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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Sep 04. 2023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나도, 더 가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막연하게나마 그녀를 따라가고 싶었던 것 같다. 나와 닮은 누군가가 등불을 들고 내 앞에서 걸어주고, 내가 발을 디딜 곳이 허공이 아니라는 사실만이라도 알려주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빛, 그런 빛을 좇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빛을 다른 사람이 아닌 그녀에게서 보고 싶었다. 그 빛이 사라진 후, 나는 아직 더듬거리며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어림해보곤 한다. 그리고 어디로 가게 될 것인지도 나는 그녀가 갔던 곳까지는 온 걸까. 아직 다다르지 않았나. p.44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중에서


최은영 작가의 신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구매하여 읽었다. 이 책은 두 권을 샀다. 신간이 나온다는 서점사 알림을 받고 양장본을 바로 주문했었는데, 책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학동네 이달책으로 나왔다. 그런데 이달책은 무선본이지만 작가님의 친필사인이 되어 있다길래 바로 구매했다. 친필사인본은 선착순으로 조기 종료되었지만 다행히 친필사인본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은 두 권을 갖게 된 것이다.


친필 사인


최은영 작가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꼽을 때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분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온 책들을 모두 두 번씩 읽었고, 이 책도 아마 그렇게 될 것 같다.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밝은 밤>, <애쓰지 않아도>까지, 그는 작품 속에서 관계와 소통에 대해 이야기를 해왔다. 그 기반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있지만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은 미미했다. 연결되어 있지만 아주 느슨한 것 같은, 그러면서도 당기려고 하면 반발력이 생기는 그러한 아슬아슬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긴장감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큰 사건으로 번지는 일은 별로 없다. 오해와 화해, 이해의 단계를 거치기도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 있을 따름이었다.


7편의 단편이 수록된 이번 단편집에서도 그는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역시나 실망을 시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안도했지만, 뭔가 이전의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듯한 것도 느껴졌다. 그게 뭐였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전의 작품들에서는 등장인물들이 대등한 입장에서 서로를 대하는 것들이 많았던 것 같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전반적으로 그랬던 듯하다.


하지만 이 단편집에서는 수평선이 수직선으로 변화한 양상을 보이는 듯하다. 각 작품에서 보이는 관계는 선생-제자, 선배-후배, 이모-조카, 삼촌-조카, 엄마-딸 등 그 관계 자체로만 보면 대등하다고 보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단어 자체의 의미로만 한정할 수 없는 관계가 드러난다. 그리고 그 관계는 수직과 수평의 어느 쪽도 아닌, 어디쯤엔가 기울어진 상태로 보인다. 어쩌면 그러한 것은 <밝은 밤>에서부터 이미 점차 선명하게 보인 듯하다.


이는 각각의 인물들이 갖고 있는 입체성과 상황 때문일 수도 있다. 그 인물들은 저마다 그 시점에서 그러한 것을 겪어야 했던 이유가 있다. 그 인물들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평범하고 불완전하기도 하다. 때론 그 이유가 관계의 불편함을 야기하기도 한다. 서로에게 진솔했던 것이 나중에는 불편함으로, 약점으로 남게 되었을 수도 있다.


그녀의 글에서 그녀는 성공한 사람도, 자유로운 사람도, 세상 다른 사람들보다 어딘가 특별하고 특출한 사람도 아니었다. 다만 그녀는 자신을 타인처럼 여기고 있었다.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무심했고, 더 나아가 무정하기까지 했다. 이겨내기 어려웠을 것이 분명한 비참한 순간에 대해 기록하고는 바로 다음 단락에서 슈퍼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태연하게 스크류바를 먹는 장면을 적는 식이었다. 본인이 의도했든 그러지 않았든 그런 식의 구성이 여러 번 반복되었는데, 그게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녀에게는 그런 아프고 폭력적인 순간들이 스크류바를 먹는 순간만큼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이었다는 느낌을 줬기 때문이다. p.21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중에서
그런 다희에게 그녀는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일을 융통성 있게 해야지, 다른 사람들 일까지 떠맡아서 할 필요는 없다고, 그러다 보면 그렇게 일하는 게 고마운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 되는 거라고. 몇 번 그런 이야기를 했을 때 다희가 웃으며 말했다.
선배 인턴이었던 적 없죠.
장난스러운 말투에 숨겨진 진심이 느껴졌다. 그 말을 하고 다희는 창밖을 내다보는 척 고개를 돌렸다. p.113 <일 년> 중에서


그러한 관계는 지속될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는 오래가지는 못했다. 이미 그 관계가 한시적이거나 혹은 언젠가는 서로에게서 벗어나야 하는 시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시한성이 서로의 관계를 더 악화시키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여전히 관계와 소통의 어려움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은영 작가의 미덕은 그러한 가운데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쩌면 제목에 표기된 대로 '아주 희미한 빛이라도'있다면, 그것에 의해 우리의 관계는 지속될 수 있고, 서로에 대해 더 이해할 수 있다는 듯이.


최은영 작가는 그러한 글을 쓰는 것이 쉬웠을까? 분명 어려웠을 것이다. 등단 10년 차가 되면서 그러한 부담감은 더욱 커져을 것이다.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은 단편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와 <몫>에서도 드러난다. 이는 스스로 글쓰기에 대해 가지는 부담감과 책임감의 토로일 것이다.


글쓰기는 의심하지 않는 순응주의와는 반대되는 행위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순응주의, 능동적인 순종. 그런 말들에서 나의 글이, 삶에 대한 나의 태도가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p.32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중에서
글 쓰는 일이 쉬웠다면, 타고난 재주가 있어 공들이지 않고도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당신은 쉽게 흥미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렵고, 괴롭고, 지치고, 부끄러워 때때로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밖에 느낄 수 없는 일,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것 또한 글쓰기라는 사실에 당신은 마음을 빼앗겼다. 글쓰기로 자기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다시 글을 써 그 한계를 조금이나마 넘을 수 있다는 행복, 당신은 그것을 알기 전의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p.75 <몫> 중에서


만남의 이유와 헤어짐의 이유가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시작되는 순간과 끝나는 순간은 분명 개인의 삶에서는 불연속적인 구간이다. 그 순간에서는 모든 가능성이 하나의 결과로 귀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과정이 그의 작품에서는 느리면서도 강하게 밀려온다. 각 작품의 후반부에서는 그러한 파동을 맞닥뜨리고, 그러한 파동이 지나간 후의 여운을 느끼게 된다. 또는 약간의 시간 차를 통해, 뒷날의 시점에서 앞날을 되돌아보게 하기도 한다. 그것이 최은영 작가의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또한 각 작품에서는 개인적인 서사뿐만 아니라 인물들을 둘러싸고 있던 것들 (가족 내에서의 물리적, 정서적 폭력이라든가 사회적인 문제들)도 엮여 있다. 이는 그 인물에 대한 부연 설명이 되지만 그로부터 벗어나거나 그것을 뚫고 나아가진 못한다. 하지만 자신의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 시점에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단편소설에서는 여러 시점으로 이동하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단지 그러한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 단편집에 수록된 모든 작품들이 인상 깊었고 기억에 남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답신>과 <이모에게>가 기억에 남는다. 두 작품은 가족 내의 이야기라는 유사성이 있지만 보이는 것은 달랐다. <답신>은 이모의 관점에서 조카에게, <이모에게>는 조카의 입장에서 이모에게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 답답하고 억눌린 상황에서 저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고자 했던 것이 가져온 결말. 


"맞아. 별것도 아닌 거야. 근데 이모, 그 말은 나만 할 수 있는 거야."
이모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꼭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묵은 상처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 순간의 감정을 나는 잊고 있었다. 좋은 것만 기억하려고 하면서, 내가 이모와 비슷한 환경에 놓였다면 이모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되지 못했을 거라고 이모를 이해하려고 하면서. 그것이 이모에 대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모는 가장 기본적인 수준의 공감조차도 하지 않으려 했다.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냉정한 이모 앞에 선 일곱 살짜리 아이가 된 것 같았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는 뜨거운 감정이 목을 타고 올라왔다. p.252 <이모에게> 중에서


이는 <파종>이나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에서도 비슷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가족의 이야기가 가장 공감을 얻을 수 있으면서도 또 가장 어려운 듯싶기도 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가장 기본이 되고 또 밀접하게 지내는 것이 가족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가족 간의 관계와 소통이 어렵기도 하고.


최은영 작가는 분명 강점을 지닌 작가이고, 자신이 잘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있다. 비록 답답해 보인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스케일이 작다고 하기도 하지만 (그 말도 <밝은 밤> 등의 작품을 보면 틀린 듯하다) 나는 그가 본인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글을 계속 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대답하고 기남은 불현듯 이해할 수 있었다. 부끄러움. 마이클의 말이 맞았다. 기남은 부끄러웠다. 우경의 눈에 비칠 자신의 모습이, 그 애가 오래전 자신을 멀리 떠난 일이, 진경의 알코올중독이, 두 아이가 결국 화해하지 못하고 지금에 이른 사실이...... 기남은 부끄러웠다. 남편에게 단 한 번도 맞서지 못하고 살았던 시간이, 그런 모습을 아이들이 보고 자란 것이...... 기남은 부끄러웠다. 부모에게 단 한순간도 사랑받지 못했던 자신의 존재가, 하지만 그 사랑을 끝내 희망했던 마음이...... 기남은 이 모든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다. 부끄러워서. 기남은 죽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p.318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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