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오후, 보고 싶다
타닥타닥 키보드 타자 소리, 딸깍이는 마우스 소리, 저마다 두께도 결도 크기도 다른 종이들을 바스락 넘기는 소리, 누군가의 고르지 못한 마른기침, 긴장을 담은 톤이 역력한 누군가의 통화 소리.
그해 막바지 겨울, 사무실의 공기는 건조한 바깥만큼이나 퍽 메말라 있었다.
내 자리에서 고개를 들면 보이는 창밖에는, 색 잃은 하늘과 뒤섞인 진눈깨비가 튀지도 못하고 흩날리고 있었다.
그 순간, 굵은 눈물이 교정지 귀퉁이를 적셨다. 작은 요새 같은 파티션에 가려져 있어 다행이었다. 내 눈물은 교정지 위에 남아 얼룩지고 있었다. 훌쩍임마저 소리로 번질까 싶어, 입술을 포개어 삼키듯 숨을 눌렀다.
일상은 다름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오후의 겨울공기는 내내 건조하고 팽팽했다. 모니터 속 원고를 붙잡으며 눈치를 감춰야 했고, 원고의 결을 맞추고 밑줄을 긋는다. 메일을 쓰고, 일상적인 안부로 시작되는 짧은 대화 틈에 일을 이어갔다. 회의실로 향하는 동료와 마주치는 눈인사에는 짧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점심시간에는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며 덤덤한 대화를 이어갔다. 공적인 시간의 일상은 태연을 요구했고, 나는 태연을 연기했다.
그러나 교정지 위에 남아 번진 글자는, 그 연기가 오래가지 못했음을 뜻했다. 말간 얼굴을 내세우던 나와, 눈물이 얼룩진 종이를 붙들고 있던 나는 겉과 속을 온전히 숨기지 못했다. "괜찮아요"라는 말 뒤에 숨긴 진짜 얼굴이, 진눈깨비처럼 불쑥 타고 내렸다. 태연을 가장한 얼굴과 번져버린 교정지 사이의 간극이, 내가 그때 얼마나 무너져 있었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창 밖의 흐릿한 눈발은 허공에서 흩어져 사라졌지만, 내 안에서 흩어진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젖어 벗겨진 글자들 사이로 하나둘 셀 수 없이 많은 생각이 뒤엉켜 올라왔다.
그 끝의 남은 건 단 하나의 마음뿐이었다.
보고 싶다.
그리움이 그 오후를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