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다정이 잇는 자리
그 시절, 절망으로 서글픈 시간이 잦았다.
내 몸도 무너져 있었고, 아빠의 몸도 항암치료로 지쳐 있었다. 같은 집에서 서로의 고통을 온종일 지켜보던 날들, 방문 너머로 겨우 안위를 살피던 밤들이었다. 나는 곁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를 배웠다.
아빠는 당신의 무너짐 속에서도 나를 더 가엾게 여겼다. 기침과 불편한 뒤척임 너머로 전해지던 안쓰러움 가득한 눈빛은, 무너져가던 서로의 몸을 잠시라도 버티게 하는 다정이었다.
그 무렵 지금의 남편, 그때의 그는 다른 방식으로 곁에 있었다. 퇴근 후 날마다 집 앞에 찾아와 내 하루를 살폈다. 옷을 갈아입는 일조차 고역이었다. 한여름의 텁텁한 공기도 칼바람처럼 스며들었다. 잠깐 스치는 바람에도 갈라진 살갗이 다시 베이는 듯했고, 무르고 갈라진 피부는 옷깃만 스쳐도 쓰라렸다. 모자와 마스크, 손수건과 긴소매로 꽁꽁 싸매 집 밖을 나가는 건 힘들고 창피했다. 그와 만난 지 반년 정도 되던 무렵이었다.
그때마다 그는 나를 불러내며 메마른 기력을 북돋워 주었다.
“더디어도 반드시 나을 거야. 지금은 회복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야. 그러니 부끄러워하지 마. 회복하는 걸 창피해하는 게 오히려 부끄러운 거야.”
그 말은 서툴렀고, 순간에는 더 무심하게 들리기도 했다. 능숙한 위로도 아니었고, 내 통증을 덜어주지도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말은 다른 울림으로 남았다. 완벽하지 않아도 곁을 지키려 했던 흔적, 그 서툼이 오히려 단단한 지킴이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내가 그에게 끌린 것도 그런 면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말보다 행동으로 덤덤히, 묵묵히 곁을 지켜주던 모습은 아빠와 닮아 있었다. 그는 첫 만남부터 당차고 솔직했다. 유려한 표현은 하지 못해도 문장 끝과, 행동 끝에는 항상 진심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빠가 "혹시라도 만나는 사람 있거든 집에 데려와 봐라"셨던 그 무렵, 나는 만난 지 넉 달도 되지 않은 그를 선뜻 데려갔다. 아빠의 암이 재발한 게 햇수로 2년, 내 몸이 고역을 치르기 두 달 전쯤이었다.
그날의 승낙은 어쩌면 아빠의 안도였을지도 모르겠다. 철없고 늘 짠한 첫째 딸 곁에, 이제 손을 넘겨줄 수 있는 이가 있다는 안도.
어떤 이야기에서 들은 비유가 오래 남았다.
"인사이드아웃의 기쁨이와 슬픔이처럼, 결국 함께 날 수밖에 없는 짝이다."
슬픔은 홀로 오지 않고, 기쁨과 얽혀 흐른다. 웃음이 번지는 자리에도 그림자는 따라왔고, 기쁨을 기억하는 방식조차 슬픔과 겹쳐 있었다.
지나고 보니 알겠다. 슬픔은 고통만 남기지 않는다는 것을. 고통 속에서도 배어 나온 온기가 있었고, 곁을 지켜주는 다정이 있었다. 병실의 침묵 속에서 나눴던 눈빛도, 말 대신 건네진 손길도 그랬다.
아빠의 다정과, 남편의 서툰 곁은 서로 다른 결이었지만, 내 안에서는 한 자리에 겹쳤다. 잃어버린 자리와 새로이 지켜준 옆이 교차하며, 나는 끝내 고통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곁은 지킴이 된다. 그 서툼이 곧 지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