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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koya Jun 30. 2022

포틀랜드 버스 여행 1

산 넘고 물 건너 

얼마 전 결혼식 주례를 봐주셨던 교수님께서 컨퍼런스로 포틀랜드에 몇 주 머무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애틀에서 차로 3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기도 하고, 결혼식 이후 제대로 연락도 못 드렸던 것이 마음에 걸려 남편과 상의한 끝에 포틀랜드로 주말여행을 가기로 했다. 우리는 둘 다 운전을 못하기 때문에 기차나 버스를 타고 가야 했는데, 이번엔 꽤 가까운 거리라 버스를 이용하게 되었다. 


남편과 나는 워낙 집돌이 집순이라 여행에 크게 기대가 없는 편인데, 결혼 후엔 점점 더 무던해져서 어딜 가도 간단한 세면도구와 속옷만 챙기고 아무 계획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떠난다. 이번 여행도 출발 직전에 부랴부랴 짐을 싸서 새벽 6시에 집을 나섰다. 지인들에게 맛집 몇 곳을 추천받은 것 외엔 포틀랜드에 대해서는 아무 정보가 없었고, 하필 우리가 방문하는 이틀간 37도를 훌쩍 넘는 이상기온이 올 것이라는 뉴스를 본 게 전부였다.


4시간 15분이 걸려 도착한 포틀랜드는 굉장히 미국스러운 도시였다. 시애틀에 비해 백인 비율이 높아 보였고, 사람들이 체형도 더 크고, 스타일도 상당히 히피스럽달까. 기차 플랫폼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서 내렸는데, 근처에 토요 장터가 크게 열린다는 걸 듣고 도시 구경도 할 겸 역에서 장터까지 걷기로 했다. 도심은 아기자기하고 예뻤는데, 문제는 마약을 한 홈리스가 너무 많다는 것. 홈리스는 시애틀 다운타운에서 겪을 만큼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포틀랜드는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코비드 중에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고, 외각 지역으로 거주 지역이 옮겨지면서 다운타운 자체가 많이 쇠락한 듯했다. 뉴욕이나 시애틀은 특정 스트릿, 애비뉴 정도에 홈리스들이 모여있고 그쪽만 피한다면 비교적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편이라면 포틀랜드는 어느 스트릿을 가든 홈리스를 피하기가 어려운 느낌이었다. 길거리 여기저기에 주사기가 떨어져 있고, 맨발에 허리를 숙이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사람들에게 크게 눈에 띄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고 걸어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다.


이십 분을 걸어 겨우 홈리스들을 벗어나 장터에 도착했고, 북적북적한 분위기에 섞여 들었다. 유리 공예, 은 공예, 도자기, 그림 등등 다양한 로컬 아티스트들의 상품들을 볼 수 있었고, 한참을 고르다 나는 작은 오팔 하나가 박힌 빈티지 은반지를 하나 샀다. (아, 오리곤주는 세일즈 택스가 없어서 쇼핑하기가 참 좋다!) 장터를 둘러보고 근처에 별점이 높은 브런치 가게로 향하고 있었는데, 웨이팅이 너무 길어 한적해 보이는 일본 라면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기본적인 유자 소유 라멘을, 남편은 용감하게 헤이즐넛 탄탄멘을 시켜 먹었다. 메뉴를 고를 때면 남편은 하나하나 다 읽어보며 한참을 고민하는 편인데 늘 처음 보는 메뉴에 도전을 한다. 성공률은 그다지 높진 않지만 경험치가 쌓이니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헤이즐넛 탄탄멘은 비건 메뉴였는데, 돼지고기 육수 대진 헤이즐넛으로 육수를 내서 고소한 맛을 더했다. 처음엔 라면에서 커피맛이 확 올라와 깜짝 놀랐는데, 먹다 보면 금세 적응해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음식이 전반적으로 나쁘진 않았지만 '또간집' 리스트에 올리기는 애매하달까!?


밥을 먹고 나와 포틀랜드에서 유명하다는 스텀프 타운 커피숍으로 향했다. 아, 가는 길에 부두 도넛(?) 집에서 기본 도넛도 하나 사 먹었는데 생긴 거에 비해 진짜 맛있었다. 특이한 데코레이션으로만 유명한 줄 알았는데 도넛 자체가 부드럽고 촉촉해 기본 베이스가 상당히 맛있었다. 왜 꼭 들려야 하는 도넛 가게인지 단번에 이해!

스텀프 타운 커피숍에서는 시즌 음료인 로즈메리 라테를 한잔 마셨는데- 처음엔 화장품 향기가 코를 찌르다가 부드러운 커피가 목으로 부드럽게 넘어갔다. 처음 맛본 꽃향기에 놀랐지만 역시 마시다 보니 아주 맛있었다. 글을 적다보니 포틀랜드에서 먹은 음식들이 다 처음엔 음? 하고 놀라다가 익숙해지는 그런 패턴을 가지고 있는 느낌!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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