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사회] 대만의 흥미로운 사회제도, ‘영수증 복권’
설날 즈음에 ‘꽁돈’이 생겼다. NTD1,200, 우리 돈으로 약 5만원에 해당한다. 대만 정부가 줬다. 그것도 재정부가. 설 전인 2월 6일 이후부터 수령할 수 있다고 안내를 받았다. 설 지나고 2월 15일 찾았다.
솔직히 고백해야겠다. ‘선물’이라 했지만 나를 특정해서 준 건 아니다. 당첨됐다. 재정부 주관 ‘복권’에 말이다. 대만에 온 지 1년 만에 처음이다.
대만에서는 편의점이나 마트 등에서 물건을 구매한 뒤 받는 영수증이 사실상 복권이다. 이 영수증을 통일영수증이라 하는데 모든 영수증에는 8자리의 일련번호가 부여돼 있다. 그 번호로 2개월에 한 번씩 추첨을 한다. 예를 들어 2023년 11~12월 영수증은 2024년 1월 25일 추첨을 했고 2월 6일부터 5월 6일까지 3개월간 수령할 수 있다.
당첨금액은 꽤 크다. 아니 아주 크다. 8가지 종류로 추첨을 하는데 특별상과 특상, 1등상은 각각 우리나라 돈으로, 어림잡아 4억원, 8천만원, 8백만원이다. 각 상에 해당하는 일련번호가 모두 일치해야 한다. 2023년 11~12월 당첨번호는 특별상은 63603594, 특상은 73155944, 1등상은 94985899, 57283420, 62825278이었다. 당연히 행운이 깃들어야 가능할 확률이다. 그것도 많은 행운이 말이다.
재정부는 흥미롭게도 특별상과 특상이 어느 가게에서, 어떤 물건을, 얼마 구입한 영수증이 당첨된 것인지 공개한다. 행운아들이 무엇을 샀나 보니 소소하다. 세븐일레븐에서 NTD144(약 6천원) 식품 구매한 사람, 과일가게에서 NTD319(약 13,000원) 구매한 사람, 애플 앱스토어에서 NTD150(약 6천원) 어플 구매한 사람 등이 있고 핸드폰 통화료 NTD70(약 2,800원)낸 사람도 4억원에 당첨됐다. PX마트에서 NTD55(2,200원) 어치 물건 구매한 사람이 제일 운 좋은 사람이었다.
2등부터 6등까지는 끝에서부터의 일련번호가 각각 1등 해당번호와 7자리, 6자리...3자리가 일치해야 한다. 당첨금액은 각각 160만원, 40만원, 16만원, 4만원, 8천원이다. 특별상 등과 비교하니 작아 보이긴 하지만 이 또한 기분 좋은 당첨 금액임은 분명하다.
신문 보도를 보니 ‘23.11~12월 당첨자 가운데 특별상은 13장, 특상은 17장이었다. 그 예산만 해도 66억원이다. 복권제도의 당첨금액, 홍보 등 전체예산은 법령으로 정해져 있다. 1년 영업세익의 3%로 충당한다. 2024년도 예상 영업세익은 NTD5,547억이기에 NTD166억 정도가 복권제도 유지비용이고 그 가운데 NTD160억 상당액이 당첨금액이라 한다. 한화로 6,400억원이다. 거금이다.
어 그런데 이상하다? 이번에 내가 당첨된 금액은 NTD200 1장, NTD500 2장이다. 안내되어 있는 당첨금액에 NTD500짜리는 없다. 분명 스마트폰 영수증 관리 앱에서는 당첨 축하 메시지가 와 있고 메일로도 와 있다. 신기하네.
알아보니 내가 당첨된 것은 2개월마다 추첨하는 것과 별개의 것이었다. 통일영수증 복권은 2개월마다 정례적으로 추첨하는 것 이외에 영수증을 종이 형태가 아닌 전자영수증 형태로 수령한 사람들을 위한 특별 복권 추첨 제도도 있다. 환경보호차원에서 전자형태 발급을 장려하기 위한 유인책인 셈이다.
전자영수증 전체 당첨금액도 상당하다. 총 400억원 가까이 된다. 이 영수증의 경우 아예 개개 당첨번호를 발표하는데 1등에 해당하는 NTD1,000,000은 30개, 2등 NTD2,000은 16,000개, 3등 NTD800은 100,000개, 4등 NTD500은 1,650,000개나 해당한다. 전자영수증의 경우 8개 일련번호 앞에 영문 2개를 조합해 놨기에 이렇게 수백만 개의 개별 숫자가 나올 수 있다.
주변 사람들 중에는 2개월치 종이 영수증을 모아놓고 당첨번호 발표날 하나하나 맞춰보는 사람들도 있다. 수십, 수백장이 될 것 같긴 한데 확인해 보는 ‘쪼이는’ 기분이 좋단다. 허나 종이 영수증을 일일이 받기도 귀찮고 당첨번호 확인하기도 번거롭다. 나는 말이다. 그래서 재정부에서 만든 전자영수증 등록하는 앱을 다운받았다. 이를 중국어로는 짜이쥐(載具)라 표현한다. 물건 구매 시 앱의 바코드를 제시하면 영수증번호가 자동등록 된다.
하여간 2개월마다 대만 전국민에게 ‘일확천금’ 복권당첨의 설레임과 기쁨을 선사하는 제도인 셈이다. 궁금했다. 이 제도가 왜 생겼지? 복권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사행성 조장이라 할 수 있는데 어느 정부가 국민들에게 그런 분위기를 조장하겠는가.
대만의 통일영수증 복권당첨제도는 국민들에겐 ‘소소한’ 기쁨일 터이지만 정부에게는 아주 튼실한 세수확충, 탈세방지 제도다. 현금 사용이 아직도 빈번한 대만에서 매출 신고를 하지 않는다면 세금을 부과할 수 없을 터인데 영수증이 복권 역할을 한다면 소비자들은 자연스럽게 영수증을 요구할 것이고 업주들은 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전체 복권 당첨금액으로 지급해야 하는 예산이 앞서 얘기한 대로 약 6,400억원이나 되는데 대만 정부는 그 금액을 훨씬 초과하는 세수가 걷히는 것으로 판단하는 듯하다. 그러니 이러한 제도를 운영하는 것 아니겠는가. 실제 1950년 제도가 제정된 이후 당시 세수가 76%나 증가했다고 한다.
통일영수증과 영수증 복권제도의 역사는 생각보다 깊다.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물러난 이듬해인 1950년 12월 12일 통일 영수증 및 복권 관련 잠정법령이 제정됐고 1951년 시작됐다. 1982년에는 통일영수증 복권 법령에서 ‘잠정’라는 꼬리표를 떼어냈고 2000년대부터는 점차 전자영수증이 종이영수증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2013년 기준으로 대만의 종이 영수증 발급량은 80억장에 달했는데 전자영수증을 전면 시행하면 8만 그루의 나무 벌목을 할 필요가 없고 3,200톤의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고 예측되었단다.
아 그리고 영수증 복권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가 생각보다 많았다. 브라질, 칠레, 이탈리아 등이 시행하고 있단다. 우리나라에서도 시행하면 괜찮겠네 싶다가도 우리나라는 현금보다 카드 사용률이 월등히 높으니 사실 이러한 영수증 복권제도를 시행할 유인이 적긴 할 듯하다. 현금영수증도 요구하면 받을 수 있으니. 그럼에도 우리나라도 한때 2000년대에 영수증 복권제도를 시행한 적이 있었다니 신기하다. 무슨 이유에선가 단기간에 종료됐지만 말이다.
아무튼 설 지나고 당첨금액 찾으러 지정 은행을 방문했다. 짜이쥐 상에서 계좌 등록을 해놓으면 자동 입금이 가능하지만 개인정보 입력에 계속 오류가 뜨는지라 오프라인상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허나 은행에서는 세븐일레븐으로 가란다. NTD1,000 이하의 소액은 세븐일레븐 등 편의점에서 찾는 게 편하단다.
처음 당첨되었는지라 세븐에서도 헤매다 보니 점원이 친절하게 도와준다. 공과금 납부 등이 가능한 종합서비스 키오스크에서 개인 핸드폰 번호로 당첨 내용 확인 후 증빙 자료를 출력했다. 그 자료에 개인 정보 기입한 후 신분증과 함께 제시하자 당첨금액을 축하한다는 인사와 함께 전해 받았다.
1,200원을 받는 지난한 과정이었으나 그래도 꽁돈이니 기분이 괜찮다. 다음에는 은행에서만 수령 가능한 당첨금액 행운이 찾아오면 좋겠다는 가당찮은 생각도 해본다.
하여간 올 한해 출발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