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를 우리말로 번역한 책들을 볼 때 번역에 만족하는 경우에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사실 번역의 퀄리티라는 것이 주관적일 수도 있어서 그럴 텐데 나는 문장의 누락이라든가 심각한 오역이 아니라면 그다지 신경은 안 쓰는 편이긴 하다. 원문과 대조해보지 않는 이상 잘못된 부분을 알기도 어렵고.
문학작품, 특히 고전의 경우엔 여러 출판사에서 여러 번역가들이 번역을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교가 된다. 그래서 번역의 질을 더 예민하게 따지게 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그렇지 않은 일반적인 경우에는 한 번, 많아야 두세 번 정도의 번역을 하게 되는데 그런 경우에는 그 자체에 대한 감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이것 역시 주관성이 강하게 개입되겠지만.
번역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을 듯하다. 한 가지는 번역된 문장이 어색하거나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 경우다. 원문의 뜻을 그대로 살리면서 우리말로 매끄럽게 번역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대로 직역해도 이상하거나 뜻이 안 통하는 경우가 있고, 의역하면서 원래의 뜻이 소실되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 묘를 잘 살리는 것이 번역가의 일이긴 하지만 같은 번역가의 작품에서도 차이가 느껴지기도 한다. 번역가들 간의 차이야 뭐 말할 것도 없고.
다른 한 가지는 용어에 대한 것이다. 이건 특히 인문, 과학, 의학 분야에서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데 사실 이공계나 의학분야의 전공자들은 배울 때도 그랬지만 업무에서 대부분 영어를 그대로 쓴다. 그래서 번역된 단어를 보면 오히려 더 이해가 안 되고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영어를 그대로 우리말로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해도 (외래어 표기법이 있지만) 마찬가지다.
게다가 1990년대 말부터는 과학계나 의학계에서도 순우리말로 된 용어로 재정립하는 시도가 이어졌다. 과학계에서는 주로 서울대를 중심으로 그런 시도가 있었던 걸로 아는데 이를 바탕으로 여러 학회들에서 우리말로 된 용어집을 발간하기도 했었다. 물론 지금도 나오고 있다.
의학계의 경우에도 의학용어집 4판에서부터 그런 시도를 했었고, 5판에서는 본격적으로 우리말로 된 용어가 주가 되었다. 2020년에 나온 6판에서도 그런 시도가 더 확장되었다.
문제는 그러한 과학계와 의학계의 새로운 용어들이 전공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너무 낯설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의료계에서는 환자의 눈높이에 맞춘다고 하지만 오히려 더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의대에 들어가면 의학용어를 기본적으로 배우게 되는데 이때 같은 부위에 대해서 네 가지를 배운다. 먼저 그리스/라틴 어원의 단어들 (주로 접두어/접미어), 영어, 한자, 순우리말 이렇게 배우는데, 예를 들어 pulmo-, lung, 폐, 허파 그런 식이다. 이 중에서 일반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단어는 뭘까?
그나마 많이 사용되는 용어들은 괜찮은데 해부학에서도 책에서나 보는 단어들은 거의 총체적 난국이다. 일반인들은 살면서 거의 접하지도 않는 단어들까지도 다 우리말로 바꾸고 있다 보니 영어로 보기 전에는 그게 뭔지도 알 수 없다. 물론 이런 것들은 한자로 된 것도 뭔지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번역가들은 그러한 용어집을 참고한다. 이공계 쪽 번역가들은 해당 학회 혹은 좀 더 범용적으로 나온 용어들을 참고하거나 혹은 전문가들의 조언/감수를 받고, 의학 쪽도 의학용어집을 참고하거나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용어의 번역을 권고하는 가이드라인은 있지만 그 가이드라인은 일반인들을 위한 것인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너무 낯설게 느껴진다.
물론 우리말로 가야 하는 것도 맞고, 주로 일본식 단어인 용어들을 순화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번역해 놓으면 또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용어의 번역은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그래서 다들 아예 그냥 영어 표기나 통칭되는 용어로 얘기하는 것 같다.
쉽지 않은 문제 이긴 한데 지금도 과도기라는 생각이 든다. 순우리말 용어로 대체하자고 한 게 벌써 거진 30년이 되어가는데도 정착이 안 되고 있으니까. 원래대로 돌아가거나 혹은 괴리감만 커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