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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Dec 11. 2023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난 항상 할머니가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시대 여자들 중에는 말야."
그 지점에서 우윤의 의견은 지수와 갈렸다. 우윤은 할머니가 행복했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가진 조각들이 다르네, 할머니가 나눠준 조각들이 다른가 보네,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역시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강렬한 인물, 보편적이지 않은 인물이었다. 성격상 쉽게 분쟁에 휘말리는 편이었고, 그럼에도 자기 의견을 좀처럼 굽히지 않았으며, 대중의 가벼운 사랑과 소수의 집요한 미움을 동시에 받았다. 쉽사리 희미해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시대에 따라 다른 평가를 받았는데 세상을 뜨고 십 년이 지나자 사람들이 어디선가 자꾸 조각글과 영상들을 발견해 냈다.
"유명세는 모든 걸 왜곡시켜 버리는 경향이 있어."
할머니는 시달림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했다.


그동안 정세랑 작가의 작품들을 여러 편 읽어보았는데 대체로는 경쾌하고 밝은 이미지의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시선으로부터>는 분위기나 내용이 좀 다르다는 얘기를 본 적이 있어서 궁금했다. 과연 어떤 내용이기에?

제목의 '시선'으로부터가 의미하듯 뭔가 좀 더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을까, 어떤 시선을 의미하는 것일까 호기심을 자아냈다. 하지만 앞부분에 '심시선 가계도'가 나와 있는 것을 보고 다소 당황스러웠다. '시선'이라는 것은 심시선이라는 인물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나온 후손들의 이야기. 그래서 '시선으로부터'다.



또한 가계도는 다소 복잡해 보였다. 시선의 두 번의 결혼으로 태어난 자녀들, 그리고 재혼한 남편의 전처와의 사이에서 나온 딸. 가계도만 봤을 때는 뭔가 복잡해 보였고 책에서 어떤 서사가 전개될지 짐작하기 어려웠는데 책을 읽다 보니 각 인물들을 파악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기일 저녁 여덟 시에 제사를 지낼 겁니다. 십 주기니까 딱 한 번만 지낼 건데, 고리타분하게 제사상을 차리거나 하진 않을 거고요. 각자 그때까지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 이걸 보기 위해 살아있었구나 싶게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오기로 하는 거예요 그 순간을 상징하는 물건도 좋고, 물건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를 공유해도 좋고”


이 책의 줄거리는 간단하게 한 줄로도 요약할 수 있다. 심시선의 10주기를 맞아 그 자식들이 하와이로 특별한 제사를 지내러 가는 이야기. 여기서 키워드는 세 가지다. 심시선. 하와이. 제사.


첫 번째 키워드 심시선. 시선은 화가이자 미술평론가, 작가다. 생전에 30여 권에 가까운 책을 썼고, 많은 기고를 했으며, 방송에도 많이 출연했다. 설정상으로는 시대를 앞서간 여성이자 페미니즘을 보여주는, 다소 도발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국내외에서 많은 시련과 고난이 있었다. 한국전쟁으로 가족이 죽는 것을 목격했고, 팔려가다시피 하와이의 이주노동자로 와서 살았으며, 독일 화가의 꼬임에 넘어가 독일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미술 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다른 이들의 도움으로 한국에 와서 정착해서 살며 많은 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는 사이 연관이 있었던 사람들과 두 번의 결혼을 하게 된 것이었고.


할머니도 PTSD에 시달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한참 지나서 젊은 날을 돌아보며 마티아스에게서 왜 더 빨리 벗어나지 못했는지 구구절절 변명에 가까운 설명을 늘어놓고 있지만, 실은 PTSD 때문이었을 것이다. T에서의 학살이 있고 몇 년 지나지 않았으니 조각난 상태, 무척 조종당하기 쉬운 상태이지 않았을까? 할머니에게 그 점을 짚어 알려주고 싶었다. 21세기 사람들은 20세기 사람들을 두고 어리석게도 나은 대처를 하지 못했다고 몰아세우지만, 누구든 언제나 자기 방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온전한 상태인 건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다. 그러니 그렇게 방어적으로 쓰지 않아도 된다고, 기억을 애써 메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게는 갑甲, 처음으로 오는 최상의 것, 뛰어나고 단단한 것이란 의미로 병풍에 자주 그려지던 동물이었다. 그것은 아시아 사람들에게만 보편적이고 익숙했을 시각적 코드였다. 그때도 엄마가 했던 작업은 언어에 맞닿아 있었던 걸까, 경아는 생각했다. 그리고 홀로 던져진 상태에서 갑옷을 원했던 게 아닐까 하고도.


그러한 시선의 생각들은 각 장의 앞부분에 인용된 문장들 혹은 대담내용을 통해 알 수 있다. 시선의 과거에 대해서는 그러한 방식으로, 또는 그 후손들이 그에 대해서 회고하는 방식으로 재구성된다. 그러나 시선의 말과 행동은 다소 궤변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어머니로서, 아내로서는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그럼에도 설득력 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시선의 그러한 사고는 자신에게만 머물지 않고 딸들을 통해 이어진다. 특히 맏이인 명혜를 통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 작품에서는 여성들이 주도적인 모습을 보이며 남성들은 그에 대응하는 역할 혹은 주변인으로서 축소되어 있다. 심지어 심시선의 아들인 명준마저 유약한 모습을 보인다.


또한 시선과 전혀 혈연관계가 없는 경아의 경우에도 시선의 자녀들보다는 덜하긴 하지만 그래도 비슷한 정도의 주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두 번째 키워드 하와이. 왜 하필 하와이일까. 시선이 젊은 시절에 몇 년간 노동자로 일했던 곳이기에 하와이로 가기로 했지만 사실 저마다 하와이에서의 목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하와이에 대한 작가의 의도가 더 드러나는 듯하다. 


"아무것도 우리가 원한 것은 없었습니다. 우리의 정신과 문화가 희석되는 걸 막기 위해 자극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말이 살아나고 훌라가 살아났지만 갈길이 멀어요. 우리를 그저 관광상품으로 대상화하면 안 됩니다. 여기서 제대로 배우고 있는 분들은 물론 더 깊은 이해를 하려고 오신 거 알지만요."
명혜는 그 폐쇄적이지 않은 범위 설정이 마음에 들었다. 한국의 로컬도 그런 개념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공동체에 누가 속할 수 있을지 넓게 열어두고 끌어안을 필요가 분명 있었다. 한국사회도 이민자의 수가 계속 늘고 있고, 더 다양한 집단을 포용해야 할 때 로컬 개념에 괜찮은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현지인이라고 번역하면 되려나? 지금의 '한국인'은 확장형이 아닌 것만 같아서......... 아니면 말은 그대로 두고 인식만 확장될 수도 있으려나? 복잡해지니 머리가 아팠다. 쿠무훌라와 모친이 만날 수 있었다면 아마 흥미로운 대화를 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명혜는 시선의 길을 따라가지 않았다. 명혜에게 언어는, 아이디어는 철저하게 경제활동이었다. 시선에게도 어느 정도는 그랬지만 역시 달랐다.


하와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관광지이자 휴양지이다. 하지만 하와이의 역사나 실제의 모습을 그리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작품에서는 등장인물들, 특히 현지인들을 통해 하와이의 실제 모습을 언뜻 드러낸다. 우리가 낙원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천혜의 자연환경과 유산을 갖고 있는 하와이가 사실은 낙원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심시선이 노동자로 일하던 시기에는 더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과거에 대한 추적이기도 할 것이다.


세 번째 키워드 제사. 책의 시작은 시선이 제사를 거부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의 뜻에 따라 가족들도 시선의 제사를 지내지 않았지만 명혜의 제안으로 하와이에 가서 제사를 지내기로 한다. 그러나 제사상에 올리는 것은 각자 하와이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의 물건이나 경험을 수집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각 개인은 자신의 목적에 따라 (혹은 딱히 그런 것이 없이) 하와이에서의 휴가 겸 미션수행을 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각 개인의 성향이 보이며 저마다 갖고 있는 문제들이 부각된다. 이 작품에서는 각 개인의 변화되는 모습을 추적해 가는 형식을 따른다. 개인별로 명확히 구분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별 흐름을 따라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러한 형식이 문학작품에서도 종종 쓰이기는 하지만 자칫하면 상투적이거나 고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영리하게도 그러한 상투성의 임계로 가기 전에 잘 끊었고, 적절히 분산했다.


또한 개인별로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단지 며칠의 여행으로 그렇게 바뀔 수 없다는 것을 작가도 알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뭔가 변화의 여지가 있음을 암시하는 정도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독자는 각 인물들이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것임을 짐작하게 될 것이다.


언제까지고 딸, 손녀, 보호의 대상일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하면 어른으로 살 수 있지? 이미 어른이지만 제대로 된 어른으로? 하루종일 잠으로 시간을 보내서는 어려울 것이다. 퇴행의 증상이었다. 몸이 마음을 지키려고 그런 식으로 작동하는 것이겠지만 깨고 나가야 한다. 이해할만한 상황이라고들 말하는데, 화수는 이해받는 것에도 질려 있었다.
좆같은 일이 화수에게 일어났다. 좆같다는 말을 쓰는 사람이 될 줄 몰랐지만 유해한 남성성을 그보다 잘 표현하는 말도 없을 것 같았다. 할머니는 욕도 표현의 일종이라고, 다만 정확하고 폭발력 있게 욕을 써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 인물들 중에서도 특히 화수의 경우에는 테러사건으로 인한 PTSD가 있고, 우윤의 경우에는 어린 시절 병으로 인해 힘들었던 기억이 있기에 두 사람의 이야기가 좀 더 부각된다. 그 외에의 인물들도 과거와 현재에 대해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그것을 극복해 내는 것도 각자의 몫이다. 또한 사회적인 문제들까지 다루려는 작가의 과욕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할머니 덕에 중산층이 몰락하는 시대에 몰락하지 않을 수 있었죠. 행운이란 걸 알아요. 그래도 요즘 여자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걸 모조리 경제적인 이유로 설명할 수는 없어요. 공기가 따가워서 낳지 못하는 거야. 자기가 당했던 일을 자기 자식이 당하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가 없어서 혼자서는 지켜줄 수없다는 걸 아니까. 한국은 공기가 따가워요"
"나보다 덜 다친 사람. 나보다 세상을 덜 괴로워하는 사람이 뉴스를 그냥 통과시킬 수 있는 쪽이."
거기까지 말하자 설득도 그쳤다. 뉴스는 화수에게 와 독하게 고이곤 했다. 일곱 살짜리가 공원화장실에서 강간당하고, 스물한 살짜리가 그저 이별을 원했단 이유로 목이 졸렸다. 앞으로도 통과시킬 수 없을 거란 걸 알았다. 명혜는 한숨을 쉬며 방안을 시선으로 훑었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기에 내용이 다소 산만해지고 흩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정세랑 작가의 필력이 그나마 흩어지는 얘기들을 모아놓고 있지만 한계점도 드러내는 듯하다. 게다가 시선의 이야기가 이 작품의 구심점이 되기는 하지만 그로 인해 이야기의 흐름이 끊어지는 문제도 있다. 복합적인 구성이지만 이에 대한 판단은 개인에 따라 다를 듯하다.


이 작품이 정세랑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이지만 그의 작품 중에서 하나만 꼽으라고 할 때 내세울 수 있는 작품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라면, 그의 작품들 중에서 이 작품을 추천할 것이다. 다른 작품들보다 조금은 무거울 수 있는 주제이지만 그것을 그의 스타일대로 잘 풀어냈고 독자에게 어떠한 생각을 강요하기보다는 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곳곳에 스며있는 작가 특유의 유머와 문체도 집중도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준다.


또한 여성중심의 이야기, 여성의 주체성을 보여주면서도 피해자로서의 모습을 같이 부각하는 것은 호불호가 생길 수 있으며 자칫 반감을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정세랑 작가는 그러한 것을 알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다. 그러니 편견을 갖기보다는 그냥 읽어보았으면 한다.


시선으로부터 뻗어 나온 가족들은, 오전부터 바삐 집을 나서거나 구석에서 마지막 마무리를 하며 도사렸다. 별것 아닌 일에 진심을 다해 도사리는 것이 이 집안사람들의 공통점이구나 서로 헛웃음을 웃으면서도 끝까지 그랬다.
곁에서는 난정이 비행시간이 다른 우윤을 안고 놓질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난정도 명혜의 말에 어느 정도 위안을 얻었다. 우윤이는 약해 보이지만 시선으로부터 뻗어 나왔지. 지지 않고 꺾이지 않을 거야. 그걸로 충분할 거야.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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