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의 단어들

이름을 알아주는 일에서 시작된 배움

by 슬로하라


이곳에서 마트는 내 일상의 교실 같다.

손이 닿는 자리마다

이름을 새로 배우는 것들로 가득하다.


쌓아 두기보다,

3일 치 식사거리를 손수 골라 집에 들여오는 일이

이제는 익숙해졌다.


한국에 있었다면 전날 밤에라도 주문해

이른 새벽 문 앞에서 손쉽게 받았겠지만,

지금은 수고로움이 닿는 손끝의 감촉이 오래 남는다.


계란, 양배추, 오이, 애호박, 양파, 감자, 마늘,

돼지고기 목살, 다진 소고기, 치즈 그리고 우유.


자주 데려오며 이름을 익힌 것들이다.

익숙하게 내 손으로 고르고 식탁 위로 데려오는 일은,

그들의 이름을 알아주는 일부터 시작된다는 걸

조금씩 배워 가는 중이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땐,

자주 손에 집더라도 선뜻 눈에 익지 않는 이름들이 많았다.

이제는 진열대 사이를 지나며

익숙한 이름이 눈에 걸릴 때마다

작은 반가움이 찾아온다.


계란은 jajca(야이차), 양배추는 zelje(젤리예),

오이는 kumara(쿠마라), 애호박은 bučka(부츠카),

감자는 krompir(크롬피르), 마늘은 česen(체센),

치즈는 sir(시르), 우유는 mleko(믈레코).

돼지고기 목살은 svinsko meso(스빈스코 메소),

다진 소고기는 mleto goveje meso(믈레토 고베예 메소).


영어와 닮은 구석이 거의 없는 단어들이지만,

하나씩 익힌 이름들은

언젠가 내 부엌의 냄새와 함께 기억되기 시작했다.


'신선하다'는 sveže(스베제),

'맛있다'는 okusno(오쿠스노).


말로 익힌 단어들이

이제는 냄새와 온도를 가진 말로 변해 간다.


언어를 배운다는 건,

결국 삶을 새로 배우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걸

식탁 위에서도 알아간다.


손끝의 감각으로 익히고,

혀끝의 온도로 다시 되뇌는 단어들.

그렇게, 내 하루의 언어는

천천히 익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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