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유럽은 어떻게 전쟁에 이르게 되었는가"
1914년 7월 28일부터 1918년 11월 11일까지 유럽을 중심으로 한 국가들이 벌인 전쟁을 훗날 '제1차 세계대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세계사에서도 중요하게 평가하는 전쟁이며, 연이어 제2차 세계대전을 낳게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세계사 시간에서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 원인에 대해서는 간략하게만 배운다. 당시 열강들은 식민지 경쟁으로 서로 긴장상태에 있었으며, 민족주의가 강해지고 있었고, 결국 사라예보에서 발생한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 사건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보다 좀 더 자세하게 배울 수도 있고,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다룬 연구결과나 책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관심이 있다면 더 자세히 알 수도 있다. 하지만 간접적인 이유는 많지만 (심지어 촉발제가 된 사라예보 사건조차도) 직접적인 이유는 명확하지가 않다.
말이 되나?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전쟁 중의 하나가 그렇게 모호하게 발생했다고? 이해가 안 되지만 실제로 그랬다. 그래서 정규 교육과정이나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간략하고 피상적으로 알려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크리스토퍼 클라크의 저서 <몽유병자들>은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긴박한 상황을 총망라하며 이 전쟁이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우발적이고 우매한 상황 때문에 벌어졌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즉, 여기 나오는 국가들의 정치가, 책임자들도 자신들의 결정이 그런 엄청난 결과를 불러일으킬 줄은 미처 몰랐고, 그저 이전에 빈발하던 국지전 혹은 몇 국가 간의 단기전으로 끝날 것으로 예상했던 것이다.
<몽유병자들>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구성과 목적, 관점에 대해서는 저자가 서론에서 명확하게 밝힌 바 있다. 책의 내용이 너무 방대해서 요약하기는 어렵고, 요약하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 그저 그 이야기를 따라가 보는 것이 최선이다.
이 책은 3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반목하다가 전쟁에 불을 붙인 세르비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초점을 맞추어 사라예보 암살사건 전야까지 두 나라의 상호작용을 따라간다. 2부에서는 서사를 중단하고 4개 장에서 다음 네 가지 질문을 한다. 유럽은 어떻게 적대하는 두 진영으로 양극화되었는가? 유럽 국가들은 외교정책을 어떻게 수립했는가? 발칸반도(유럽에서 권력과 부의 중심지들과는 거리가 먼 주변부 지역)는 어떻게 그토록 엄청난 위기의 무대가 되었는가? 데탕트 시대로 들어서는 듯했던 국제 체제는 어떻게 전면전으로 치달았는가? 3부에서는 사라예보 암살로 시작해 핵심적 결정 중심지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검토하고, 위기 고조를 위한 계산과 오해, 결정을 조명하는 등 7월 위기 자체에 관한 서사를 제공한다.
이 책의 중심 주장은 핵심 의사결정자들이 걸어간 길들을 밝혀야만 1914년 7월의 사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쟁에 앞서 연달아 일어난 국제 ‘위기들’을 단순히 재론하는 수준을 넘어 그 사건들이 어떻게 경험되었는지, 인식을 구조화하는 서사에 어떻게 엮여 들어갔는지, 어떻게 행위를 추동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유럽을 전쟁으로 이끄는 결정을 내린 사람들은 어째서 그렇게 행동하고, 상황을 그렇게 바라보았을까? 수많은 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개인들의 두려움과 불길한 예감은 흔히 바로 그 개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오만하고 허풍 떠는 태도와 어떻게 연결되었을까? 알바니아 문제와 ‘불가리아 차관’ 같은 전쟁 이전의 이국적 특징들이 어째서 그토록 중요했고, 또 정치권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어떻게 파악되었을까? 의사결정자들은 국제 정세나 외부 위협을 논할 때 실질적인 무언가를 보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들 자신의 두려움과 욕구를 적에게 투영하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둘 다였을까? 나의 목표는 1914년 여름 이전과 여름 동안 핵심 행위자들이 차지하고 있던 매우 역동적인 ‘결정하는 위치들’을 최대한 생생하게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 책은 1903년에 세르비아 왕국의 제2대 왕인 알렉산다르 오브레노비치가 비밀결사인 '검은손'에 의해 암살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불과 하루 전의 상황에서 끝이 난다.
이 책의 1부는 세르비아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이 부분까지는 세르비아의 책임론이 좀 더 강조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던 통념을 뒤집기 위한 저자의 전략으로 보인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 유럽의 상황은 2부에 명시된 두 장의 지도의 비교로 파악할 수 있다. 사실 이 지도가 핵심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독일제국, 이탈리아의 3국 동맹과 프랑스, 러시아, 영국의 3국 협상 간의 대립이 있었고, 그러한 역학 관계가 전쟁의 규모를 더 키우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동맹과 연합도 필연적인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프랑스와 러시아가 협상을 할 이유가 없었고, 영국은 중립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역시 동맹에 가담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상황이 진행되고, 작은 사건들이 맞물리면서 낮은 가능성은 점차 필연적이 되어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국으로 치닫지 않고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는 많았는데, 그것마저도 마치 '스위스 치즈의 법칙'처럼 모든 기회를 다 빠져나가버렸다.
이는 마치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다는 것이 가속 페달을 밟은 것과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만약 러시아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독일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세르비아의 전쟁으로 끝날 수도 있었을까?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초기에는 개입하지 않더라도 전쟁이 진행되면서 언젠가는 그런 쪽으로 흘러가게 됐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뒤에 미국이 참전하게 될 줄은 몰랐던 것처럼.
국왕이나 황제는 서로 별개인 지휘계통들이 수렴하는 유일한 점이었다. 군주가 통합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면, 이를테면 헌법의 미비점을 보완하지 못하면, 체제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거나 일관성 없는 결정을 내릴 위험이 있었다. 그리고 대륙 군주들은 대개 이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애초부터 그런 역할 수행을 거부했다. 집행부의 핵심 관료들과 따로따로 거래하는 방법으로 체제 내에서 주도권과 우위를 지키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결국 정책수립 과정에 악영향을 끼쳤다. 담당 각료가 내린 결정이 동료나 경쟁자에 의해 번복되거나 훼손될 수 있는 환경에서 각료들은 대개 “자신의 활동을 더 큰 그림에 어떻게 맞출지” 판단하는 일을 어려워했다. 그에 따른 전반적인 혼란은 각료, 관료, 군 지휘관, 정책전문가로 하여금 각자 자기주장을 할 수는 있지만 정책의 결과를 책임질 의무는 없다고 생각하도록 부추겼다. 그와 동시에 군주의 환심을 사야 한다는 압박감은 경쟁하고 아첨하는 분위기를 조성했고, 한결 균형 잡힌 의사결정을 위한 부처 간 협의를 저해했다. 그 결과는 1914년 7월에 위험한 결실을 맺을 파벌주의와 과잉 수사(修辭)의 문화였다.
제3차 발칸전쟁이 제1차 세계대전으로 그대로 이어진 것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지만 역사학자에 따라서는 제1차 발칸전쟁을 제1차 세계대전의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여기에서는 그렇게까지 보고 있지는 않지만, 당시 복잡했던 발칸 반도의 상황,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내부 문제와 모순, 프랑스의 전략적 불안과 이로 인한 러시아와의 협상, 영국의 양면적인 외교 정책, 중립국인 벨기에의 입장에 이르기까지 국가적 야망과 집단적 안보 딜레마 사이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며 독자들에게 유럽을 분쟁으로 몰아간 요인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제공한다. 이는 서론에서 고찰하고자 했던 다음의 내용들을 포함한다.
유럽은 어떻게 적대하는 두 진영으로 양극화되었는가?
유럽 국가들은 외교정책을 어떻게 수립했는가?
발칸반도는 어떻게 그토록 엄청난 위기의 무대가 되었는가?
데탕트 시대로 들어서는 듯했던 국제 체제는 어떻게 전면전으로 치달았는가?
더군다나 그동안 개인적으로 의문이었던, '왜 오스만투르크는 동맹군에 가담했으며, 왜 일본은 연합국에 가담했을까?' 하는 점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각국의 상황을 대표적인 인물들을 중심으로 심층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저자는 전쟁의 원인을 분석하는 대신 수많은 자료를 근거로 해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여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판단은 독자에게 맡겨졌는데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여전히 모호하며 얼떨떨한 기분이지만 그럴 수밖에 없을 듯하다. 그것이 정상적인 반응이 아닐까?
제목의 <몽유병자들>은 영어로는 'The sleepwalkers'이며, 이는 본문의 맨 마지막 문장에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다.
1914년 주역들은 눈을 부릅뜨고도 보지 못하고 꿈에 사로잡힌 채 자신들이 곧 세상에 불러들일 공포의 실체를 깨닫지 못한 몽유병자들이었다.
이 책은 천 페이지 넘어가는 분량 때문에 부담감을 느낄 수 있고, 수많은 인물들의 말과 글 위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기로 마음먹은 독자라면 생각보다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저자인 크리스토퍼 클라크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역사학자이며, 독일, 영국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현재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 역사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래서인지 전작인 <강철왕국 프로이센>에서도 느꼈었지만, 이 책에서도 독일의 입장이 반영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은 대체로 독일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야기한 전범국가로 인식한다. 그러나 클라크는 그러한 관점 대신 독일 역시 당시(1910년대 초반)의 상황과 딜레마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독일에 대해 우호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상황 속에서 고찰된 것이다. 사실상 당시에는 어느 국가도 그러한 딜레마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동책임론' 하에서 각 국가에 대한 기존의 상식과 선입견을 버리면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당시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이 책만으로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전쟁의 원인을 분석한 다른 명저들도 많고, 다양한 시각도 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제1차 세계대전이 어떻게' 발발하게 되었는가에 관심을 갖는다면 우선적으로 추천할만한 책이다.
또한 당시의 상황을 현재에 대입하여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현재도 많은 국지전들이 벌어지고 있기에) 현재는 그보다는 좀 더 단순하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즉,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빈발했던 국지전의 양상으로 말이다. 하지만, 긴장과 갈등의 해결에 관한 측면에서는 이 책의 내용이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p.s. 2017년 12월, 북한을 방문한 제프리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이 리용호 북한 외무상에게 이 책의 영문판을 건넸다는 사실을 주요 홍보내용으로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마이너스 요소가 될 것 같다. 이 책은 책 자체로 평가받아야 할 것 같은데 그러한 인식이 책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저해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