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의 마지막 날 밤이다. 내 머리 속에서는 여전히, 지난해의 마지막 몇 밤 사이 시작되어 새해가 된 지 100일이 다 되었지만, 끊임없이 맴돌고 있는 장면들이 있다. 오래된 사진들에는 그 위에 먼지가 쌓이는데 셀 수 없이 많은 그 중에 몇장, 또는 몇십장은 이상하게도 입체감을 가졌는지 특별한 조각이 되었고, 건축이 되기도 했다.
내 세계 속에는 어떤 랜드마크들이 있고, 어떤 조각상들이 있는지 보고 싶어졌다. 마침, 내 안의 세계도 멈추어 있고, 내 밖의 세계도 멈추어 있다. 멈춰있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이 정말 길고 길어졌다. 생각도 멈추었고, 성장도 멈추었다.
STOP STOPPING
모든 게 흘러갈 때 난 멈춰 있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움직임을 감췄다. 그러다보니 내가 움직이지 않고 움츠려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것도 강하게 충격을 받고 깨달았다. 주변 사람들은 한창 굴러가며, 깨져가며, 그 위에 더 강한 갑옷을 두르고 본인들의 길을 가다가 가로막힘 당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내 길을 간다고 생각만 하고, 그 생각은 정말 멀리까지 뻗었고 내 몸보다 많은 길을 갔지만 정작 나는 지금 칼로 베인 듯 아프다. 그저 아픈 게 아니라 그 자상이 상당히 오래전부터 깊숙히 패여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난 좌절하고 내 주위에 벽을 쳐두기 시작했던 것 같다. 옆에서 아무리 흔들어도 움직이기 싫어했던 거다.
나를 돌봤어야 했고, 나를 돌보지 않은 그 시간들이 정말 아깝다. 10월 말에 등록한 헬스장, 12월 말에 시작한 PT를 통해 3개월간 운동을 하다보니 몸무게가 3kg가 줄었다. 12월 말에 84kg이었던 몸무게가 - 85가 넘어갈 순 없다며 겁냈던 - 2월초에 82, 81로 내려가면서 저녁을 많이 먹은 다음날에도 올라가지 않는 걸 발견했다. 신기했다. 내 몸무게가 생애 최초로 역행을 했고, 그게 유지도 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이게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다는 것.
스무살 이후로 10년 가까이 불기만 했던 몸무게가 내려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세 가지 생각이 들었다. 더 내려가게 만들고 싶고, 나도 몇년간 말만 해왔던 예쁜 몸을 가져보고 싶다는 게 하나(헬창이 되자), 10년간 어떤 일을 겪고 내가 어떻게 변했는지와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다 한 번 반추해보고 되돌아 보고 싶다는 게 둘. 그리고 앞으로는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기로 했다.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고 기억하려는 버릇으로 살아왔다. 결국 기록하지 않으니 내게 남은 것, 내가 가진 것을 잃기 시작했고, 뭘 잃었는지도 잊게 됐다.
13년부터 지금까지 수천수만장의 사진을 찍고 화면 캡쳐를 했을 것이다. 지난 12월말부터 하드디스크에 있던 모든 이미지 파일을 한 폴더에 몰고, 연도별로 폴더를 나눴다. 그것만 해도 양에 질렸던 건지, 14년인가 15년 정도까지만 정리하다가 말았다. 하지만 이제 정말로 나를 찾기 위해서 돌아볼 때가 된 것 같다. 나를 찾고 싶어서 헤매는 나를 위해 글은 이 정도로 남기겠다.
방구석에서 하드디스크를 뒤지다 보면 내 머리와 가슴 어느 구석에 숨어있는 조각들을 모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안, 성스러운 공간에 압도당해서 가만히 서 있었는데 눈물이 흘렀던 2014년 4월의 나를 다시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