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비안 Aug 20. 2016

[공연 후기] 160819 롯데 콘서트홀 개관 공연

서울시향, 정명훈, 베토벤, 진은숙, 생상

서울에 새로 생기는 음악 전용 연주 홀, 롯데 콘서트홀이 8월 19일 오늘 드디어 개관 연주를 가졌다.

영어로 표기하길, 'LOTTE CONCERT HALL Opening Night'


논란이 많은 기업, 논란이 많은 인사, 논란이 많은 인물과 단체의 콤비네이션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는 점을 미리 밝히는 바이다.



롯데 콘서트홀 개관 축제 프로그램북과 티켓

LOTTE CONCERT HALL Opening Night

2016. 8. 19. (금) 오후 8시 / 롯데 콘서트 홀

지휘 정명훈

연주 서울시립 교향악단


지난 해 12월 30일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정명훈 지휘자와 서울시향의 연주, 는 8개월만에 다시 이루어졌다.

서울 시민이며 청중의 한 사람인 나도 너무나 슬펐고 안타까웠으며, 동시에 이 무대를 그렇게 기대했고 보고 행복해 한 만큼, 연주자들은 오죽했을까.

연주가 모두 끝나고 우는 연주자들이 보였다.

오랜만에 다시 만났는데 이렇게 빨리 보내야 하는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지 않았을까.


베토벤 : 레오노레 서곡 3번, 작품번호 72a

오랜 기간 끝에 재회, 그리고 첫 곡.

개인적으로 베토벤의 여러 서곡 중에 레오노레 서곡과 제일 친하지 않다.

연주 횟수도 에그몬트, 코리올란, 피델리오 세 곡보다 적을 뿐더러, 서곡 3번이라는 명칭은 세 곡을 썼기 때문이 아니라 수정되고 개작된 작은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익숙하게 다가오지 못한 서곡이라고 하면 될까?

느린 음악의 서주가 지나고, 빠른 부분으로 들어갈 때였을까 왠지 모르게 고음 현악기와 저음 현악기가 어긋난다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역사적으로 서곡이 쓰인 배경도 그렇고, 주위 환기 및 몸풀기 정도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후반부에 몰아치는 총주는 너무나 그리운 음색이었다. 이게 정명훈이 지휘하는 베토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의 으뜸화음이 들리고 단원들과 지휘자 모두의 손이 올라서 멈췄다.

그리고 그 정적을 깬 브라보와 함께 환영한다, 오랜만에 봐서 너무 기쁘다는 청중의 화답이 이어졌다.


진은숙 :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 (세계 초연)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 쓸 예정이다.


생상 : 교향곡 3번 c단조, 작품번호 78 '오르간'

내가 너무나 너무나 듣고 싶었던 바로 그 곡.

처음 이 곡을 들은 건 2년 전 여행 중이었다. 빈에서 보낸 마지막 날 저녁에 슈테판 성당의 오르간으로 울려 퍼진 그 곡. 그때의 연주 단체는 UC Berkeley Orchestra였다. 캘리포니아 주 소재 대학인데, 아시아인들이 버클리 시에 굉장히 많나부다, 중국계와 한국계 미국인이 정말 많았다. 충격적인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이들은 음악 전공이 아니라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였던 것... 미국으로부터 빈에 가서, 슈테판 성당에서!! 연주를 할 만한 자본과 환경과 인식이 갖춰져있다는 것에 너무나 놀랐다.

어쨌든, 그래서 정말 훌륭한 연주를 들은 건 아니었기 때문에, 도대체 언제 듣는 날이 생길까, 고대해왔던 그 곡을 정명훈의 지휘로,

음향과 파이프 오르간 설계에 끝장나게 준비를 열심히 한 롯데 콘서트홀에서 듣는 날이 도래한 오늘 너무나 행복했다.

우리의 정명훈 선생님은 서곡도 이 교향곡도 암보로 지휘를 너무나 훌륭하게 하셨다.

1악장의 아다지오에서 오르간이 빼꼼 고개를 내밀어 뿌려 놓은 저음 위에 서울시향의 현악주자 수십명은 깊고 맑은 세레나데를 들려주고, 이어진 두 바이올린 파트의 대화에서 나는 그만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나타난 거칠고 빠른 2악장, 현과 목관의 대화가 이어지고 금관이 불을 뿜으며 앙상블을 보인 후 잦아든 정적 위에

그렇게 고대하던 몇천개의 파이프가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다장조의 으뜸 화음이.

그렇게 그 존재를 당당히 2천명의 사람에게 밝힌 후, 피아노가 몽글몽글 피어올린 구름 위에 다시 한 번 현과 함께 변형된 '진노의 날' 모티브가 나타났다가, 현악기가 신나게 행진을 하다가...

다시 만난, 그리고 이제는 진노가 아니라 '환희'와 '열락'의 세계.

금관의 마지막 화음이 끝난 자리에 다시 나타난 팀파니의 북소리와 오르간 소리와 함께, 그리고 백 여명의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함께, 몇천 개의 파이프로 하나된 이 오르간은 행복한 화음을 내뿜으며 다시 침묵으로 돌아갔다.


연주의 끝엔 응당 있어야 할 정적에서 발생하는 여운, 그리고 오늘 같이 벅차게 행복한 날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었다.
'이 남성'은 정말, 조금만 더 숨을 참고 정적을 즐기고 싶은 그 순간에 브라보를 외치더라.
서곡에서도, 진은숙의 신작에서도, 교향곡에서도...
아름다움은 사라짐의 끝자락에서 탄생한단 말이야!!!

커튼 콜이 이어졌다. 몇 번이고... 몇 번인지 셀 수는 있었지만 굳이 세지 않았다.

축제이니 만큼, 즐겁고 행복한 건 순간이었고, 그 순간에 셈을 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이 순간 누릴 수 있는 당연한 행복감을 극한으로 가져가기 위해서.


정명훈 선생님은 앵콜 전에 몇마디 말씀을 하셨는데 소리가 작아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웃긴 대목이 있었다.

'롯데 기업에서 이런 콘서트홀을 지어줬는데 이 사람들은 고통 받고 있다' 고 말하며,

'고통받는 사람들' 이라는 대목에서 본인의 가슴을 툭툭 치는 제스쳐를 보자 모든 청중이 웃음을 터뜨렸다.

북이고 남이고, 얼른 평화로운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메세지 또한 언급을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이어진 우리나라 제 2의 국가로 여겨지는 아리랑이 앵콜로.


첫 번째 앵콜이 끝나고 다시 커튼 콜을 받다가 포디움으로 올라오려하는 찰나에,

즉 정명훈 선생님이 한 곡 더 하러 지휘하러 올라오려는 커버 사진에 담긴 저 순간,

부악장 웨인 린의 신호로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1번이 지휘 없이 터져 나왔다.


난 그 순간이 너무나 슬펐다.

서울시향과 정명훈은 이 곡을 수없이 많은 앵콜 무대에 올렸고, 나도 그게 식상하다고 생각해서 미워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있을 때 잘 하란 말이 이렇게 또 쓰이는 걸까.

'내 자식들'이 얼마나 날 그리워 했으면 추억이 가장 많이 담긴 그 곡을 나를 위해 연주해준다니.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정명훈 지휘자는 미소를 머금으며 슬며시 객석으로 내려가 첫줄에 관객들 사이에 끼워 앉으며 흐뭇하게 바라보더라.

템포 조절이 필요해진 시점이 다가오자 다시 슬쩍 일어나서 지휘대 위로 올라와서 나머지 부분을 함께 지휘하고, 이어진 박수에 또다시 이어진 앵콜 요청에 이번에는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서곡.

신나는 박자에 멋진 선율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헝가리 무곡에 이어 정말 좋아하는 곡이다.

관객들은 비팅에 맞춰 박수를 쳤고, 난 이 때 이런 생각을 했다.


개관 축제니만큼,

그리고 본 무대는 모두 끝나고 청중과 연주자가 함께 즐기는 앵콜 무대인만큼,

그리고 정명훈 지휘자가 키웠다고도 말할 수 있는 우리 청중, 우리 서울 시민인데,

이 순간만큼은 격식을 다 내려놔도 좋았다.

'한국인이 즐기는 클래식' 은 결국 이런거니까.
모두 일어나 화답하는 청중들


작가의 이전글 [공연 후기] 아벨 콰르텟 첫 단독 정기 연주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