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알리는 빵의 풍경

궁금한 달콤함이 데려오는 시간

by 슬로하라


이곳에서는, 겨울보다 빵이 먼저 연말의 문을 두드린다.


이탈리아와 맞닿은 경계에 자리한 마트를 방문하곤 한다. 조금만 걸음을 더 내면 훨씬 풍성한 식재료와 생필품을 살 수 있어서다.


지난 주말 대낮, 마트 진열대에는 탑처럼 쌓인 각양각색의 상자들이 놓여 있었다. 여유로운 시간대였는데도 장 보러 온 사람들의 카트마다 커다란 상자들이 수북했다. 슬로베니아 마트에서도 종종 보이던, 그 빵 상자였다.


팡도르(Pandoro), 파네토네(Panettone).


팡도르는 베로나에서 온 별 모양의 겨울 빵이라 한다. 윗면에 뿌린 슈거파우더가 마치 갓 내린 눈처럼 내려앉아 파네토네보다 훨씬 순한 단맛을 낸다.


파네토네는 밀라노에서 시작된 전통 크리스마스 빵으로, 둥근 돔 형태 속에 건포도와 오렌지 필이 깊게 배어 있다. 버터와 효모가 오랜 시간 쌓아 올린 부드러운 결이, 겨울의 첫 단맛처럼 입맛을 채운다.


유럽에서는 이 두 빵을 집에 들여놓는 순간부터 연말이 시작된다고 한다. 디저트라기보다, 계절을 맞이하는 하나의 의식처럼.


각기 다른 브랜드, 조금씩 다른 필링, 입맛과 취향 따라 골라 담는 모습들이 자연스레 눈에 들어왔다.


케이크 상자만 한 크기라, 어릴 적 아빠가 사다 주던 과자박스의 기억이 스치듯 지나갔다. 정겨움이 불쑥 따라붙었다.


올해 초 봄에도 사 먹어 본 터라 나도 자연스레 그 코너로 향했다. 곧 수북이 쌓인 상자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집집마다 사두는 기념빵 같은 존재라고 했다.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이 빵들은 단순한 디저트를 넘어 겨울을 맞이하는 일종의 의식처럼 보였다.


상자를 열어 먹는 순간보다, 먼저 집안에 들여놓는 행위 자체가 애정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작은 마음이 되는 것 같았다.


부드러운 효모 향, 버터와 건과일, 피스타치오나 레몬, 초콜릿 필링이 어우러진 묵직한 향은 겨울의 아늑함을 미리 데워 두는 듯했다.



슬로베니아에도 있다.

포티차(Potica).


크리스마스와 부활절, 그리고 중요한 기념일이면 빠지지 않는 빵이라고 했다. 롤케이크처럼 생긴 발효 반죽을 말아 여러 페이스트리 속을 채워 만드는 전통 명절 빵이다.


가장 오래된 포티차는 말린 과일과 꿀을 넣은 것이고, 전통적으로는 호두 포티차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지만, 꿀, 양귀비 씨, 치즈, 허브 등 지역과 가정마다 레시피가 달라 지금은 무려 80가지가 넘는 종류가 있다고 한다.


최근 수업에서 포티차를 소개하는 글을 배웠다. 작년 이맘때, 슬로베니아 가정에 초대받아 처음 맛보았던 기억도 떠올랐다. 우리나라로 치면 명절상에 오르는 떡이나 한과와 비슷한 자리였다.


국경을 건너면 풍경도, 언어도, 빵의 결도 달라지지만 계절을 맞이하는 방식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다정한 이웃과 가족이 함께 나누기 위한 달콤함을 먼저 꺼내 두고, 기념할 날을 기다리는 일을 천천히 시작하는 일.


겨울은 이렇게, 궁금한 달콤함으로도 온다. 정 한 스푼 얹어 나누는 작은 순간이 지나면, 바람의 결이 뒤이어 천천히 계절을 따라온다.


나는 이곳의 겨울로 조금 더 깊숙이 스며드는 중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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