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무게, 다정의 호흡
철쭉, 엄마표 무나물, 단팥빵, 동지팥죽, 사과, 배, 조기, 갈치, 생선반찬, 보리굴비, 안성탕면, 김치볶음밥, 된장찌개, 상하목장 아이스크림, 캐러멜 마키아토, 감자탕, 블루라이트 요코하마.
스무 살이 넘어서야 알게 된 사실 하나. 아빠만의 명명법으로 불리던 '감자탕'이 사실은 감자조림이었다는 기억이다.
그건 아빠의 시그니처 요리였다. 큼지막하게 썬 감자와 오징어를 자작하게 조려낸 반찬. 간장만의 짠맛이 아니라, 구수하고 달콤하면서도 매콤한 맛이 어우러져 있었다. 아빤 그 요리를 늘 "감자탕"이라 불렀다.
나는 대학에 가서야 ‘진짜 감자탕’을 먹어 보았다. 전혀 다른 음식이었다. 아빤 정작 그 감자탕은 좋아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저 당신이 만든 "감자탕"만이 아빠에게는 유일한 감자탕이었다.
그 조리법은 엄마도 흉내 내지 못했다. 그래서 더 이상 아빠의 음식을 맛볼 수 없다는 사실이 유난히 슬프다. 감자를 떠올리면 아빠 생각이 한 스푼 따라붙고, 구수하고 달콤하며 매콤한 비슷한 맛이 혀끝에 스치면 그리움도 함께 배어 나온다.
어쩌다 주말 한데 모이면 아빤 때때로 '블루라이트 요코하마'를 틀어 두고 흥얼거리셨다. 어설픈 춤사위와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거실에 나오셨다. 그 순간은 작은 스탠딩코미디 같았다. 특별한 유머도 말솜씨도 화려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은 여전히 우리의 웃음을 끌어내던 풍경으로 남아 있다.
고깃집에서도 그랬다. 아빤 고기를 좋아하지 않으셨다. 그런데도 불판에 고기가 올라가면, 집게는 늘 내 쪽으로 먼저 향했다. 한 점, 또 한 점. 아빠는 굽기만 했다. 아빠의 접시는 언제나 비어 있었다. 한번은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이 말을 걸었다.
"아버지는 왜 안 드시고 따님만 챙기세요?"
"다정한 부녀네요."
그 말끝에서 아빠는 잠깐 웃었고, 그 미소가 오래 남았다.
어쩌다 치킨을 시키면 늘 나뉘었다. 엄마와 동생은 양념, 아빠와 나는 후라이드.
별것 아닌 취향이었는데, 그때는 그게 같은 편 같았다.
아빠 장례를 치르며 빈소의 꽃을 골라야 하던 순간, 문득 그 생각이 났다.
내가 있던 쪽이 하나 사라졌다는 느낌.
계절을 따라, 눈길 닿는 곳마다 아빠가 좋아했던 것들이 불쑥 나타난다. 속속들이 다 들여다보지 못해, 정말 좋아하셨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질려하지는 않으셨다. 그것을 마주하는 순간, 대상보다 그걸 즐기던 아빠의 모습이 먼저 겹쳐 살아난다. 흐릿한 미소를 머금은 표정, 소박한 기쁨. 그래서 일상의 풍경은 늘 지척에서 그리움을 건져 올린다.
어릴 적, 주말이면 바쁜 틈을 쪼개 우리를 차에 태워 드라이브를 시켜 주시던 기억도 떠오른다.
그때마다 나는 늘 뒷자리에 앉아 잠들기 일쑤였다. 아빤 "자지만 말고 제발 좀 저 하늘과 좋은 풍경을 보라"며 호통치셨다. 그때 나는 왜 그 말을 제대로 담지 못했을까.
이제 와서야 알겠다. 슬로베니아의 낮고 너른 산과 바다를 품은 하늘을 마주하며, 아빠가 왜 그토록 우리 눈에 풍경을 담아 주고 싶으셨는지를.
그리움은 그렇게 차곡차곡 포개진다.
사소한 장면 속에서 잊히지 않는 얼굴이 다시 불려 나오고, 사라졌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듯 내 일상과 나란히 걷는다.
그러나 그 사이로 조용한 서글픔이 스민다.
앞으로 살아갈 수많은 날들, 같은 것을 보고도 더는 당신의 생각을 물을 수 없다는 사실. 기쁨의 순간마다 함께할 수 없다는 부재는, 새로운 기쁨 앞에서 다시 한 겹씩 겹쳐진다.
일상은 그렇게 부재와 공존한다.
남겨진 흔적들은 사라지지 않고, 내 삶의 구석구석에 묶여 있다. 차곡차곡 포개지는 그리움 속에서, 나는 오늘도 그 흔적들 속에서 아빠와 함께 살아간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뒤늦게 깨달은 게 있다. 결혼 연차와 추모의 연차가 나란히 쌓여 어느덧 7년이 된 지금,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엄마의 한없는 슬픔이었다.
배우자를 잃은 자리는 자녀가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온전히 당신의 몫임을 엄마는 이미 알고 계셨다. 내가 남편과 시간을 쌓아가듯, 엄마는 한평생을 곁으로 쌓아온 이와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었다.
아빠의 첫 투병부터 재발까지, 그 곁을 끝내 지킨 사람은 엄마였다. 간병인도 두지 않고 오롯이 붙들었던 시간들.
엄마는 그랬다.
"너희들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내가 대신 우산이 될게."
그 말이 이제야 마음에 닿는다.
아빠를 돌보는 동안 엄마의 몸도 함께 무너지고 있었다.
스트레스와 기력이 바닥나 어금니가 다 빠질 정도였는데도, 나는 나만의 슬픔에 매몰되어, 엄마의 무게를 충분히 바라보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의 그리움은 아빠에게서만 끝나지 않는다. 엄마를 향한 연민과, 미처 몰랐던 미안함까지 함께 포개져 있다. 상실은 그렇게 한 사람의 부재로 끝나지 않고, 남겨진 삶마다 다른 얼굴로 남는다.
그리고 안다.
이 무게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이 무게와 함께 살아가는 일이, 남겨진 우리의 몫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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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로 <일기의 무게>는 끝냅니다. 그러나 각자의 자리에서 이어지는 무게는 계속될 겁니다. 끝나지 않을 상실과 다정의 무게를 함께 건너와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