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묘비 앞에 멈춘 발걸음

멀리서 이어진 인사

by 슬로하라


이국의 삶에서 묘지의 문턱은 언제나 가까이 닿아 있다.
나는 가끔 묘지를 걷는다. 그리 무섭지가 않다.

아빠가 계신 현충원과도 닮아 있었다. 흐트러짐 없는 정돈된 길과 산책로가 열려 있어 이웃들의 발걸음이 스며드는 자리였다.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 누군가의 기억 속에 늘 들락이는 발자취가 있다는 사실이 외롭지 않게 했다.

특히 이곳은 묘비마다 대부분 생전의 얼굴 사진이 자리하고 있어, 낯선 이름 앞에서도 누군가의 방을 조심스레 드나드는 듯했다. 조심스러움은 있지만 낯섦은 덜했다.

아빠 묘비에도 작은 사진을 붙여 두었다. 찾아오는 이들이 그 얼굴을 마주하며, 생전의 안녕을 건네듯 잊지 말아주기를 바랐다. 사진은 방명록 대신 남아, 그 자리에 오는 이들에게 계속 인사를 건넸다.

그래서인지 이곳에 닿는 내 발걸음은 늘 일상과 애도의 긴장을 함께 안은 채였다. 멀리서 그리운 이를 대신 찾는, 나만의 소박한 인사였다.

햇빛에 바래는 그리움마저도 오래 버티는 눈빛처럼 내 앞에 머물렀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마저 낮게 깔려 있었고, 그 적막이 오히려 위안처럼 다가왔다.

새겨진 숫자를 따라가다 보면, 생의 시간이 겹치는 나이를 발견하기도 했다. 알지 못하는 이름 앞에서도 발길을 멈췄다. 그 앞에 서 있으면, 내게 익숙한 하나의 자리도 또렷이 겹쳐졌다. 그 이름을 대신 쓰다듬듯, 나는 이곳의 묘비 앞에서도 잠시 멈춰 섰다. 그럴 땐 애도의 인사와 함께, 설명할 수 없는 정겨움이 스쳐갔다.

돌아나오는 길, 나는 곧장 걸음을 떼지 못했다. 몇 번이고 다시 뒤를 돌아보거나, 잠시 더 머물렀다. 그날도 그렇게, 낯선 이름의 얼굴들을 참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이어지는 인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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