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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Dec 28. 2023

캐럴 계숙 윤 <Naming nature>

자연에 이름 붙이기


예전에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통해서 캐럴 계숙 윤의 <Naming nature>를 알게 되었다. 이 책에도 관심을 갖고 있었으나 아직 국내에 번역본이 나오지 않아서 언젠가는 나올 거라 생각하며 기다렸다. 2009년에 나온 책인데도 아직 국내에 소개가 안 된 것도 의아했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니 관련된 이 책도 금방 번역본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것도 의외였다.


거진 2년 가까이 기다려도 번역본 소식은 전혀 없기에 그냥 원서로 읽기로 하고 킨들용으로 구매했다. 하지만 원서를 구매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번역본이 나온다는 광고가 보였고, 이후에 번역본이 나왔다. 번역본의 제목은 원제 그대로 <자연에 이름 붙이기>다. 


번역본으로 읽을까 원서로 읽을까 고민하다가 이왕 원서로 샀으니 원서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의 번역본이 구독서비스에도 바로 올라와서 나중에 번역본으로도 다시 한번 더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작성한 글은 원서를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번역본과의 용어 차이가 있을 수도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이 책은 분류학 혹은 분기학, 분지학, 계통학, 명명학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각각이 조금씩 차이가 있는 분야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전공자가 아니라면 다 그게 그거 같지만 엄밀하게는 차이가 있다. 이 책에서는 분류학(Taxonomy)을 기본으로 하여 분기학(Cladistics), 계통학(Phylogenetics) 등과 어떻게 차이가 나며 어떤 과정으로 발전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복잡한 분류학의 세계를 소개하며 진화생물학까지 범위를 넓히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이해와 상충하는 면을 드러낸다. 저자 자신이 생물학자이자 컬럼니스트여서인지 이 분야에 대한 경험과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참고로 저자는 한국계 미국인이지만 한국어는 하지 못하는 걸로 생각된다. 영어는 평이했으며 이해가 쉬운 편이어서 원서로 읽기에도 부담은 없었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책이 뒤늦게 부각된 이유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여러 번 언급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Naming nature>에서는 초반에서부터 분류학 상에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룰루 밀러는 이 얘기를 보고 자신의 책을 쓸 생각을 했다.


그러나 룰루 밀러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한 것일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그는 이 책에서 협소한 부분만을 따다가 자신의 작품에 반영했기에 이 책에 대한 오해를 갖게 만들 수도 있다. 나 또한 이 책을 읽고 나니 이 책에 대한 예상, 그리고 룰루 밀러가 얘기하려고 하는 바가 모두 다 어긋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을 모두 밝히면 책을 읽는 재미가 반감될 수 있으니 직접 읽어보기를 권한다. 




저자는 처음에는 분류학을 살아있는 세계를 정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보았지만 전통적이고 비과학적인 분류에도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 세계 사람들은 과학적 지식에 관계없이 외모를 기반으로 기본적인 분류체계를 만들었던 것이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서로 독립적인 분류를 통해 일관성과 유사성이 밝혀짐으로써 인간은 기본적으로 그러한 분류에 대한 인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과학적 훈련과 무관하게 자연 세계에 대한 인간의 공유된 인식을 암시한다. 


그는 동물이 인지하는 세계를 나타내는 '움벨트(umwelt)'라는 개념을 강조한다. 이 개념을 통해 문화나 언어에 관계없이 전 세계 사람들이 왜 비슷한 방식으로 삶의 질서를 유지하는지 설명한다. 움벨트(umwelt)는 인간의 감각 경험을 기반으로 한 분류에 영향을 미치면서 분류학의 강점이자 약점이 되었다. 


현대의 분류학은 18세기 중후반에 칼 린네(Carl Linnaeus)에 의해 체계가 갖추어졌다. 그는 학명(속-종으로 이루어진 이항 명명법)을 사용하여 명명을 단순화하고 우리가 잘 아는 종, 속, 과, 목, 강, 문, 계로 분류학의 계층 구조를 확립했다. 


시간이 다소 흐른 후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 진화론을 제기함으로써 분류학을 극적으로 변화시켰다. 기존의 분류학이 정적인 범주에서 생명을 다루었다면 이제는 역동적이고 분기되는 진화의 나무로 이해하는 것으로 옮겨졌다. 이러한 진화 중심적 견해는 전통적인 분류학과 진화적 분류 사이의 갈등을 야기했다.


또한 종 개념은 분류학에서 중심이 되었지만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었다. 생식적 분리에 기초한 에른스트 마이어(Ernst Mayr)의 생물학적 종 개념은 특히 유성 생식이 아닌 유기체의 종을 정의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으며, 멸종했거나 화석으로만 발견되는, 현존하지 않는 생물들의 분류에 대해서도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종의 개념 역시 진화생물학과 유전자를 기반으로 한 정의로 바뀌게 되었다. 종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바뀌는 것이다.


특히 분류에서 공통 조상을 강조하는 방법인 분기학(또는 분지학)은 큰 격변을 일으켰다. 여기에 수학과 통계학을 도입함으로써 좀 더 객관화되면서도 복잡해졌고, 이후에 화학적인 방법, 특히 유전정보(DNA)에 근거한 분류법이 도입됨으로써 기존 체계가 뒤흔들리게 되었다. 예를 들어, 분기론자들은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여 전통적인 견해에 도전했다. 얼룩말, 나방 등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분류학 커뮤니티 내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런데 그렇게 과학적으로, 냉철하게 분류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우리가 '자연의 질서'라고 하는 것은 인위적인 것이 아닌가? 그러한 분류의 방법이 우리의 인식 체계와 충돌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가 그것이다. 그래서 부제가 '본능과 과학의 충돌'이다.


우리는 자연과 점점 더 단절되어 가고 있으며, 자연에 있는 동식물들의 이름조차 모르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분류학의 역할은 자연에 대해 구조화된 이해를 제공하는 것이지만, 전통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삶의 관점과의 연결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과학은 과학으로서 나아가야 할 길이 있으며, 우리의 일상은 또 그 나름대로 나아가는 방향이 있다는 것. 우리의 일상마저 그러한 과학의 토대에 맞출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거기에 움벨트(umwelt)가 있다. 그러나 서로가 개별적인 것은 아니며 과학적 분류와 인간 인식 및 자연 세계와의 연결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내용이 전반적으로 흥미로웠고 이해가 잘 되는 편이긴 했지만 결론부는 다소 당혹스럽기도 했다. 그런 결론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가 주장하는 대로라면 생물학적 분류가 어떻든 어류는 그대로 어류로 남겨둬야 한다는 것.


사실 어류 등의 분류에 대해서도 여전히 분류학자들 사이에 컨센서스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분류학 자체가 그런 면이 있는데 아무리 객관적인 방법을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주관성이 배제될 수는 없으며 결국엔 동의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대부분이니 과연 이것이 과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정해진 것도 나중에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또 금세 바뀌어버리는 것이.


그러나 이 분야에 대한 문외한들도 관심을 가지게 해 주고, 어떤 논란들이 있는지, 도전 과제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에는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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