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거로움이 남긴 삶의 결
0층 프런트를 지나 유리문 너머 우편함에서 우편물을 꺼낼 때도, 현관 앞에서 열쇠를 돌려 문을 열 때도, 마트에서 쇼핑카트를 끌기 위해 동전 하나를 찾아 넣을 때도.
이런 아날로그적 생활 리듬의 사소한 수고들은 찰나의 행동을 다시 한번 의식하는 시간으로 만든다. 바쁜 일상 속에서 기꺼이 던져버렸던 수고로움들이 여기서는 다시 하나의 행위가 된다.
순간의 동작마다 작은 멈춤이 생기고, 그 사이에 잊고 지낸 나의 자잘한 조각들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낸다.
카트를 끌기 위해서는 50센트든, 1유로든 동전이 필요하다. 그만큼 내가 사야 할 것들의 양도 한번 더 가늠하게 된다.
현관문을 열기 위해서는 낯설어진 열쇠 꾸러미를 가방이나 주머니 어딘가에서 찰랑거리는 소리로 확인해야 한다.
조금은 번거로운 이 절차들이 기본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 세워 준다. 이유를 막론하고, 제 쓰임의 행태를 느리게 지켜 가는 일.
이 느림은 어쩌면 생활이라는 이름의 리듬을 무심히 흘려보내지 않는 법을 다시 가르쳐 주는 것 같다. 그리고 어느 때엔,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기만 하던 동작들이
나의 하루를 이루는 결정적인 장면이 된다.
어쩌면 편리함은 잊히고, 번거로움은 기억된다는 단순한 진실을 이곳에서야 비로소 깨닫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작고 느린 동작들이 나를 다시 나답게 빚어놓는 날이 있다. 그 소리 없는, 고집스러운 느림들이 내 미숙함의 모서리를 조금씩 다듬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