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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비안 Sep 15. 2016

[공연 후기] 풍요로운 외로움

재능문화센터 JCC : 첼리스트 문웅휘의 명연주

2016. 9. 1. Thu | PM. 8 JCC아트센터 콘서트홀
프로그램
J. S. Bach | Cello Suite No. 3 in C Major, BWV 1009
K. Penderecki | Suite per Violoncello
Intermission
J. S. Bach | Cello Suite No. 4 in E-flat Major, BWV 1010

악기를 배우기 시작하기 전, 그리고 무슨 악기를 배울지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어느 날 중고서점에 가서 음반 쪽을 돌아보았고, '가장 유명한 첼로'라는 이름이 붙은 컴필레이션 앨범을 홀린 듯이 산 나는 그날부터 그 안에 들어있던 첼로 무반주곡, 피아노 및 하프시코드와 함께한 소나타, 그리고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콘체르토 등에 빠지며 첼로를 선택했다. 어떤 악기와도 다르게 첼로는 앉은 자세가 아니라면 연주를 할 수 없었고, 사실 웃기지만 이 점 역시 첼로를 선택하게 만든 요인이었다.

사람의 목소리와 가장 유사한 음을 내는 악기

라는 수식을 놓고 비올라와 첼로가 싸우긴 하지만, 남성의 영역을 더 깊게 표현할 수 있는 한 옥타브가 더 낮은 음을 가졌다는 점이 더 멋진 이점이라고 생각한다.


노부스 콰르텟과 손열음은 8월 21일부터 시작해서 9월 4일에 이르기까지 연주회의 모든 프로그램 -3곡-을 전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으로 구성하고, 전국 투어를 다녔다. 대전을 시작으로 천안, 수원, 서울, 인천 그리고 마지막을 통영까지.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연주날짜는 더욱더 촘촘해졌고, 심지어 첼리스트 문웅휘는 마지막 두 연주 3일 인천, 4일 통영 연주를 앞두고 1일에 독주 리사이틀까지 가졌는데, 엄청난 강행군이 아니었나 싶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은 이미 모든게 지난 14일인데, 4일 통영에서 만난 노부스 콰르텟은, 기획사 대표님의 말씀에 따르면 3일 인천 연주가 끝나는 즉시 밴을 타고 새벽내내 인천에서부터 통영까지 말그대로 국토를 종단해서 내려왔다고 한다.

첼리스트 문웅휘의 명연주

연주 전 JCC에서 찍은 노을지는 하늘

이 연주가 대중에게 공개된 시점은 내가 알기론 올해 초였다. 대학로에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새 작품으로 만들어진 JCC아트센터는 1년을 4개의 분기로 쪼개서 멋진 연주들을 준비했다.

이 공간에는 지하에 콘서트홀이, 그리고 2층부터 4층까지는 전시실과 컨퍼런스룸 등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공간들이 각각 준비되어 있었다. 건축 자체로도 방문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돌아와서, 3월과 4월 그리고 6월엔 각각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 명창 안숙선, 그리고 피아니스트 임동혁의 독주들이 마련되었었고, 당시 연주들에 이어 올라온 후기 -연주에 대한 후기뿐만 아니라 공간 자체에 대한 감상까지- 들을 읽어보니, 공간에 대한 호기심이 넘치려는 상태에서 마침, 9월엔 노부스 콰르텟의 첼리스트 문웅휘의 독주가 마련되어있었기에, 맨 앞 정 중앙자리를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프로그램 또한 고즈넉하고 아담한 공간에 맞게 무반주 독주곡들로 준비한 것 역시 '이 연주는 당연히 가야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만든 요인이었다.





... 처음엔 이 6개의 모음곡 전체를 한 자리에서 연주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만 한편으론 조금 다르게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바흐의 영향을 받은 현대음악을 함께 연주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는데요, 이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바흐의 모음곡 2개와 현대곡 1곡을 세번의 연주로 나누어서 연주하면 흥미로운 공연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 문웅휘의 글 Beyond 중에서

J. S. Bach (1685-1750) : Cello Suite No. 3 in C Major, BWV 1009

음악을 배울 때 가장 먼저 만나는 음은 C라고 표현하는, Do라는 음이다. '도레미파솔라시도'라는 계이름에는 사실 굉장히 종교적인 의미가 들어가 있다고, 그 중 Do에는 Domine, 나의 주님이라는 거룩한 뜻을 담았다고 한다. 종교에 대해 많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문웅휘가 원하는 바흐 및 현대음악가들의 첼로만을 위한 독주곡 여정, 그 시작을 라는 음이 지배하는 곡으로 첫 발걸음을 내미는 것은 꽤 상징적인 의미를 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도 바흐의 여섯 곡, 그리고 각 곡마다 6악장을 모두 하면 총 36개의 작은 곡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 2곡이 3번에 있다. 3번의 첫 곡 프렐류드와 마지막 곡 지그. 3번을 들을 때마다 이 여섯 악장은 구성이 마치 교향곡의 기승전결과도 꽤 맞는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첫 마디를 큰 호흡과 함께 큰 활의 움직임으로 높은 도부터 첼로의 제일 낮은 음을 향해 내려갔다가, 숨가쁘지만 꽤나 여유롭게 아르페지오를 거쳐 다시 맨 처음 마디와 함께 프렐류드를 산뜻하게 마쳤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3번의 마지막 곡 지그, 3박자로 되어있고 곡의 길이는 꽤 짧지만 교향곡에 비유했을때 정말 규모도 크고 다이나믹의 범위도 넓은 곡이다. 문웅휘에 대한 인상으로는 조곤조곤하면서도 선이 꽤 큰 움직임을 가진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데, 그런 캐릭터가 가장 잘 나타난게 바로 이 곡인 것 같았다. 롤러코스터를 탄 듯 완급조절도 충분했고, 자글자글하게 작고 빠른 음형이 서서히 커지며 이 곡의 후렴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에 이르렀을 때는 웅장하게 또는 불꽃놀이처럼 화려하게 펑펑 터지는 음악이 모든 갈증을 풀어준다는 느낌을 가졌다.


K. Pendercki (1933- ) : Suite per Violoncello (1994-2013)

문웅휘의 경력 중 눈여겨지는 부분이 바로 펜데레츠키 국제 첼로 콩쿠르 입상이다. 이 콩쿠르가 13년 겨울에 열렸고, 그 과정에서 펜데레츠키의 본 곡을 연주해야만 했을 것을 생각한다면, 작곡가 이름을 딴 이른바 본토의 경쟁에서 인정받은 연주를 보여주는 자리가 되는 것이므로 꽤 의미있는 연주 자리가 아닌가 싶었다. 보기만 해도 국내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곡은 전혀 아닌 것 같아서, 역시 이 연주는 모든 걸 제치고라도 볼 가치가 있었다, 아니 이런 자리에 있다니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다! 

1. Preludio (2013)
2. Serenade (1994)
3. Sarabande 
4. Tempo di Valse
5. Allegro con vravura 
6. Aria 
7. Scherzo 
8. Notturno

활로 현을 긋는것을 가리켜서 단순히 첼로로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라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편견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고 얘기할까... 작곡가인 펜데레츠키가 원래는 세 악장의 Divertimento라는 이름으로 썼던 곡에, 친하게 지내던 첼리스트들을 위해 한 악장, 한 악장씩 추가하다보니 13년에 프렐류드까지 8 악장으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1. Preludio (2013)

현대음악을 듣는데 열려 있는 귀를 가지긴 했지만, 베토벤이나 말러 음악을 듣고 어떻다고 말하는 것만큼 펜데레츠키를 듣고 어떤 감상을 가졌다, 라고 말하는 것이 여전히 어렵다. 

이렇게 쓰는 것이 참 이상하긴 하지만, 연주가 흘러나오는 순간 동안 딴 세상에 갔다왔다는 느낌이 바로 이런걸까? 왜냐면 연주가 끝나고 인터미션 동안 곰곰히 생각을 해봐도 내가 뭘 들었는지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 강했다. 리게티의 현악 사중주 1번을 처음 들었을때처럼 몸이 움찔움찔하며 놀라기도 하고, 호흡을 따라가며 눈을 감아도 보고, 악장을 표현하는 빠르기 말이나 악장 형식을 가지고 내가 아는 곡들과 빗대어 생각해보기도 했다.

연주 자체는 정말 멋있었고 흠잡을데 없는 연주가 아니었나.


J. S. Bach (1685-1750) : Cello Suite No. 4 in E-flat Major, BWV 1010

그렇게 앞의 두 대곡을 듣고나서 참 피곤했달까... 작년에 이정란 선생님이 했던 바흐 전곡은 또 어떻게 들었나 참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름 바흐 연주에 대해서 그 연주만큼 강하게 남은 연주가 없긴 했다.

그래서 기억이 나는 곡들에 대해서는 비교가 안 될 수가 없었다. 두 연주자의 가장 큰 차이점이랄까, 또는 각자의 색깔이랄까, 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본다면, 그리고 이 4번의 프렐류드와 (미리 잠깐 언급하면) 앵콜로 보여준 1번의 프렐류드가 그 비교하는데 꽤 좋은 재료가 되었던것 같다. 

4번의 프렐류드의 가장 큰 특징은 곡의 절반 동안 모든 마디가 8분음표 8개로 되어있는것인데, 마디의 첫음이 등대의 빛처럼 방향을 제시해서 풀어진 화음들이 지그재그로 움직이면 다시 새로운 방향을 가리키는 마디의 첫음이 새롭게 등장하고, 그렇게 앞에 지났던 길과 함께 각 마디마다 첫번째 음이 등대의 빛처럼 방향을 제시해주면 그것들을 지표로 삼아 공간을 서서히 덮어가는 그런 일종의 여정 같은 곡이라고 생각한다.

성공회성당 안에서 들었던 이정란 선생님의 연주는 꽤 본인이 이미 어디로 가는지 확신을 가지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느낌이라면, 문웅휘의 연주는 (그런 확신이 없다는 게 아니라) 어디로 갈지 즐겁게 고민을 하며 걸어간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듣는 입장에서도 굉장히 즐거운 고민을 함께 할 수 있었다고 느껴졌다.

앞의 두 연주가 굉장히 각각 산뜻함과 화려함을 보여주며 동시에 웅장함을 갖춰서 내게 다가왔다면, 2부의 4번에 속한 6곡들은 꾸밈 없이 한음 한음 순수한 형태가 다가왔다. 4번의 5번째 곡, 고작 12마디 밖에 안되는 두번째 부레는 간결함의 극치를 보여주는데, 문웅휘는 해맑은 미소를 띠며 순수한 모습을 연주하고, 빠르고 격렬한 지그를 특유의 서글서글한 선으로 마무리 짓고 첫번째 독주를 마쳤다.


프로그램 구성도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더 좋은 것은 이런 구성의 프로그램을 아직 두번이나 더 볼 수 있다는 것!! 바흐의 여섯 독주에 도전함과 동시에 첼로 한대를 위해 쓰인 현대음악을 대중에게 쉽사리 꺼내는 굉장한 도전 정신의 바탕이 되는 것은 모 인터뷰에서 그가 했던 말처럼 한 음이 어떻게 쓰였는지, 그리고 그 음이 어떻게 해석되었는지를 탐구하는 정신에서 온 게 아닐까. 연주회 컨셉에 대한 소개부터 프로그램 노트 하나하나까지 연주자 본인이 직접 작성해서 더더욱 감상자들을 몰입시키기 쉬웠는지도 모른다.

그는 다음 연주에는 1번과 5번을 올릴거라며, 앵콜로 바흐 5번의 사라방드, 그리고 1번 프렐류드를 들려준다.

본래 바흐 5번은 '스코르다투라' 라는, 저음현부터 고음현까지 CGDA(도솔레라)로 조율되어 있는 상태에서 A현을 온음 내려 개방현을 그었을때 G가 나도록 하는 특이한 조율을 사용하여 연주하도록 쓰였는데, 이 날엔 앵콜이었던 만큼 첼로 본래 조율상태인 CGDA로 들려주었던 것 같다. (조율하는 소리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만약에 만약에 그게 아니라면 이미 조율되어있는 세컨 첼로로 연주했을거다)

명상적인 느린 악장의 사라방드가 지나고, 길고 다양했던 코스요리 후에 우리 모두가 알고 갓난 아기도 아는 1번의 프렐류드를 디저트로, 이날의 연주는 끝났다.

다음 연주에 오를 1번과 5번 외에 어떤 20세기 이후 작곡가의 곡이 오를지 또한 굉장히 궁금하다. 펜데레츠키 콩쿨에서 수상자 무대였나, 윤이상의 첼로 독주 작품을 연주했다는 일화가 있던데 윤이상의 작품들이 오를지, 아니면 무반주 곡으로 또한 굉장한 난이도와 작품성을 가진 코다이의 소나타를 보여줄지, 행복한 기대와 궁금증을 품고 다음 연주를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이 날의 무대

시각적으로 이렇게 깔끔하고 완벽한 무대가 어디있을까, 그리고 무대에 의자와 나, 그리고 첼로 한 대만으로 채우는 공간이 주는 느낌은 어땠을까. 나도 첼로를 취미로 배우는 사람이지만 언젠가 노력과 시간이 내게 기회를 준다면 이런 무대와 객석이 주는 공간감과 공감은 어떨지 알고 싶다. 

넓지는 않지만, 노부스 콰르텟 안에서 넷이서 꾸미던 무대로부터 벗어나, 또한 피아노 반주도 없이 혼자라면 그렇게 좁은 것도 아닌 이 무대 위에서 어떤 생각들이 들었을까 자꾸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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