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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Dec 28. 2023

읽다, 쓰다

이 글을 그대로 넣고 DALL-E로 생성한 이미지


읽는 것도 좋아했고 쓰는 것도 좋아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내 속에 계속 자리 잡고 있는 방사선원과 같을 듯하다. 그 자체가 붕괴하면서 끊임없이 방사선이 나오는 것처럼 내 속의 생각들은 계속 붕괴하면서 그것들이 글로 표출되는 것이다.


그러나 방사선원이 붕괴하더라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바뀌고, 그것이 또 연쇄적인 붕괴를 일으키듯 생각도 다른 생각으로 전환되고 연속적인 생각으로 이어진다. 


글로 남는 것. 그것은 기록이다. 방사선, 특히 입자방사선이 검출기, 구름상자나 필름에 궤적을 남기듯, 내 생각들도 종이 위에, 모니터 위에 궤적을 남긴다. 


하지만 방사선원과의 차이가 있다면, 방사선원은 반감기에 따라 확률적으로 붕괴가 이루어지지만 나는 생각이 흘러넘쳐서 주체를 하지 못할 때 글을 쓴다. 혹은 단편적으로 무엇인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갈 때 글을 쓴다. 무언가 쓰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것 같을 때도 글을 쓴다. 누구에게 보이고 싶을 때도 글을 쓴다. 즉, 내가 글을 쓸 때는 어떤 확률적인 분포 혹은 간격이 없다.




뜬금없이 글쓰기를 방사선에 비유해서 얘기하고 있다. 이는 내 전공분야가 방사선이라 가장 친숙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렇듯 나는 글을 쓸 때 나의 전공분야를 접목시킨 메타포를 많이 이용한다. 여전히 이과적인 사고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은 최소한 재미, 감동, 지식, 통찰력 중에 한 가지 이상은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건 읽는 것이나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 그런 글을 써야 하고 그런 글을 읽어야 한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계속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글은 꼭 완성될 필요는 없겠지만 최소한 어느 정도의 형식은 갖추어야겠다. 이렇게 끄적거리는 글들도 그러한 연습이 될 것이고 이것들이 모여서 나의 글 쓰는 패턴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얼마나 많은 글을 써 왔던가. 그것들을 모두 모아서 학습을 시킨다면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생성해 낼 수 있을까? 그건 아닐 것 같다. 아마 전형적인 패턴을 찾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도, 글도 계속 바뀌어 왔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 글들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각각에 대한 변명이나 혹은 당위성을 설파하는데 그친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과거의 글들을 보면 부끄러움이 더 앞선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글들은 나의 성장과 발전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의 생각과 감정을 글로 표현해 나갈 것이다. 단순히 문자를 종이에 옮기는 것을 넘어서 나 자신을 오롯이 담고자 한다. 


무엇보다  글은 꾸준히 써야 한다. 소설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매일 정해진 시간, 분량만큼을 꾸준히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행여 쥐어짜 내더라도 자리에 앉아 글을 쓰는 것. 그런 것을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마음 내킬 때 글을 쓰고, 충동적으로 글을 쓰는 나 같은 사람도 작가가 될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브런치는 어쩌면 도전과 같다. 이곳에 일주일에 한두 편이라도 글을 남겨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발행하지 못하고 쓰다가 만 글들이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데 그것들을 다듬어 완성시키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내 마음속을 들여다본다. 내 마음속에 있는 이 '읽고 쓰기'에 대한 갈망은 내가 원하는 만큼 충족될 수 있을 것인가? 다른 이들에게 잘 전달되고 소통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늘 그러한 과정의 어디쯤엔가 있지만 (또한 늘 발전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 퇴보할 때도 많지만) 그래도 계속 나아갈 것이다. 불분명한 목표점일지라도 그곳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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