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비안 Aug 23. 2016

Shostakovich by Novus Quartet

노부스 스트링 콰르텟, 피아니스트 손열음, 쇼스타코비치

0. 노부스 콰르텟의 8번째 정기 연주회, "쇼스타코비치"


1. 노부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슈포어의 현악 4중주를 위한 협주곡을 접하면서였다.

당시 난 첼로 연습을 하는데 재미를 붙이면서, 동시에 오케스트라를 지겨워하면서 좀 더 새로운 편성, 새로운 형식의 곡에 엄청난 호기심을 가지던 차에, 이런 곡을 발견했다. 근데 얼마 안 있어 '노부스 콰르텟' 이라는 우리나라의 젊은 콰르텟이 이 곡을 연주를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최수열 지휘자가 지휘하고 KBS교향악단이 연주한 '4월의 콘체르토' 라는 이름으로 기획된 연주였다. 난 당시로서도, 지금 생각해봐도 꽤나 운명적인 만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렇게 노부스 콰르텟을 알게 되고, 슈포어의 곡이 분명 음악사적으로 굉장히 희귀한 편성으로 된 곡이라는 걸 감안해도, 스트링 콰르텟을 위해서 쓰인 곡 치고는 협연자들이 너무 빛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목말라 했다. 

노부스 콰르텟의 소리를.


2. MOC Production

노부스 콰르텟을 검색해보니 나온 이 목 프로덕션이라는 기획사에는 당시 솔로로, 또는 팀으로 자주 올려지지 않는 실내악 또는 독주 레파토리를 연주하는 연주자들이 잔뜩 속해 있었고, 최수열 지휘자님 또한 이 곳의 식구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4월의 콘체르토 연주를 보고 다녀온 두달간의 유럽 여행 뒤에는 이 지휘자님은 심지어 서울시향의 부지휘자로 발탁까지 되었고, 이후 한 해 내내 호르니스트 김홍박,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그리고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까지, 너무 멋진 연주자들을 영입(?)했기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었던 기억이 난다.


3. 노부스 콰르텟의 '죽음과 소녀' 정기연주회

그 갈증을 드디어 풀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내게 다가온 최초의 현악4중주 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참 많은 사람에게 이 곡은 그런 곡인 것 같더라)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가 노부스의 노래로 내게 다시금 다가올 그 정기연주회.

1부에 다른 어떤 프로그램이 올라오건 상관 없었다.

내 모든 집중을 죽음을 대하는 소녀의 심정에 갖다 댈 준비를 했다.

문제는, 그 역시 잘못된 선택이었던 것. 1부에 선곡한 브리튼의 디베르티멘토와 그리그의 현악4중주까지. 

이들이 보이는 현대적이고 화려한 색채에 압도되고 말았다.

그리고 드디어 나타난 2악장에서 죽음과 소녀의 슬프지만 숙명적인 유채화에 이어 강렬한 스케르초와 4악장까지 중세에서 근세까지 나타난 죽음의 이미지가, 그리고 소녀가 외치는 슬픔이 그 모든 갈증을 싹 풀어주는 현장이 되었다.


4. 쇼스타코비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으로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에서 굉장한 성공을 거두며 한창 잘 나가던 쇼스타코비치는 한 순간에, 당시 소련 언론과 공산당에 관계된 단체들에게 수많은 비판을 받고 목숨까지 위협당할 정도로 예술가의 자유를 탄압받았다.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에서 200회 이상 공연되며 엄청난 성공을 거뒀지만, 스탈린이 공연을 보고 난 후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스탈린은 이 오페라에 상영금지 처분을 내렸고, 당시의 최고 권위를 가졌던 <프라우다>라는 언론에서 연일 비판을 해댔던 것이다.
실제로 그와 가까이 지내던 예술가들 중에는 정권에 의해서 숙청된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쇼스타코비치는 생존을 위해서라면 작곡을 끊든지, 아니면 정권을 위해 작곡을 하는 수 밖엔 없었나보다.

아무리 살아 있는 연주라 해도 사실 슈베르트는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 사람이다.

반면 쇼스타코비치는 태어난 해가 채 올해가 110년이고, 죽은 시점으로 따지면 아직 50년, 한 세대밖에 지나지 않았다. 악보를 찾아도 저작권이 걸리는 기간에 있기 때문에 다른 곡들처럼 악보를 보면서 음악을 듣는게 사실은 불가능 한일이다.

또한, 쇼스타코비치가 살던 시대는 독재와 억압, 그리고 전쟁으로 일어나는 죽음이 시대를 지배했던 시대.

슈베르트가 음악으로 노래한 '어떠한 전설이나 민담으로 내려오는 죽음과 소녀의 이야기'가 아니라, '죽음', '공포', 그리고 '외로움'이 그리 멀지 않은, 같은 시대를 사는 나에게 어떻게 다가오는 지를 적나라하게 그린게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이다.

교향곡 5번 3악장의 클라이막스

독재와 억압, 전쟁으로 얼룩진 쇼스타코비치의 음악 세계의 발원지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난 이 음악을 이야기하고 싶다. 교향곡 5번의 3악장, 바로 이 부분.

고음악기인 플룻에게 낮은 음의 탄식을, 그리고 첼로에게 저음과 고음을 왔다갔다하며 처절한 절규를 내뿜게 한 바로 이 부분. 첼로와 함께 내려치는 실로폰 소리는 얼마나 절망적인가.

외로움에 몸서리치며 원하지 않는 곡을 써야만 살 수 있는 자유라고는 조금도 없는 세상에서 

숨쉬기 위해, 그 숨구멍을 조금이나마 열어놓은 이 부분.


4-1. 노부스 콰르텟의 두번째 그려내는 죽음

이번 정기연주회에서 보여주는 노부스 콰르텟의 프로그램들은 모두 죽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 않나, 하고 생각했다.

특히 현악 4중주 8번은 작곡가가 드레스덴을 방문했을 때 폭격으로 황폐화된 도시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 그 곳에서 사흘만에 쓴 곡이라고 한다. 악보에는 '파시즘과 전쟁의 희생자들에게' 라고 쓰여있다. 

하지만 쇼스타코비치는 곡을 쓰는 전후에 자살을 시도하려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곡에 본인 이름의 이니셜 'DSCH' 로 표현되는 음형인 '레-미b-도-시b'을 중요한 요소로 써놓은 점에서 작곡가의 자전적인 음악이라고 보기 충분한 곡이다.

피아노 5중주는 프로그램 세 곡 중에는 가장 일찍 쓰여졌으며, 위의 교향곡 5번이 쓰인지 3년밖에 지나지 않은 여전히 스탈린에게 고통, 억압 받는 시대에 쓰였기 때문에 같은 정서로 쓰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느린 악장의 전개는 개인적으로 너무나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서, 작년에 연주를 들었을 때 그렇게 고통받는 쇼스타코비치가 너무 안 됐다는 생각에 울음이 터져나왔었다. 외롭고 억눌린 사람이 그보다 더 큰 절규를 할 수 없다는 마음에 그렇게 울지 않았을까.


노부스 콰르텟은 이 가까운 시대의 죽음과 외로움을 어떻게 들려줄까. 

이번주 토요일에는 그들이 들려주는 쇼스타코비치의 슬픈 인생을 들으러 간다.

작가의 이전글 [공연 후기] 160819 롯데 콘서트홀 개관 공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