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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Oct 18. 2023

욘 포세 <아침 그리고 저녁>


그리고 이 고요하고 고요한 소리들 쉬쉬 그래 그래 쉬아쉬에 쉬쉬우오우 그리고 스스로 느끼며 쉬 그렇지 그리고 그 고요함 그렇게 그래 그리고 그 온기와 그 소리들 그래 거기 그래 고요하고 따뜻하게 그리고 그 두려움, 분리된, 분리된, 그리고 저 바깥의 목소리, 저 바깥, 모든 목소리 그리고 더 이상 그 무엇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그래 옳지 그래 그렇지 어린 요한네스는 소리를 지르고 또 지르고 더 이상 그 무엇도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그리고 모든 것은 서로에게서 떨어져 나와 하나의 고요한 소음이 된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면 그 작가의 작품들을 읽어보곤 했다. 올해 수상자인 욘 포세는 이전에도 잘 몰랐던 작가였고, 작품도 처음 읽어보게 되었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된 이 작품, <아침 그리고 저녁>은 여러모로 독특한 작품이었다. 150여 페이지 정도로 분량이 적고 또 읽기도 어렵진 않았지만 우선 1부와 2부로 나뉜 시간의 간극이 당황스러웠다. 태어나자마자 생의 마지막 날로 직행하는 그런 작품이 또 있을까? 하지만 그 간극은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요한네스의 마지막날로부터 그의 삶을 역추적해볼 수 있었던 것이다.


보는 것마다 변해 있으니, 눈앞의 보트하우스들 역시 너무 무거운 동시에 믿을 수없이 가벼워 보인다,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아니 아마도 그는 결코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상상일지도 모른다, 보트하우스들이 평소와 달라 보이는 것도, 여하튼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확신할 수 없다, 달라진 것이 있어도, 그것은 아마 그의 내부에서 일어났다고 보는 게 가장 그럴듯할 것이다, 아니면 혹시 밖으로부터 온 것일 수도 있을까? 저 바깥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을까, 대수로운 게 아니라도, 그에게 이런 느낌을 주는, 그저 뭔가 아주 사소하지만 모든 것을 완전히 달라 보이게 하는 그런 일이?


다 읽고 나서는 탄생과 죽음. 그것이 이 작품의 제목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적절한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삶과 죽음은 탄생과 죽음보다는 오히려 더 모호했다. 2부에서 요한네스는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가 죽었다는 것은 말미에 가서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죽고 나서도 그는 살아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의 친구 페트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왜 죽어서도 살아있는 것처럼 행동했을까?


그리고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지금 이게 뭐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군, 오늘 페테르와 밖으로 나가 게망을 끌어올리지 않았나 그리고 꽃게를 팔러 시내에도 갔었는데, 하나도 팔지 못하고, 페테르가 안나 페테르센에게 선물로 꽃게가 가득 든 비닐봉지 하나를 넘겨준 게 다지, 그러니까 페테르가 봉지를 부두에 놔두고 왔고, 한참 후 그녀가 와서 가져갔지,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기로하고 조금 지나서 안나 페테르센이 왔었지, 그 모든 일이 생생한데, 지금 내가 죽었다니
이제 자네도 죽었다네 요한네스, 페테르가 말한다
오늘 아침 일찍 숨을 거뒀어, 그가 말한다


여기에서 작가가 우리의 삶은 죽어서도 계속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했다. 인간이 태어나고 죽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서 계속 이어진다는 것.


그래 그런 거지, 요한네스는 말한다
자네 또 혼잣말을 하는 건가, 페테르가 말한다
그리고 페테르는 키를 잡고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며 앉아있다
그래 그렇다네, 요한네스가 말한다
그래 자네도 참 많이 늙었어, 요한네스 이 친구야, 페테르가 말한다
그리고 그는 요한네스를 다정하게 바라본다
그렇겠지 요한네스가 말한다
그래 나도 아니라고 못하겠네, 페테르가 말한다
우린 더 이상 한창때가 아니지, 요한네스가 말한다
그럼 절대 아니지, 페테르가 말한다


또한 이 작품의 문체 역시 독특하다. 생각하는 것들이 쉼표로 계속 이어져서 어디가 문장의 끝인지 찾기가 어려웠다. 반면 마침표는 거의 사용하지 않아서 (열 군데 정도 있다고 한다) 더 혼란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 문장은 짧게 계속 이어지고 단어들도 반복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 속에서 운율이 느껴졌는데, 마치 작품 전체가 하나의 산문시 같기도 했다. 등장인물들의 대사들은 한 줄씩 끊어져 있어서 더욱 시와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고. 그러한 리듬감이 욘 포세 작품의 특징이기도 한 것 같다.


그리고 그 문장들 속에는 인물들의 감정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 부분들이 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도록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비록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작가는 죽음 이후의 세계가 평화롭고 좋은 곳일 것이라고 보여준다. 그것이 사실일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구태여 죽음을 서둘러 맞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오늘이다. 이 삶 속에서 우리는 모든 순간이 소중하며, 함께 하는 사람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껴야 할 것이다. 이 평범한 일상이 돌아보면 행복이었음을 깨닫게 되겠지.


그리고 페테르와 그는 그 자신이면서 동시에 아니기도 하다, 모든 것이 하나이며 서로 다르고, 하나이면서 정확히 바로, 그 자신이기도 하다, 저마다 다르면서 차이가 없고 모든 것이 고요하다 그리고 요한네스는 몸을 돌려 저 멀리 뒤편, 저 아래 멀리, 싱네가 서 있는 모습을 본다, 사랑하는 싱네, 저 아래, 멀리 저 아래 그의 사랑하는 막내딸 싱네가 서 있다. 제일 어린 마그다의 손을 잡고서, 그리고 요한네스는 싱네를 바라보며 벅찬 사랑을 느낀다, 그리고 싱네 곁에는 그의 다른 자식들 모두와 손자들과 이웃들과 사랑하는 지인들과 목사가 둘러서 있다. 목사는 흙을 조금 퍼올린다, 싱네의 눈에도 에르나에게서 본 것 같은 빛이 있다. 그리고 그는 모든 어둠과 저 아래서 벌어지는 모든 궂은일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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