들의 이념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동생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자로 알려진 물리학자들(그의 제자들을 포함해서)을 맨해튼 프로젝트가 진행된 로스 앨러모스 연구소에 영입한 것이기도 했다. 이것 역시 그가 몰리게 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진 태틀록과의 만남 역시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그녀의 적극적이고 열성적인 활동은 로버트가 행동할 수 있는 지식인이 되도록 했다. 비록 결혼하지는 못했지만 죽기 전까지 오펜하이머와의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죽음은 자살로 추정되었지만 FBI에 의한 살해 의문도 여전히 남아 있고.
I think that the world in which we shall live these next thirty years will be a pretty restless and tormented place; I do not think that there will be much of a compromise possible between being of it, and being not of it.
ROBERT OPPENHEIMER August 10, 1931
오펜하이머는 그의 친구들을 지키려고 했다. 특히 슈발리에의 반역 사건과 얽혀서 어려움을 겪어도 그는 슈발리에에 대한 것을 숨겼다. 그 대신 거짓말을 하게 돼서 그의 제자들이 직장을 잃고 어려움을 겪게 됐다. 그 거짓말은 이후 청문회에서도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책의 초반부를 읽을 때는 '그가 과연 공산주의자이자 소련의 스파이였는가', '누가 기밀정보를 빼돌렸는가', '과학자 X는 누구인가'라는 궁금증이 있었다. 저자들은 시종일관 오펜하이머의 무고를 보여준다. 그리고 기밀정보를 빼돌린 (의혹을 받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그 모든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그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되는 점들도 많다. 그는 왜 그랬을까?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책에서 여러 가지 근거를 제시하지만 결국에는 객관적인 자료들을 바탕으로 해서 추측만 해볼 수 있을 따름이다.
또한 그가 맨해튼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된 것도 잘 납득이 되지는 않는다. 그가 양자역학이나 천체물리학 (중성자별)에서의 업적이 있기는 하지만 당시에 알려진 물리학자들보다 더 유명하거나 뛰어난 학문적 업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그는 조직에서 리더를 맡아본 적도 없었다. 쟁쟁한 노벨상 수상자들 사이에서 그는 돋보일 것도 없었다. 단지 친구였던 어니스트 로렌스에 의해 추천이 된 것이었는데, 그의 다소 위태로운 과거 이력 (공산주의자라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책임자가 되었으니 말이다. 이 과정에서는 총책임자였던 그로브스 장군의 역할이 컸다.
어쨌든 오펜하이머는 '스파르타식'으로 진행된 맨해튼 프로젝트의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그 점은 그로브스 장군도 인정하는 바였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양자역학이나 핵물리학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미국이 세계 최초로 핵무기를 개발하는 성과를 올리게 된 것이었다. (이는 나치의 유태인 핍박을 피해 미국으로 온 물리학자들 덕분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다섯 명의 미국 대통령이 나온다. 그중 루스벨트, 트루먼, 아이젠하워의 경우에는 오펜하이머에 대한 입장이 달랐다. (케네디나 존슨은 그다지 비중은 없다) 루스벨트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필요성을 인정해서 그것을 지원하는 입장이었으니 오펜하이머에 대해서도 우호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트루먼은 오펜하이머에 대해 적대적이었고, 아이젠하워는 초반에는 우호적이었다가 나중에는 돌아서는 것처럼 나온다.
“Now We’re All Sons-of-Bitches”
Well, Roosevelt was a great architect, perhaps Truman will be a good carpenter.
아이젠하워가 그렇게 된 것은 루이스 스트라우스 때문이기도 하고, 매카시 때문이기도 하다. 매카시 열풍에 대통령조차 어쩔 수 없었던 상황. 그러나 군인출신이었던 아이젠하워와 그의 보좌진들로 인해 냉전이 더 심화되었기에, 소련과의 핵대결을 불가피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오펜하이머는 수소폭탄의 개발에 반대하였으며, 소형 핵무기와 같은 전술적 핵무기의 개발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전술적 핵무기를 한국전쟁에 사용하려는 얘기도 있었으니, 이 부분은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뻔했다. 실제로 한국전쟁 당시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하려는 논의는 있었다) 더 이상의 대규모 살상무기가 개발돼서는 안 된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결국 그 역시 수소폭탄의 개발에 참여하게 되었으나 그는 개발을 고의로 지연시켰다는 의혹을 받게 되었다.
그는 닐스 보어가 주장했던 '과학지식의 개방화'를 지지했고, 'candor(순수함? 이건 우리말로 뭐라고 번역했는지 모르겠다)'를 주장했다. 그는 말 그대로 순수했다. 그리고 그것 역시 반역자로 몰리게 된 이유가 되었다. (스트라우스를 자극하게 된 것이기도 했고)
그는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이후 그에 대한 죄책감을 느꼈다. 그러한 죄책감이 평생 그럴 따라다녔다. 그가 '내 손에 희생자들의 피가 묻어 있다'라고 했을 때 그를 조롱한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의 신념은 그렇게 바뀌었다.
“I Feel I Have Blood on My Hands”
If atomic bombs are to be added as new weapons to the arsenals of a warring world, or to the arsenals of nations preparing for war, then the time will come when mankind will curse the names of Los Alamos and Hiroshima.
ROBERT OPPENHEIMER October 16, 1945
이 책에서 왜 일본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게 되었는지도 자세하게 나온다. 사실 독일에 투하할 예정이었어나 독일이 원자폭탄 개발 전에 항복함으로써 명분을 상실했고, 일본과의 격전도 한창이었으나 사실상 일본도 항복을 준비하던 차였다. 굳이 핵무기를 사용할 이유가 없었지만, 소련이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고 참전한다는 정보에 그들이 참전하기 전에 서둘러 일본을 항복시키려 했던 것이다. 더불어, 원자폭탄의 위력을 시험해보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다. (원자폭탄의 위력을 두고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내기한 것은 경악할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이 참전함으로써 그러한 목적 자체도 달성하진 못했지만.
그런데 스트라우스는 왜 그렇게까지 집요하게 오펜하이머를 물어뜯으려 했을까? 오펜하이머와 스트라우스는 프린스턴 시절부터 계속 적대적 관계였지만 결정적으로는 수소폭탄 개발을 둘러싸고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고, 그 지위가 역전됨에 따라 오펜하이머를 철저하게 몰락시키고자 했다. 어쩌면 그는 이 평전 내에서 최고의 빌런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스트라우스의 계략은 성공했을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오펜하이머는 몰락하지 않았다. 비록 원자력위원회 위원자리를 잃고 보안등급을 상실했을지언정 오펜하이머는 굳건했다.
하지만 오펜하이머의 동료였다가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적대적이 된 사람들도 있다. 절친이었던 로렌스나 텔러 등은 청문회에서 로버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오펜하이머는 정말 멘탈이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늘 확신에 차 있었다. 맨해튼 프로젝트 직전부터 죽기 전까지 신상이 여러 번 탈탈 털리고, 계속 군대와 FBI의 감시가 있는 상황에서도 (그의 전화는 사실상 늘 도청되고 있었다) 그는 버텼다. 더군다나 4주에 이르는 보안 청문회도 견뎌냈다.
하지만 그가 정신적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청문회 직전에 그가 집에서 쓰러진 얘기가 잠깐 나오는데 다행히 일시적인 기절이었다. 이는 그가 정신적으로 힘들어한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그가 버틸 수 있었던 것에는 아내 키티의 역할이 컸다. 로버트와 키티는 서로에게 의지했다. 비록 서로에게 배우자로서는 흠이 있었더라도 (애초에 둘의 만남 자체가 잘못된 만남이 아니었던가. 불륜관계로 시작된 관계이니) 서로를 친구처럼, 동반자처럼 의지하면서 지냈다. 그래서 평생 동안 함께 할 수 있었다.
또한, 그들에게는 피터(아들)와 토니(딸)라는 두 아이가 있었는데 가족관계는 그렇게 원만해 보이지는 않는 듯했다. 그들이 자녀들을 사랑하기는 했지만 자녀들로서는 충분하지 않거나 혹은 잘못되었다고 느낄 수도 있는 듯하다. 나중에 에필로그에서 로버트의 죽음 이후 키티, 피터, 토니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대부분은 불행한 삶을 살았고, 불행하게 삶을 마쳤다. 그것 역시 안타까운 일이었다.
한 사람의 삶이 그 사람의 업적과 행적만으로 기록되지는 않는다. 어쨌든 그 역시 가족의 구성원이기에 가족들과의 관계도 삶의 한 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피터와 토니는 아버지를 사랑했고, 자랑스러워했으리라 생각한다. (비록 불만도 많았을 것이고, 불이익도 많이 받았겠지만)
오펜하이머는 1967년 2월 18일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40년 이상 골초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원자폭탄의 아버지가 당시에 개발되었던 베타트론으로 방사선치료를 받게 될 수도 있었으나 치료는 이미 의미가 없었다.
그의 친구였던 릴리넨탈은 이렇게 말했다.
"그(오펜하이머)는 후두암 진단을 받았을 때 처음으로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불확실해했다."
갑작스럽게 죽음이 드리워졌지만 그래도 그는 의연했다. 그리고 조용히 죽음을 맞이했다.
이렇게 한 사람의 일생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조만간 영화를 보러 가야겠다. 책에서 보인 그 많은 이야기들을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과연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하다. 누구보다도 놀란 감독이라면 기대를 해봄직하다.
그리고 영화 <오펜하이머>의 각본집도 예약 구매해 뒀다. 이건 영화를 보고 나서 정리하는 마음으로 봐야겠다.
“In Oppenheimer,” he wrote, “the element of earthiness was feeble. Yet it was essentially this spiritual quality, this refinement as expressed in speech and manner, that was the basis of his charisma. He never expressed himself completely. He always left a feeling that there were depths of sensibility and insight not yet revea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