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잊어버린 슬픈 짐승, 40대 남자

by KHGXING

전속력으로 달려본 게 언제인가 싶다. 30대 중반까지는 그래도 최소한 이틀에 한번 정도는 러닝머신 위에서라도 5~6km를 뛰곤 했지만 2009년 이후에는 달리기를 제대로 해 본 기억이 없다. 그러다 보니 달리는 자세조차 잊어버렸다. 정말 잊어버렸다. 웬만하면 머리는 망각하더라도 몸은 기억하고 있을 텐데 몸조차 뛰는 자세를 잊어버렸다.


그러다 40대가 되어 ‘버렸다.’ 내 앞에 붙는 나이 수식어가 40대라니. 어느 누군들 안 그랬으랴만 40대, 무척 낯설다. 40대가 누구냐 그러면 난 주위를 둘러볼 것 같다. 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정말 40대란 호칭이 머리에나 몸에나 다가오지 않기에 말이다.


이런 40대 가운데 달리기 자세를 아직도 몸이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달리기 자세를 잊다니, 있을 법한 일인가, 라 생각한다면 한번 뛰어보시라. 전력질주를 해보면 어떤 말인지 알 성싶다. 열에 여섯 일곱은 아마 당황스러울 것이다.


열에 여섯 일곱이라 특정한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지난해 가을 아이 유치원 운동회 때다. 이날 함께 한 아빠들은 대략 40대 초반이거나 그 안팎 언저리였을 것이다. 유치원생 아이를 둔 아빠라면 대략 나이대가 그러할 테니.


여느 운동회가 그러하듯 마지막 종목은 이어달리기. 청팀 백팀 별로 아빠 10명씩 준비했고, 운동장 반 바퀴씩 달려내야 했다. 아이들의 기대에 찬 눈망울에 아빠들은 기어이 빨리 달려야 했다. 멋지게 달리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몸과 머리가 따로 놀았다. 머리는 어떻게든 빨리 뛰려 앞으로 내달렸지만 몸은, 다리는 머리를 응원하지 못했다. 다리는 허공에서 휘저었고 결국에는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웃음소리가 들릴 만도 했지만 안타까운 탄성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다들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 이때 뛰는 자세를 잃어버린 듯한 ‘아빠’들이 대략 열에 여섯 일곱이었다.


'밤은 노래한다'란 책으로 호감을 느꼈던 작가 김연수의 또다른 책 '지지 않는다는 말'을 읽고서 김연수란 작가를 부러워했다. 산뜻한, 꾸미지 않는 유려한 문장으로 여러 은유를 보여주던 책이었지만 사실 부러워했던 건 그저 달리기를 맘껏 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달리기를 하면서 숨이 턱에까지 차면 느껴지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기에 작가가 글에서 말하던 달릴 때 느껴지는 감정이 왜 그리 부럽던지.


김연수란 작가도 그런데 족저근막염이었단다. 실은 내가 2009년 이후 맘껏 달려보지 못했던 게 족저근막염 탓이다. 이 작가는 어떻게 이겨냈는지 신기하다. 초기에 제대로 잡았어야 했는데 앉았다 일어설 때 느껴지는 발바닥 뒤꿈치 통증이 이리 오래 갈 줄은 몰랐다. 처음엔 그 통증을 운동을 열심히 한 훈장쯤으로 여겼으니. 그 짜릿한 통증조차 기분 좋게 넘겼으니. 그리고 일정 시간 이상 달리면 느껴지는 환희 맛에 통증은 저절로 사라지는 줄 알았다. 당시 병원에 계시던 아버지 걱정을 다소 잊을 수 있던 시간이기도 했고.


수개월이 지나서야 고개를 갸우뚱하기 시작했으니 미련했다. 지금은 소위 악화가 양화를 구축했다. 달리지 않으니 근육은 더 퇴화해 버렸고 근육이 힘이 없어져버리니 족적근막염은 그저 만성이 되어 버린 듯하다. 늦었지만 고쳐보겠다고 양방에 한방에 다 해봤지만 효과는 보지 못했다. 2011년 베이징에 잠시 머물 때 명의라는 한의사가 베이징에 와 있길래 치료를 받기도 했다가 된통 부작용에 시달리기도 했다. 발바닥에 바로 뜸을 떴다가 짓무르고 퉁퉁 부어서 몇 개월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하여간 달리기의 환희를 다시 느껴볼 수는 있을까. 지난주 무슨 마음이 들어서인지 뜀뛰기를 했다. 전속력은 엄두도 못내고 가볍게 속도를 내봤다. 후회했다. 다음날 하루 종일 다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달리기 동작을 잊어버렸지만 달리는 본능조차 잃어버리고 싶어하지 않는 40대 중년의 아둥바둥 모습이다.


**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이나 베이징이란 공간에서 보낸 3년(2016-2019) 가운데 첫해에 대한 기록이다. 일상과 관찰, 위안의 느낌을 나누려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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