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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Dec 08. 2023

아버지의 꿈과 삶

DALL_E3로 생성한 이미지


오늘은 부모님의 결혼 50주년 기념일이라 좀 전에 전화를 드렸다. 그런데 정작 두 분은 결혼기념일이라는 것도 잊고 계셨다. 그것도 50주년인데 말이다.


내년에 칠순인 어머니께서는 역시나 일 하느라 바쁘셨고, 곧 팔순인 아버지께서는 서예전시회에 출품했던 작품을 가지러 가시는 중이라고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서예에 취미가 있으셔서 동호회 활동도 하시고 매년 전시회에 출품하셨다.


시골에서 두 분만 계시고, 나도 멀어서 자주 내려가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두 분이 같이, 건강하게 지내고 계셔서 다행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내년에 전문대에 입학한다고 하신다. 그것도 소프트웨어공학과... 코딩은 고사하고 컴퓨터나 스마트폰 사용도 제대로 못하셔서 매번 나한테 전화해서 물어보셨는데 뜻밖이었다. 종종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컴퓨터나 스마트폰 사용 수업 같은 것은 들으신 적이 있었는데 전공으로 배우시겠다니... 그것도 오프라인 대학이고 젊은(?) 학생들과 같이 배우실 것을 생각하니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 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내가 내년에 사이버대 가겠다고 하는 건 아버지에 비할 바도 아니었네.




몇 년 전, 아버지에게 문득 여쭤본 적이 있었다. 멋쩍어서 한 번도 여쭤보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나: 아버지의 꿈은 뭐였어요?

아버지: 뭐 꿈이랄게 있겠나?

나: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은 있으셨을 거잖아요.

아버지: 내는 뭐 니들 키우고 하느라 그런 거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 혹시 작가가 되고 싶진 않으셨어요? 아버지 글 쓰는 것 좋아하셨잖아요.

아버지: 하모, 그러긴 했지...


부모님에게도 꿈이 있으셨으리란 생각을 그동안 못하고 살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바라는 것만 생각하며 살아왔었다. 


어머니께서는 좀 더 일찍 본인이 하고 싶은 일들을 시작하셨고, 아버지께서도 귀향 후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계신데 아무쪼록 두 분께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잘 지내셨으면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리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두 분 다 일욕심이 있으셔서 그게 제일 걱정이다.


DALL_E3로 생성한 이미지




아버지께서는 결혼 전부터 계속 일기를 써오셨다. 아마 지금도 매일 일기를 쓰고 계실 것이다. 부모님과 같이 살 때 안방의 서랍장 안에는 아버지의 일기장이 가득 있었는데, 몰래 슬쩍 들춰보곤 했었다. 내가 태어나던 날의 일기도 찾아본 적이 있었는데 경상도분이시라 무뚝뚝한 아버지께서도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 대한 감격과 기대가 가득했었다. 


그 속에 담겨 있는 아버지의 60여 년의 인생 기록이 궁금해졌다. 언젠가는 다 읽어보고 싶다. 그 누구의 자서전보다도 훌륭한 기록이기에. 그렇게 아버지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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