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8일부터 5월 5일까지, 7박 9일간 호주 시드니에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개인적으로는 시드니에 두 번째 가는 것이지만 가족 여행으로는 처음이고, 아내나 딸아이 역시 시드니는 처음이었다.
원래는 시드니에 가려던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에 가려 했으나 여러 사정으로 취소하고 하와이로 바꾸었다가 다시 시드니로 최종 결정하게 된 사연이 있다.
4월 말, 5월 초의 시드니는 이제 가을로 접어드는 계절이라 현재 우리나라와 비슷한 정도의 기온이었지만 예상 못한 변수가 있었으니 바로 날씨였다. 우리가 있었던 8일 정도 기간 중에 6일 정도 비가 왔고, 그나마 이틀 정도의 날씨가 괜찮은 편이었다.
그래도 하루 종일 비가 온 날은 많지 않았고, 오전에 비가 계속 오거나 오후에 비가 계속 오거나 그런 정도. 그래도 우산 쓰고 잘 다닌 것 같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비 맞고 다닐 일은 별로 없지만.
일정 중에 서점과 도서관 방문을 계획하였다. 그런데 서점 중에는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른 곳도 있다. 서점의 분위기는 어느 나라를 가도 비슷한 것 같지만 시드니에서 만난 한 서점은 좀 더 특별한 느낌을 주었다.
우리가 가기로 한 곳은 Sappho Books, Cafe & Bar라는 곳이었는데, 한국인들에게도 꽤 알려진 곳이다. Sappho는 그리스의 여류 시인인 사포에서 따온 것 같다. 이름 그대로 서점과 카페, 바를 겸하고 있는 곳이며, 카페에서는 식사 및 커피/차 등을 즐길 수도 있다. 실제로 가보니 카페는 건물의 안쪽에 있어서 그렇게 쾌적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대신 서점은 이색적이라 좋았다. 이곳은 새 책 및 중고 책을 같이 판매하는 곳이었지만 중고 책이 더 많은 듯했다. 새 책은 주로 1층, 출입구 근처에 있었고, 중고 책들은 분야 별로 나눠서 몇 개의 방에 있었다.
아래 사진처럼 서점이라기보다는 마치 전시관과 같은 느낌. 물론 여기 있는 책들은 다 판매용이다. 창 밖으로 비가 내리고 있었고, 창문 아래쪽에는 양철 지붕이 있어서 그 소리가 듣기 좋았다. 그렇게 여유롭게 여러 방을 둘러보았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방은 악보를 모아 놓은 곳이었다. 이 또한 대부분 중고 악보이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보물을 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Sappho에 가다가 그 바로 옆에 있는 gleebooks라는 곳에도 들어가 보았다. 이곳은 동네서점이긴 하지만 규모가 꽤 큰 편이었다.
입구 쪽에는 추천작들이 전시된 매대가 있었는데, 한강 작가님의 <작별하지 않는다>의 영문 번역본인 <We Do Not Part>가 눈에 들어왔다. 올해 초에 번역된 것이라고 한다. 이국에서 한국 작가의 책을 만나니 반가우면서도 뿌듯했다. 이외에도 한국 관련 책들이 좀 있었다.
이 서점에서 눈에 띈 것은 책장에 손 글씨로 책 추천 메모를 붙여 놓은 것이었다.
아마도 직원들이 직접 썼을 것 같고, 한 사람이 쓴 건 아닌 듯한데 이걸 보면 그 책에 대한 관심이 좀 더 생기지 않을까 싶다.
이 서점에서 딸아이도 여러 책을 둘러보았고, 나도 여기서 시간을 꽤 보낸 것 같다.
일자는 좀 다르기는 하지만 Dymocks 서점도 방문했다. 이곳은 1879년에 설립된 호주의 대형 서점 체인으로, 우리나라의 교보문고와 비슷하다. 콘셉트도 비슷한 것 같다.
우리는 시드니 중심부에 위치한 본점에 방문했었는데 책뿐만 아니라 문구류, 팬시 용품, 기념품 등도 판매하고 있어서 가볍게 쇼핑을 즐길 수도 있었다. 다만, 대형 서점이라 그런지 특색은 별로 없었다는 점.
NSW 주립도서관도 방문했는데, 이곳은 주립미술관과 연계해서 방문하면 좋을 듯하다. 다만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문 닫는 시각이 오후 6시여서 (시드니는 가을에 해가 일찍 지고, 일찍 문 닫는 곳이 많다) 오래 있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이곳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은 Shakespeare Reading Room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및 관련된 도서를 모아놓은 열람실인데 <As you like it> 초판본 진본도 전시되어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좋아한다면 방문 필수.
아래 사진은 메인 열람실인데 대부분 노트북이나 태블릿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기 진열된 책들은 대부분 일반 도서가 아니라 편람 또는 서지정보인 것 같고, 도서를 대여하려면 다른 곳에서 해야 하는 듯했다.
다들 열공하는 분위기라 잠시 앉아 그들의 일부가 되어 보았다.
이 밖에도 박물관과 비슷하게 전시된 것들도 있었고, 사진 전시회도 있었는데 시간 관계상 다 둘러보지 못한 것도 아쉽다.
이번 여행은 좀 여유롭게 다니고자 해서 서점에서도 시간을 꽤 보낼 수 있었다. 랜드마크만 보러 다니기보다는 이러한 소소한 일상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