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달, 고통과 다정이 함께한 시간
누구나 자기만의 파편을 지닌다. 나에게는, 내 몸과 곁이 함께 무너져가던 시간이 있었다.
그 무렵, 나는 과로와 불규칙한 밤들, 새 회사건물 속에 밴 화학 냄새에 예민했다. 면역은 닳아갔고, 몸 안의 열은 계속 갇힌 채 피부로 터져 나왔다. 스테로이드로 버티던 게 결국 자가 면역마저 무너뜨린 셈이었다.
약을 끊자, 혹독한 금단의 시간이 몰려왔다. 한여름의 끈적한 바람마저 살결을 칼로 베듯 시리게 할퀴었다. 진물로 짓이겨진 피부는 발끝까지 성한 데가 없었다.
피부는 매일 찢겨 나갔다.
찢어져 마르고 갈라진 붉은 틈마다 가려움이 솟구쳤다. 뭉개진 피부는 긁을 수도 없어, 뭉툭한 손톱으로 두들겨 대는 수밖에 없었다. 자다 몸을 움츠리는 틈으로도 갈기갈기 찢기고 벌어진 피부들의 통증에 정신이 달아났다. 잠시의 안정조차 내어주지 않는 따가움.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다 못해 급기야 터져버린 진물에 번들거렸고, 눈두덩은 퉁퉁 부어 감각을 잃은 듯했다. 진물이 굳은 살결은 조금만 움직여도 부서지듯 터졌다. 목 뒤와 무릎 뒤 주름마다 붉은 선이 쪼개지며 새 살을 찢어냈다.
거울 앞의 나는 이미 괴물 같았다. 쉰 우유 같은 비릿한 냄새가 얼굴에 달라붙었다. 일상을 잠식한 고통은 휴직밖에 답이 없었다. 외출은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진물이 가라앉자 이번에는 하얀 각질이 온몸을 덮었다. 움직일 때마다 잿가루처럼 흩날렸고, 옷깃이 스칠 때마다 뜯겨 나갔다. 겉피부는 마른 장작처럼 거칠고, 속은 화끈거리며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다 타지 못한 속의 열은 겉피부에서 잿빛으로 흩어졌다. 벗겨지고 쌓이는 껍질 속에서 또 다른 고통이 태어났다.
모든 감각을 떼어내고 싶었다. 내 몸은 날마다 나를 갉아먹었다. 차라리 얼음장 속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않기를 바랐다.
아빠의 고통은 짐작으로만 헤아릴 수 있었다.
항암의 부작용으로 온몸을 훼집은 붉은 발진들은 조금만 스쳐도 불에 덴 듯 아파 보였다. 손톱밑과 발톱밑은 까매진지 오래였다. 왼쪽 뒤통수 아래에 불룩 차오른 종양은 똑바로 눕는 일조차 허락하지 않아, 늘 비스듬히 몸을 틀어야 했다.
깊은 잠은 허락되지 않았다.
뼈 마디마다 잠식해 퍼져 가는 암세포는 식사와 수면, 일상의 호흡까지 빼앗아 갔다. 밤이면 뼈를 도려내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잠깐 눈을 붙이는 일조차 고통 속에서 흔들렸다. 틈만 나면 조여 오는 통증의 움찔거림에 아빠의 숨결은 날마다 더 버거워졌다. 가쁜 호흡 사이사이, 고통을 삼켜내려는 불편한 침묵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짐작뿐인 아빠의 고통은 끝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잔인한 몫이었다.
서로 같은 움직임이라면, 각자의 고통 속에 한껏 웅크린 소극적인 방어뿐이었다.
그럼에도 기척은 곁을 잇는 다리가 되었다. 서로 다른 방에서 새어 나오는 기침과 뒤척임으로 괜찮냐는 안부가 문을 열기도 전에 먼저 오갔다.
힘겹다 못해 서글퍼서 더 서러웠던 날들이 오히려 애틋한 시간으로 남았다. 당신의 고통이 구석구석 갉아먹히는 동안에도 딸의 고통을 더 가여이 여겼다. 내 괴로운 나날이 어서 잠잠히 깨끗이 나아 지나가기를 바라셨다.
성인이 되고서 아빠와 한집에서 지낸 지 3여 년도 채 되지 못하던 시간 중에서 유일하게 오롯이 함께 보낸 여섯 달이었다. 고통이 일상을 잠식하던 시간이었지만, 그 속에는 아련한 따뜻함이 깃들어 있었다.
나는 더디게 회복으로 향했지만, 아빠는 끝내 다른 길을 걸었다.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기에, 오래 마음이 무거웠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힘겨웠던 시절이 가장 가까웠던 시간으로 남았다. 그때의 눈빛과 말들이 아직도 내 안에서 울린다. 그 무게는 슬펐으나, 그 속의 다정은 끝내 잊히지 않았다.
슬픔 속에 깃든 그리운 다정만이, 곁보다 오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