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을 내려놓고 마주한 머무름의 온기
한국에서 커피는 들고 이동하는 음료였다. 종이컵이든, 투명한 플라스틱 컵이든, 그 속도는 바쁜 내 하루의 리듬과 닮아 있었다.
물론 잠시의 여유도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 혹은 애정하는 사람들과의 소소한 대화를 위해 커피는 머물렀다. 그러나 대부분은 일과의 틈, 혹은 이동의 한가운데에서 잠시 쉬는 척하며 다시 달려가기 위한 도구적인 음료였다.
나는 언제나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찾았다. 이곳에 와서도 작은 냉동고 탓에 제빙기까지 들여놓을 만큼, 아이스에 진심이었다. 찬 커피가 주는 깔끔함, 머리를 식히는 그 서늘한 감각은 나의 루틴이자, 익숙함으로부터 오는 위안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달랐다. 커피는 잠시 멈춰, 여유를 자처하는 일이었다.
이 나라엔 스타벅스도, 프랜차이즈 카페도 찾기 어렵다. 동네마다 Kavarna가 붙은 커피숍들이 대부분이다.
처음 아이스커피를 시켰을 때, 돌아온 건 아이스크림과 크림이 듬뿍 얹힌 커피였다. 특이한 건, 얼음은 없었다. 그 묵직하고 달달한 맛은 아쉽게도 내가 원한 것은 아니었다.
설탕과 우유 없이 블랙커피에 얼음을 달라고 하거나, 운좋게 아메리카노를 받기도 하지만, 원하는 만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여름이 아닌 계절에는 웨이터가 미안한 얼굴로 얼음이 없다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나는 결국, 이곳의 방식대로 마시기로 했다. '벨라 카바(Bela kava)'라 부르는, 이곳의 카페라테다.
자리에 앉아 주문을 건네면 곧 웨이터가 잔받침 위 작은 커피잔을 내려놓는다. 잔이 식어가는 동안에도 누구도 서두르지 않는다. 커피는 손에 쥐는 것이 아니라, 잠시 놓아두고 바라보는 것이다.
여느 곳에서 흔해진 카페 문화와는 사뭇 다른 정취가 있다. 야외 테이블에서는 담배를 입에 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저 멀리 시선을 두거나, 책을 읽으며 사색을 즐기는 듯하다. 맥주잔 혹은 식전주와 한데 어우러진 흥과 여유가 동반되기도 한다.
작은 손잡이만큼이나 커피의 양은 넉넉하지 않지만, 그 호젓함 속에는 오래 머무는 온기가 있다. 익숙함을 조금 내려놓자, 이 낯선 익숙함이 내 일상의 한 자리를 채워갔다.
빠르고 차가운 템포 대신, 한 템포 느린 하루의 잠시를 데우는 시간.
아날로그적인 커피숍의 공기 속에서, 머무름의 여유를 잠시 머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