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될 수 없는 무게
괜찮냐는 안부조차 괜히 심술을 돋우던 때가 있었다.
사실은 지독히도 괜찮지 않았지만, 그 심연에서조차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상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큰 섬 하나가 갑자기 꺼져 내려앉은 듯, 발 디딜 자리가 통째로 사라진 허무였다. 내 생의 한 장이 강제로 닫힌 뒤, 다시 펼쳐볼 수 없는 장면만 남았다. 나는 그 거대한 빈자리를 붙들고 매달려 있었다.
위로라는 이름으로 건네진 말들은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다. '누구나 겪는 과정'이라거나 '이젠 그만 슬퍼해야지', '어서 이겨 내야지', '힘내'라는 지극히 평이한 말들은 나를 더 깊은 곳으로 압박하듯 밀어 넣었다. 권고되는 기한이 있기라도 한 듯한 말들은 으름장처럼 여겨졌다. 상실의 가장자리에 매달린 사람은 언제나 나뿐이었다.
그 와중에, '충분히 슬퍼하시라'는 한마디는 온전히 내게 스며들었다. 그 말만은 이상하게도 나를 몰아붙이지 않았다.
때론 다른 슬픔과 비교되기도 했다. 사별에 우열이 있을 수 없는데, 나는 내 슬픔이 더 작다고 깎아내리거나, 반대로 더 크다고 우기기도 했다. 부모를 떠나보내도 되는 적당한 때란 게 있을까. 있다 한들, 나에게는 아직 이르다는 불평이 먼저 들었다.
돌고 도는 자기연민과 주저앉힌 감정의 끝에서야 비로소 알았다. 상실은 비교할 수 없는 것임을, 각자에게 남는 무게가 다를 뿐이었다.
그렇게 알아 갔다. 생이 꺾이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야 하는 이들, 보내는 이들, 남겨지는 이들이 각자 짊어진 무게를. 그 무게 위에 건네는 말 한마디가 왜 그리 조심스러워지는지도. 위로의 무게 또한 결코 가벼울 수 없다는 것도.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내가 살아오며 이렇게까지 아빠의 생을 더듬고, 그리움에 잠겨본 적이 있었던가. 부재는 오히려 생을 또렷이 비추었다. 함께 있을 때는 미처 잡지 못한 순간들이, 떠난 뒤에야 잔잔히 때론 휘몰아치듯 기억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시절, 하루는 끝나기도 전에 새벽이 먼저 덮쳐왔다. 숨은 쉬고 있었지만, 호흡은 늘 목구멍 어딘가에서 막혀 있었다. 내가 느끼는 허무의 크기를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생각에 더 깊이 갇혀 갔다. 견딜 수 없어 문을 두드린 자리에서 숫자로 매겨진 우울을 마주했다. 그 객관적인 수치 앞에서도, 내 감정은 여전히 충분히 표현되지 않은 듯했다.
그럼에도 내 안의 어떤 탄력은 끊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저 충분히, 오롯이, 아빠를 떠나보낸 뒤의 슬픔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 슬픔이 내 생이 아직 이어지고 있다는 가장 솔직한 증거였다. 그 증거를 붙들며 나는 조금씩 다시 살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