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을 삼킨 상실이 남긴 한마디
"올해, 기쁜 일과 슬픈 일을 다 겪었지?"
연말 송년 자리의 소란 속, 그 한마디가 내게 박혔다. 뒤섞인 웃음과 잔들 맞닿는 경쾌한 소리가, 내 귀엔 둔탁하게만 울렸다. 순간 목구멍은 제크기만 한 돌멩이 박힌 듯 막혔고, 눈물은 금세 차올랐다.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다. 그 순간은 내 안의 무게를 다시 확인하는 자리였다.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봄의 기운이 느슨하게 일어나던 3월 초, 나는 결혼식을 올렸다. 몸의 붉은 얼룩들과 퍼석한 피부가 아직 남아 있었다. 스테로이드의 부작용 이후 금단의 흔적이었다. 밤마다 온몸이 갈라지고 따가워, 잠자리의 천에 기대는 것조차 괴로웠던 시간을 간신히 물러내고 있었다. 긴소매와 화장으로 그 흔적들을 겨우 감추며, 예식의 시간을 견뎠다. 대인 기피까지 더해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곁을 지키겠다는 남편의 마음이 나를 버티게 했다.
무엇보다 아빠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그날의 얼굴은 아직도 선명하다. 지팡이를 짚은 아빠의 팔은 떨렸지만, 내가 한쪽에서 붙들고, 남편이 다른 쪽에서 맞잡으며 함께 입장했다. 한 차례 척추에 전이된 종양 제거 수술로 걷기는 불편해지고 몸은 지쳐 있었지만, 아빠의 얼굴은 누구보다 환히 빛났다. 결혼식이 끝나고 집으로 모셔다 드리는 차 안에서도, 아빠는 내내 그날의 온기를 곱씹으셨다. 그 표정이 나를 오래 안도하게 했다. 게다가 그때까지 아빠의 기운은 흐리지 않았기에 온전한 기쁨이었다.
그해 8월의 끝자락. 내 생일이자 아빠의 음력 생신이 하루도 어긋남 없이 겹친 날이었다. 너무나 기막힌 우연인 해였던지라 지금도 또렷하다. 우리는 짧게나마 2박 3일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무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늦여름, 호텔 창문 너머로 푸릇한 산을 바라보며 오랜만에 웃음을 나눴다.
아빠는 몸을 깎아내는 고통 속에서도 끝내 우리를 배려하고 계셨다. 여행 마지막 날, 사진 속 아빠는 여전히 환한 미소를 짓고 계셨지만, 그 표정 뒤에 얼마나 깊은 고통을 눌러두고 있었는지 뒤늦게야 알았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빠는 응급실로 가셨고, 척추 종양 제거 수술을 다시 받아야 했다. 그 수술 이후 아빠는 다시는 두 발로 일어서지 못하셨다. 돌아오지 않은 다리 감각으로 병상에만 눕게 된 몸은, 전이된 다른 곳들까지 속도를 내며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11월, 이른 아침 쌀쌀한 추위로 더 시렸던 수능날. 아빠는 우리 곁을 떠나셨다. 아주, 영영히.
그러니 그 한마디의 안부는 내게 참 혹독한 것이었다. 결혼의 환희, 마지막 생일과 여행, 그리고 사별까지. 모든 계절이 기쁨과 상실을 번갈아 안겼다.
그해의 나는, 송두리째 무너지는 법을 배운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