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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비안 Aug 19. 2016

[공연 후기] 아벨 콰르텟 첫 단독 정기 연주회

Abel Quartet, 그 위대한 시작...인데 이렇게 멋지다니이이

아벨 콰르텟 Abel Quartet 첫 정기연주회 <아벨, 그 위대한 시작>
2016. 08. 12 (금) 오후 8시 /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아벨 콰르텟 Abel Quartet

윤은솔 Eunsol Youn, Violin / 이우일 Wooil Lee, Violin /

김세준 Sejune Kim, Viola / 조형준 Hyoung-Joon Jo, Cello  


연주 시작 30분 전에 도착해서 다른 MOC.A 모카친구들과 만나서 수다를 떨면서,

우와 목프로덕션 소속 연주자님들 다 모인거 보라고, 저기 김재영님 있고, 문웅휘님 저쪽, 그리고 트리오 제이드 여신님들도 보이고...

연주만 기대했더니 정말 평소에 너무 좋아했던 선생님들이 일상 차림으로 그들 후배의 첫 데뷔 무대를 응원하러 오신 모습도 보고...

첫 단독 정기 연주회를 마친 후의 표정. 다들 행복해하며 안정감이 팍팍 드는 표정이다.


W. A. Mozart : String Quartet No.21 in D Major, K. 575 "Prussian"

그렇게 그렇게 리게티에만 대해서 기대감을 품고 갔던 나는, 그게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이었는지 깨닫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기는 커녕, 그냥 모차르트의 첫 주제를 듣고 나서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너무나 밝고 산뜻한 그 음악이 펼쳐졌고, 보는 내내 긴장감도 돌지 않는 채로 멤버들이 눈을 맞추며 편안하게 연주를 하니, 듣는 나나 다른 청중들은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까.

바이올리니스트 우일님의 말대로 모차르트가 '인간의 것이 아닌 천상, 혹은 다른 차원의 음악'을 써놓았다면, 감히 평가하건대 오늘 아벨 콰르텟은 우리를 그 차원이 어떻게 생겼는지 25분동안 슬쩍 보여준 것 같았다.

4악장의 1바이올린 은솔님의 우수에 젖은 단조풍의 선율이 나왔을땐 정말이지 울고 싶었다 ㅠㅠ

하이든 국제 실내악 콩쿠르라니, 그냥 타이틀만 봐도 고전시대 작곡가들의 음악 해석에 탁월한 능력을 가져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데, 오늘 느낀 이 모차르트는 아벨 콰르텟이 왜 우승했는지를 뭐랄까, 글자 그대로? 소리 그대로? 보여주는 무대였다.

첫 정기연주회에 첫 곡으로 그들의 정체성인 '아벨'이라는 이름에 맞게 생명력 (아... 아벨에서 생명력이라고 하니 어감이 너무 차이가 나서 참... vivid같은 발랄한 느낌이 필요한데...)이 약동하는 모차르트라니.

출사표로는 이보다 좋은 선곡과 훌륭한 무대가 어디 있을까!


G. Ligeti : String Quartet No.1 "Metamorphoses Nocturnes"

그렇게 그렇게 리게티에 대해서만 기대감을 품고 갔던 나는, 내 바보스러움에 대한 한탄과 아벨 콰르텟에 대한 경탄을 동시에 하고, 그리고 그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시켜줬다.

어디선가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 현대음악을 그 이전 시대의 곡들처럼 수학적인 정교함이나 멜로디의 아름다움을 찾으면서 들어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불협화음과 '이게 도대체 뭐지?' 라며 드는 생각, 그것이 음악 중간에서 어떻게 해소되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는 것이 감상의 포인트라는 메세지였는데. ...

이 곡을 듣는 내내, '나는 지금 천연 마사지를 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현악기에서 날거라고는 상상도 못하는 소리들이 공기 위를 떠돌며

글리산도로 현을 짚는 왼손이 위 아래로 미끄러질 때는 내 생각도 미끄러졌고,

활이 브릿지 가까이서 움직이며 '와글와글' '웅얼웅얼' '왱왱' 하는 등의 기계음에 가까운 소리를 낼 때는 인상도 찌푸려졌지만,

그리고 피치카토나 트레몰로는 내 몸을 잡아 뜯는 듯 했고, 내 몸을 기어다니는 것 같았지만,

갑자기 포르테의 음량으로 나타나서 그 미묘한 느낌을 단숨에 풀어줬다.

마사지를 받는다는 표현 그대로 들으면서 신선한 충격과 중간중간 알 수 없는 희열감에 몸이 움찔움찔댔다.

연주의 맨 끝에서 웃지 못 할 사건이 있었는데, 첼리스트 형준님이 마지막 장을 넘기다 걸려서 악보가 보면대에서 떨어질 뻔했다.(정말 바로 앞에서 보는데 심장이 덜컹 했다)

순식간에 보면대로 복구가 안된다는 판단을 내리고 바닥에 탁 던지더니 (내 표정은 "Seriously?!!!"), 넘길 시간만큼만 첼로가 쉬는 부분이었던 듯, 아무 일 없다는 듯 바이올리니스트 은솔님과 눈을 맞추며 음악으로 돌아왔다.

정말 당황스러웠던 순간이었을 텐데, 음악만 듣고 있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를 정도로 매끄럽게 안정을 되찾아서 연주를 마무리 했다.

당연히 터진 긴 박수, 그리고 인터미션.


R. Schumann : String Quartet in F Major, Op.41/2

그리고 그렇게 오늘의 메인인 슈만으로, 내 바보스러움도 기대감도 모두가 이 멋진 연주자들의 무대 앞에서 사르르 녹아버리고, 그들이 낭독해주는 음악의 시를 들으러 다시 연주장 안으로 들어왔다.

모차르트는 특유의 산뜻함이 있어서 어떤 곡을 듣더라도 그 안에 몰입하기 쉬웠고, 리게티는 그 안에서는 반드시 몰입이 될 수밖에 없었기에 두 곡은 미리 듣고 갈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슈만에 대해서는 막연한 거리감이 있었기 때문에 연주장에 가는 길에 애플 뮤직으로 하겐 콰르텟의 음반을 찾아들었다.

교향곡을 처음 듣는 사람들이 카랴얀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를 찾게 되어 있듯이, 하겐 콰르텟이 현악사중주에서는 나에겐 그런 존재다. 어떤 작곡가도 멋지게 소화하는.

공교롭게도 아벨 콰르텟이 하겐 콰르텟의 멤버 라이너 슈미트를 사사했다고 하니, 영향이 있겠지, 하며 미리 듣기 참 잘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음반으로 들은 것과 무대를 느낀 것의 차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바이올리니스트 은솔님의 첫 선율이 나오는 그 순간 난 다시 한 번 얼어붙었다.

첫 선율의 바이올린 주제는 마치 첼로의 음색처럼 두텁고 풍부했었기 때문에,

그리고 아까 들은 그 음악과 악보는 똑같은데 차원이 다른 고급스러운 음색이 느껴졌기 때문에. (사실 하겐 콰르텟의 무대에 직접 가서 비교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벨 콰르텟도 노부스 콰르텟처럼 1바이올린과 2바이올린의 구분을 두지 않고 곡에 따라 주자를 바꿔 가며 연주한다고 하는데, 오늘 모든 곡을 2바이올린을 맡아 연주하신 우일님의 소리는 다음 연주에는 꼭 한번 바꾼 파트로 감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성을 담당하는 2바이올린과 비올라라고는 하지만, 오늘 선곡된 곡들이 두 악기에게 내성만을 맡긴 슈베르트 같은 곡이 아니었다는 점이, 청중에게 정말 행복한 경험이지 않나 생각된다.

그만큼 오늘 2바이올린과 비올라를 담당했던 이우일님과 김세준님이 보통 콰르텟이나 오케스트라에서는 듣기 힘들 정도의 대등하고도 꽉 차게, 그리고 섬세하게 솔로 멜로디들을 이끌어가서 정말 듣는 귀가 너무나 호강을 하는 밤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마지막 활이 현을 떠나서 허공에 머물고, 장내는 다시 한 번 박수로 가득 차고,

무려 세 곡의 앵콜 곡을 또 풀어주는 아벨 콰르텟.

모차르트 : 현악사중주 제14번 K.387 '봄' 4악장
바흐 : G선상의 아리아
하이든 : 현악사중주 '기수' Op.74-3, 4악장

아, 세 곡을 듣는데, 다음 정기 연주회에는 오늘 보였던 이 앵콜들을 한 악장씩만 감질나게 풀어주셨으니 전곡을 해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연주가 끝나고 홀을 나오는 길에 트리오 제이드 이정란 선생님(꺄) 마주쳐서 인사드리고 간단하게 안부를 묻고, 네 연주자들 나와서 행복하게 사진을 찍는 모습 보는게 참... 너무나 좋은 자리에 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겨서 나도 사진을!

아휴 표정관리라는게 참 어렵구나 ㅠㅠ

모든 첼리스트님들의 팬인 난 오늘 산전수전 겪으신 첼리스트 조형준 선생님과 함께!!

찍었지만 사실 시간이 허락했다면 은솔님과 함께도 찍고 싶었다 ㅠㅠ

정말 모차르트 첫 주제 듣고 감탄한 게 처음이 아니라...

그냥 맨 처음에 입장하실 때 한쪽 어깨 오픈하신 푸르른 드레스가 얼마나 아름다우시던지...

(다음엔 용기내서 찍어달라고 해야지)


#아벨콰르텟 #아벨 #현악사중주 #StringQuartet #MOCProduction #리게티 #슈만 #모차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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