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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Oct 10. 2023

그레이스 조 <전쟁 같은 맛>


상실의 슬픔을 글쓰기로 달래 보려 시작한 프로젝트였지만, 이 책은 때 이른 죽음을 맞이한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와 닮은 사람들을 기리고 애도하는 데 실패한 한미 사회에 대한 정의 회복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어머니의 삶을 애도하지 못하게 했던 세력은 어머니를 죽인 세력과 동일했다. 내가 학자로서 해온 작업들과 더불어, 이 책은 우리 가족사에 켜켜이 쌓인 층을 벗겨내 어머니를 애도하고, 당신에게 붙은 온갖 꼬리표를 넘어서는 존재였던 그분의 모습을 기억하려는 내 개인적 여정의 일환이었다. pp.6-7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내 책이 번역됨으로써, 나는 어머니의 딸이자 디아스포라 한인으로서 내 유산에 대한 복잡다단한 개인적·역사적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p.10


이 책은 여러 면에서 미셸 자우너의 <H마트에서 울다>를 떠올리게 했다. 둘 다 한국계 어머니를 둔 미국인 혼혈인들이 쓴 책이고,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음식이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들의 어머니들은 병으로 (암으로) 사망하였고, 아버지들은 가족들에게 대체로 무관심한 편이었다. 미국으로 간 어머니들은 외로움과 문화적 차이, 생활고를 이겨내며 고군분투했어며, 저자들은 그러한 부모들에게 양가적 감정을 느끼며 자랐다. 저자들은 청소년기에 어긋날 뻔하기도 했지만 그러한 것을 극복하고 각자의 커리어를 이루어갔으며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고 그것을 회고한다.


하지만 <전쟁 같은 맛>은 <H마트에서 울다>와는 근본적인 차이점을 갖는다. <전쟁 같은 맛>의 저자의 어머니 군자는 젊은 시절에 부산의 기지촌에서 성노동을 했던 경력이 있었다. 훗날 그 사실을 알게 된 그레이스 조는 이에 대한 연구를 하여 박사학위 논문을 썼고, 이를 바탕으로 관련된 저서를 내기도 했다. <전쟁 같은 맛>은 그러한 연구의 일환이자 결과이기도 했다.


또한 군자는 조현병을 앓기도 했다. 그레이스는 조현병에 대해서도 연구를 했다. 어머니의 병의 원인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마치 "왔던 곳으로 돌아가"라는 외국인 혐오자들의 말을 따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당신이 온 곳을 짚어내기란 쉽지 않았고, 그래서 엄마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엄마는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 일본으로 강제징용된 한국인 가정에서 태어났고,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가 전쟁과 분단, 미국의 점령을 겪은 뒤 미국인인 아버지와 동침했다는 죄로 추방당했다. 엄마는 내면으로 움츠러들며 당신을 이 갈등의 장소로 다시 데려가, 자기 존재를 짓이겨 없애고 무가 되어 사라져 버리고 싶어 하는 것만 같았다.
우리가 옮겨 온 동네는 피난처가 되지 못했고, 소위 구제되었다는 명목으로 이민자들에게 끊임없이 정신적 대가를 치르게 했던, 제국의 폭력으로 얼룩진 또 다른 장소에 불과했다. 엄마는 미국인이 된 바로 그곳에서 조현병을 앓게 되었다. p.20


이 책은 한 인간의 삶을 다루지만 거기에서 확장하여 전쟁, 기지촌 여성들의 삶, 이민자의 삶, 문화적 차이, 트라우마, 조현병 등 다양한 주제를 4부로 나누어 다루고 있다. 여러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이 따로 놀지 않고 이질감이 덜한 것은 군자와 그레이스의 삶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 저자의 고민과 통찰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레이스의 문장은 개인과 국가(한국)의 역사의 상처를 정확하게 포착하였고, 담담하면서도 애정 어린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제목의 '전쟁 같은 맛'은 군자가 전쟁 때 겪었던 트라우마를 반영한 것이다.


저자는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얘기한다. 그러한 얘기들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겠지만 이야기의 중심인 어머니가 이 책의 집필과 출판을 지지해 주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군자 역시 그러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텐데 딸의 손을 빌려 그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셔헤일리스 사람 대부분은 엄마가 이사 오기 전까지 이민자를 대면해 본 적이 없었다. 표면만 보지 않고 그 안을 들여다봤더라면, 이들은 엄마가 출신 국가의 생활 방식을 고수하면서 그걸 전염병처럼 퍼뜨린다거나, 합법적인 미국인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으려 드는 그런 이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기실 그런 이민자들은 우리 마을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건 단지 추상적으로만 존재하는, 우익 언론이 만들어낸 이미지의 합성물일 뿐이었다. 황화론, 외국인 침공. 미국 사회의 근본을 흔드는 외국인의 손.
아니, 우리 엄마는 미국인이 되고 싶어 했다. 작은 것 하나까지 배워서 미국식으로 하려고, 미국인이 되려고 노력했다. 엄마가 미국에서 취한 것이라고는 다른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최저임금도 못 받고 야간 근무를 하는 일밖에 없었다. 이민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은 직접 만나보고도 엄마를 온전히 보지 못한 채, 자기 상상에 뼈와 살을 붙인 허수아비만을 보았다. p.79


군자는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았지만 각각의 환경에서도 살아남으려 했고, 강한 생활력과 용기를 보여주었다. 백인우월주의와 인종차별이 심한 소도시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대가는 너무 혹독했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한 사람만의 문제는 아니었으며 한국이나 미국에서의 시스템적인 문제였으므로 쉽게 해결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기지촌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에게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있었고, 그동안 우리의 인식 속에서 잘못 자리 잡았던 것들도 점차 바로 잡혀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조현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조현병이 단지 유전적인 영향이나 환경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하지만 사회적인 문제 역시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즉, 군자는 조현병을 앓지 않았어도 됐다고 얘기한다. 


2016년 대선을 계기로 나는 <우리의 가장 문제적인 광기: 여러 문화권의 조현병 사례 연구 Our Most Troubling Madness: Case Studies in Schizophrenia acros Cultures>를 읽기 시작했다. T. M. 루어먼은 책 서문에서 우리가 흔히 '조현병'이라 일컫는 일련의 경험이 생물학적인 만큼 사회적인 질병이라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쳐나간다. 루어먼은 여러 연구에서 광범위하게 증명되어 더 이상 논쟁의 여지가 없는 [조현병 발병의] 여러 사회적 위험 요소를 제시하는데, 엄마는 그 여섯 가지 중 다섯 가지에 해당된다. 이 가운데 유년기에 겪은 사회적 역경,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 신체적 혹은 성적 트라우마 - 이 세 가지는 피폐한 정신과 늘 관련 있었던 요소다. 하지만 나머지 두 가지는 언뜻 보기에 직접적인 관련성이 떨어지는 듯 보일 수 있는데, 이민 경험과 유색인이 백인 동네에 사는 것이다. 
엄마는 조현병을 앓지 않아도 됐다.
나는 이 사실을 항상 뼛속들이 알고 있었지만, 과학적 증거 없이는 그런 주장을 적법하게 펼칠 수 없었다. pp.96-97


또한 이 책에서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군자의 요리실력이 출중했음을 보여주는 일화가 여럿 등장하고, 그레이스 역시 요리를 좋아하고 제빵 및 요리 자격증을 취득하였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요리와 음식은 단순히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다. 음식은 군자의 기억과 그레이스의 추억을 잇는 매개체이자 그레이스가 한국계의 정체성을 갖도록 하고, 이를 인식시키는 장치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전쟁, 이민, 질병 속에서도 그것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기도 했다. 


박사과정을 시작하고부터 첫 책 출간까지 10년에 걸친 연구와 글쓰기 여정은 내가 엄마를 위해 요리를 한 시기와 정확히 일치했다. 학계에 발을 들여놓기로 한 건 개인적인 질문을 탐구하기 위해서였다. 안전하고 친숙한 공간에서 위험을 감수할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반면 요리는 엄마가 내 진정한 소명이라 여겼던 학자의 길에서 벗어난 것이었기에, 내겐 늘 금지된 영역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요리는 내가 과거를 탐구하고 배우는 데 있어 연구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했다. p.21


우리는 이 작품에 얼마만큼 공감할 수 있을까? 여러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사랑의 힘을 느낄 수가 있다. 결국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사랑이다. 가족 간의 사랑, 그리고 인간들 간의 유대감. 인종과 사회적 위치를 넘어 서로에게 갖는 애정. 그것이 문제 해결의 시발점으로 보고 있다. 그것이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담요 밑으로 엄마는 내 오른발을 잡아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문질러주었다. 담요의 따스함과 엄마의 손길에 아기였을 때 엄마 등에 업혀 어깨 사이에 뺨을 기대던 때가 생각났다. 오리건에 계신 외할머니와 진호네를 방문했을 때 전기장 판에서 엄마랑 같이 누워 자던 그 모든 기억도. 엄마 옆에 다시 눕고 싶다는 참을 수 없이 강렬한 갈망이 나를 덮쳤고, 이내 내가 바랐던 바로 그 일이 이미 일어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한두 마디 대화를 나눈 걸 제외하고, 우리는 67분이라는 시간을 거의 소파에 누워서 조용히 흘려보냈다. 폭신한 한국 이불 밑에 들어가 서로의 몸에서 전해지는 온기를 느끼자 긴장이 녹아내렸다. 괘종시계가 똑딱거리는 소리를 따라 우리 숨결도 오르내렸다. 지금 이 순간을 함께하면서. 시계가 7시를 가리키며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릴 때까지 우리는 계속 그렇게 있었다. 

떠나려는데, 회한이 찌르는 듯이 가슴에 사무쳤다. 이미 작별 인사를 하고 계단을 두 칸 내려왔지만, 어쩐지 뒤를 돌아보게 됐다. 

"엄마, 이것만 생각해요. 우리 다음에 만날 땐 봄이 와 있을 거야." 나는 말했다. "그러면 치즈버거 시즌이죠." p.441




p.s. 미국 내에서도 이 책에 나온 내용의 진위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오빠(아버지가 다른)가 제기한 반론 및 저자의 거짓 등에 대한 주장이 이 책을 논란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 그는 이 작품이 회고록이 아닌 소설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https://www.goodreads.com/review/show/4314883805#comment_list


이에 대해 국내 출판사인 글항아리 측에서도 해명글을 내놓았다.


http://geulhangari.com/archives/12147


독자로서 이러한 논란이 야기되면 혼란스럽다. 사실 당사자들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내용들도 있고, 설사 같은 것을 겪었다고 하더라도 각자의 입장에서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글을 그대로 믿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일차적으로는 그 글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 대한 감상은 작품 자체에 기반하게 되었다.


#북클럽문학동네 #이달책 #독파 #전쟁 같은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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