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김소월 시인에 대해 조사하면서 관련된 책들과 논문들을 읽고 있다. 그렇다고 논문을 쓸 건 아니고, 그의 삶과 작품 세계에 관심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정규 교육을 받은 우리나라 국민들 중에 김소월 시인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의 대표작 중 몇 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학교에서나 학계에서는 대체로 그를 '민요시인' 혹은 '한국적 전통의 시인'으로 정형화하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김소월 시인에 대해서 알게 될수록 그가 지향했던 것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목표에 도달하기 전에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도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자살설이 가장 유력하지만, 그러기에는 의문점들도 있다) 그가 생전에, 죽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고뇌가 있었는지 잘 알 것 같다.
그에 대한 책 몇 권을 인터넷 서점사를 통해 주문했다. 그런데 그중 한 권은 배송이 좀 늦어질 거라고 해서 일단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예정된 배송일이 지나도 책은 배송이 안 됐고, 결국 다른 책들이 먼저 발송되었다. 그리고 한 권은 주문한 지 일주일이 돼서야 배송되었다. 바로 이 책이다.
한국문화사에서 나온 <김소월론>이다. '해외우리어문학연구총서 76'이라고 되어 있는 걸 보니 시리즈로 나오는 것인가 보다.
그런데 책을 보는 순간 당혹스러웠다. 설마 했는데...
이렇게 오른쪽으로 넘기도록 되어 있었다. 게다가 출판사가 '조선 작가 동맹 출판사', 출판연도가 1958년이다. 이게 뭐지 싶었다.
그래서 내가 구매한 서점사의 도서 정보를 다시 확인해 보았다. 여기에는 1996년으로 되어 있고, 다음과 같은 정보만 있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이 정보만 보고 주문했었는데 점점 이 책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책을 넘기자 김소월 시인에 대한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은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우리가 잘 아는 김소월 시인의 모습은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대체로 이 모습 또는 약간 변형한 이미지로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김소월 시인의 오산학교 시절 모습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이 사진은 그의 아들이 보관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의 모습에 대하여 생경함을 느끼며 페이지를 넘겨보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래처럼 세로 쓰기로 되어 있다. 1950년대 서적이 맞나 보다.
게다가 저자는 북한 사람이고, 출판도 북한에서 했다. 즉, 이 책은 1958년에 북한에서 출판된 <김소월론>의 영인본이었던 것이다.
최종적인 출판 정보는 이렇게 1996년에 한국문화사로 되어 있다. 그런데 어떻게 북한 도서가 국내로 들어와 이렇게 영인본까지 낼 수 있었을까? 왜 다시 편집해서 새로 책을 만들지 않고 굳이 영인본으로 냈을까? 원본은 아마 판형이 조금 더 작았던 것 같은데, 판을 키워서 낼 거였으면 왜 굳이 1:1 배율로 했을까? 글씨가 좀 작은데 좀 더 키울 수 있지 않았을까?
게다가 이 책이 나온 지 거진 30년 가까이 되어 가는데 아직도 재고를 갖고 있고 판매 중이라는 것도 놀라웠다. 이 출판사는 지금도 어문학, 실용서, 인문학 관련 책들을 만들고 있는데, 예전에 만든 이 책도 그냥 재고로만 갖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책을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 귀찮음을 무릅쓰고 책을 찾아서 보내준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할까?
문득 '해외우리어문학연구총서'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찾아보았는데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리즈가 원래부터 한국문화사에서 만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서점사를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확인한 바로는 이 시리즈는 초기에, 그러니까 1990년 경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기획해서 출간하던 것이었는데 어느 시점부터인가 한국문화사로 (대략 1996년 경으로 추정된다) 이전되었다. 그래서 이 출판사에서는 1999년 경까지 이 시리즈를 거진 150 권 가까이 출간한 것이다. 그중에서 60여 권이 아직도 판매되고 있었다.
그러한 것을 보니 북한 도서가 어떻게 국내에 들어왔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아마 북한에서 연변 길림성으로 책이 전해졌고, 그것을 연변인민출판사와 국내 한국문화사가 같이 협력해서 국내에서 발행한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세로로 된 책을, 그것도 북한식 표기로 된 책을 읽으려니 너무 어색하다. '굳이 읽어야 할까?'라는 생각도 든다. 김소월 시인 관련하여 이미 구입하거나 대여해 놓은 책들도 여럿 있기에, 아마 나중에나 읽지 않을까 싶다.
이 책 말고도 찾는 책이 더 있는데 그 책들은 국립중앙도서관의 디지털자료실에만 있어서 나중에 시간 내서 가봐야겠다. 한동안은 아마도 김소월 시인과 같이 살게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