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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Sep 25. 2023

글을 쓴다는 일


나는 스스로가 글을 잘 쓰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내가 쓴 글을 읽고 무언가 느낄 수 있기를, 내 글을 인정해 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시나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는 꿈을 안고 살아왔다. 지금은 비록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내가 좀 더 나이가 들고 여유가 생긴다면 그때는 본격적으로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그냥 어린아이 같은 꿈이었을 따름이고, 착각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착각이었고, 글 쓰는 일에 대한 착각이었다. 그걸로 직업을 삼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 역시도 착각이었다. 글은 그렇게 쓰는 것이 아니었고, 아무나 글을 쓰는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블로그, 브런치, 커뮤니티, SNS 등 여러 매체에 많은 글들을 써왔지만 대부분은 개인적인 끄적거림이었고, 좋고 나쁨을 평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것들이었다. 브런치의 경우에는 별 의미가 없긴 하지만 '작가'라는 타이틀도 달고 있음에도 특별히 다를 바가 없었다.


브런치를 비롯해서 여러 매체를 보면 글을 쓰는 사람들이 정말 많고, 글을 잘 쓰는 사람들도 정말 많으며, 책을 낸 사람들도 많다. 또는 웹소설 등 다른 매체에서 성공하는 사람들도 많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 소위 필력과 내공이 느껴지는 달필들이 많으며 그 소재와 상상력에 놀라기도 한다. 그에 비해 나는 매우 어설프다. 이젠 글을 쓴다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가 되는 진입장벽은 예전보다 낮아졌다. 이젠 등단을 하지 않더라도 많은 길이 있고, 또 굳이 등단을 하지 않아도 된다. 공모전이나 문학상도 예전보다 많아졌다. 작가로서 성공하는 사람들도 많아지니 누구나 쉽게 작가가 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야말로 착각이다.


작가로서 데뷔를 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쉬워졌다고 해도 출판시장에서 작가는 여전히 최하단에 위치한다. 자신의 책이 나온 기쁨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 웬만큼 유명한 작가가 아니라면 책은 많이 팔리지 못하고 2쇄를 가는 것조차 힘들어지기도 한다. 겨우 몇 쇄를 찍어도 인세로 들어오는 수입은 다른 직업에 훨씬 못 미친다. 그러니 작가를 직업으로 택하는 것은 설사 정말 좋아서 하는 것이라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버티기 어렵다.


작가로서 사는 것이 쉽지 않음은 여러 작가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나 장강명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김초희 <책과 우연들> 등에서는 소위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가들 역시 같은 고민을 하면서 글을 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다작을 하는 작가지만 매일 정해진 시간, 일정분량의 글을 쓴다. 글을 쓰고 싶어서 쓰는 것이지만 어쨌거나 글을 쓴다는 것은 작가들에게는 노동이고, 그 노동에 대한 대가를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지 금전적인 대가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반응, 문학상 등. 그럼에도 그들이 그러한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좋아서 하는 것이고, 그것에서 보람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적성에 맞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하루키의 말처럼, 소설을 한 두 편 써내는 건 쉽지만 작품을 지속적으로 쓰고 그것을 직업으로 삼으며 살아남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극히 일부만 성공할 수 있는 일이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평범한 진리가 글쓰기에도 예외는 아닌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것이 좋은가 아닌가에 대한 찬반 의견은 갈린다. 좋아하던 일을 직업으로 하게 되면 더 잘할 수 있다는 의견과, 그게 직업이 되는 순간 많은 제약들로 인해 그 일을 싫어하게 될 수도 있고 또 애초 생각했던 것과 달라 회의가 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양쪽 다 수긍은 되지만 반대쪽의 의견이 좀 더 현실적일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이라도 그것을 직업으로 삼는 것은 정말 단단한 각오와 많은 것을 포기할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억지로 하기는 힘든 일이다. 내가 글을 쓰는 것 중에도 억지로 쓰는 것들이 있긴 하다. 바로 '논문'이다. 연구자로서, 학자로서 기본적인 조건이지만 무언가 남들에게 내세울만한 연구결과가 별로 없다 보니 실적을 채우기 위해서 꾸역꾸역 논문을 쓴다. 그것이 논문으로서의 가치가 별로 없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쓴다. 그렇게 쓰는 것은 비록 논문의 형식, 글의 형식을 갖추었지만 재미도 보람도 없다. 글을 쓴다는 것이 그렇게 의무적이고 고역이 된다면 굳이 글을 써야 하는 의미가 있을까? 설사 그것이 직업이라고 하더라도?


그런데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점점 더 어려워지는 듯하다. 거창한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창작의 고통을 논할 것도 아닌 그냥 일상의 글인데도 그렇다. 쓰고 싶은 얘기는 많지만 어떻게 풀어나갈지가 늘 고민이다. 무엇보다 내가 게으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할 것이다. 글을 쓰려면 시간을 투자하고 집중하고 고민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 보지만 (시간은 한정적이고 기회비용인 것은 맞지만) 결국엔 내 의지의 문제인 것이다. 또한 진정성이 부족했다는 반성도 해본다.


결국 나는 그저 안일하게 글 쓰는 일을 생각했다. 가장 기본적인 소양조차 갖추지 못한 채. 그래서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것은 그냥 상상 속의 것으로만 남겨두고, 대신 지금처럼 부담 없이 글을 쓰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나 소설이나 시를 쓰겠다는 마음마저 접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아니 언제라도 글을 쓸 수는 있다. 적어도 책을 좋아하고, 문학을 좋아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니까. 그러니 미래를 정해놓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내려놓아도 되지 않을까. 꼭 작가가 되거나 작가로서 인정받지 않아도 글을 쓸 수는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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