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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Jan 29. 2024

조반니 베르가 <말라볼리아가의 사람들>


조반니 베르가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카타니아 출신의 근대 소설가이자 극작가, 정치가였다. 그는 <말라볼리아가의 사람들>을 필두로 다섯 편의 작품을 <패배자들> 시리즈로 집필할 계획을 세웠었지만 두 편의 작품만을 완성한 채 미완의 작업으로 마치게 되었다.


<패배자들>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자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말라볼리아가의 사람들>의 집필 의도는 앞부분의 작가의 말에서 잘 나타나 있다. 


이 소설은 가장 비천한 상태에서 행복을 위한 최초의 불안정이 어떻게 발생하고 전개되는지, 그리고 현재는 행복하지 않지만 앞으로 보다 잘 살 수 있으리라고 믿는 막연한 갈망이, 그때까지만 해도 비교적 행복하게 살아온 가정에 어떤 혼란을 일으키는지에 대한 냉철하고 진지한 연구다.

이 책에서는 진보의 물살을 일으키는 인간 활동의 동인動因을 그 근원에서, 보다 소박하고 물질적인 수준에서 다룰 것이다. 그런 낮은 영역에서 진보의 물살에 열정들이 작용하는 원리가 더 단순하고, 그렇기 때문에 더 정확하게 관찰할 수 있다. 그림의 순수하고 평온한 색조와 단순한 구도를 그림에다 그대로 놔두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을 괴롭히는, 더 나은 것에 대한 추구는 점차 커지고 확장된다. 또한 위로 올라가려는 경향이 있어서 사회계층에 따라 상승하는 움직임을 따르게 된다.

...

인간 행위의 영역이 확장됨에 따라 열정들의 장치는 더욱 복잡해진다. 인물 유형들은 분명히 덜 독창적이지만 더욱 흥미로워진다. 교육이 인물에게 미치는 섬세한 영향과, 문명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인위적인 것들 때문이다. 생각과 감정의 획일성을 감추기 위해 유행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 좋은 취향의 기준으로 강요되는 시대에는 심지어 언어도 개인화하고, 막연한 감정들의 막연한 색조들, 관념을 부각하기 위해 쓰이는 낱말의 모든 인위적 요소들로 풍부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런 구도들을 예술적으로 정확히 재현하기 위해서는 분석의 규범들을 엄격하게 따를 필요가 있고,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진지할 필요가 있다. 형식이 주제에 매우 적합하기 때문에, 주제 자체의 모든 부분은 전체적인 논의를 설명하는 데 필수적이다.

진보를 이루기 위해 인류가 따르는 노정은 숙명적이고 끝이 없으며 때로는 힘겹고 부산스럽지만 결과적으로, 멀리서 전체를 바라보면 장엄하기까지 하다. 그 노정을 비추는 영광의 빛 속에서는 불안감, 탐욕, 이기주의, 모든 열정이 사라져 버리고, 모든 악덕이 미덕으로 바뀌고, 모든 약점이 엄청난 과업을 도와주고, 모든 충돌하는 모순에서 진실의 빛이 드러난다.

...

『말라볼리아가의 사람들』 『마스트로 돈 제수알도』 『레이라 공작부인』 『쉬피오니 의원』 『호사스러운 사람』은 모두 파도에 휩쓸려 물에 빠져 죽은 뒤 물가에 떠밀려온 패배자들로, 이들에게는 모두 미덕이 되었어야 할 죄의 낙인이 찍혀 있다

...

이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사람에게는 상황을 판단할 권리가 없다. 잠시 싸움의 현장에서 벗어나 그 싸움을 냉철하게 연구하고, 실제로 그랬던 것처럼 혹은 당연히 그랬어야 하는 것처럼 현실을 재현하도록, 적합한 색깔들로 그 장면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데 성공하기만 해도 충분하다.


그의 말처럼 그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어느 한 마을, 한 가족의 모습을 그려내고, 그들이 몰락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실주의 혹은 진실주의라고 알려진 이러한 방법은 그 객관성 때문에 비극을 더 돋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는 듯하다.




이 작품도 사실 모르는 작가의 모르는 작품이었지만, 우연힌 계기로 읽게 되었다. 처음엔 등장인물이 너무 많고 산만하게 느껴져서 읽기가 어려웠지만, 읽다 보니 중심적인 인물들이 좀 정리가 되고, 말라볼리아가 가족이 누구인지 알게 되면서 좀 나아졌다. 세계문학, 특히 고전을 읽을 때는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관계를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려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19세기 중반, 통일 이탈리아 왕국이 세워진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정국이 혼란스러웠고, 중앙집권체제가 구축되기 전이라 지방은 아직 자치적인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공간적 배경은 시칠리아의 작은 어촌마을인 트레차다. 작가의 고향 인근이라 익숙한 곳이었겠지만, 특히나 이런 시골마을은 그냥 마을 사람들이 서로 텃세 부리고 사는 그런 곳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시대적인 관습으로 여자들은 결혼을 위해 지참금을 가져와야 했었고, 이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도 작품 내에서 비중 있게 나온다. 하지만 여자가 지참금으로 가져온 재산은 저당권(?)이 있어서 남편이나 시댁에서 임의로 처분할 수 없다는 법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한 시간적, 공간적 배경으로 인해 그 마을은 근대화의 물결 및 통일 이탈리아와는 거리가 먼 듯했고, 근대에 유럽의 정세가 급격하게 변하는 것도 따라가지 못하고, 오히려 신문물등을 거부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들은 그들의 방식을 고수하며 살아갔다. 그러한 가운데 이 작품의 스토리가 전개된다.


초반부터 말라볼리아가 사람들에게 안 좋은 일들이 연달아 닥치게 되고, 발버둥 치지만 몰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한 가운데 자포자기하는 듯한 느토니의 모습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의 심경을 이해할 수는 있을 듯한데 그렇더라도 나중에 막 나가는 건 그냥 본인 성격이 그런 것 같다. 그렇다고 뭔가 포부가 있는 것도 아니라 더 답답했고. 독자들은 차라리 느토니 대신 동생이 살아 돌아왔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할 것 같다. 죽은 가족들은 저마다 안쓰러웠고, 파드론 느토니는 죽음보다 더 비참한 날들을 보낸다. 그들의 모습은 현실감 있게 그려지지만 내면의 모습까지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더 피상적으로 느껴지는 듯하다.


여기에 속담이나 경구가 많이 나오다 보니 (사실 남발 수준인 것 같다) 언뜻 천명관의 <고래>에서 '~의 법칙이었다'를 계속 얘기하던 생각도 났다. 그러고 보니 그 작품도 어촌을 배경으로 한 얘기들이 나오긴 했었지. 아무튼 그런 경구 타령이나 하는 파드론 느토니를 보니 차라리 느토니가 더 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게다가 끝까지 그렇게 집을 다시 되찾는 것을 고수하며 가족들을 더 불행하게 만들었어야 했을까.


같은 가족 안에서도 현실을 대하는 각 구성원의 태도와 자세가 많이 다르다. 그게 당연하겠지. 가족 내에서의 위치에 따라 입장이 다를 테니까. 그러한 것이 모여서 하나의 가족 이야기를 구성하게 되는 것이고.


그러나 마냥 우울하지만은 않다. 절대적인 악인이 있는 것은 아니고, 저마다 자신의 입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간에 갈등이 있을 따름이다. 그것은 어디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더구나 이렇게 한정적인 공간, 재화나 교류가 제한적인 경우에는 그러한 갈등이 더 크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희망만을 보여준 채로 끝난다. 더 이상의 몰락이 있을지, 아니면 반전을 이뤄낼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다지 희망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나저나 화폐 단위가 전혀 감이 없어서 검색해 봤는데도 자세히 나온 것을 찾지 못했다. 그게 집을 잃을 만큼의 가치인지, 사람들은 그렇게 일을 하고 얼마씩을 버는 것인지 감이 없어서 안 와닿은 면도 있는 듯하다.


트레차라는 마을의 모습은 소설 속에서도 자세히 묘사되어 있긴 하지만, 나도 바닷가 출신이라 그런지 자연스레 고향의 모습을 떠올리며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애니메이션도 생각하면서 읽었다. 그러다 보니 장면의 연상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풍경이나 장면,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사실적으로 느껴지고, 번역된 문체도 무난했다. 사람들 때문에 다소 답답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읽기 어려운 작품은 아니었다. 현실을 그대로 그려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특히 잘 몰랐던 근대 이탈리아의 지역 상황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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