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관광 22개 장면 중 열 번째] ‘관광 무기화’에 대한 대응?
‘북중 우호의해’인 올해 북한과 중국관계가 이상하다. 북중 수교 75주년으로 북한이 중시하는 정주년인데 인적교류가 오히려 예년만 못하다. 인적교류의 양과 질은 소원함과 밀접함을 말해주는 일종의 징표로 거론된다.
올해 4월 평양에서 개최된 북중 우호의 해 개막식에 중국 서열 3위 자오러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참석하긴 했지만 이후 여타 고위급 교류가 이어지진 않고 있다. 오히려 예년이라면 응당 있었을 법한 인적 왕래가 없어 뉴스가 되고 있다.
하다못해 수교 75주년을 맞이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서로 교환한 축전의 형식과 내용도 70주년이었던 5년 전과 비교해 다소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2018년 양국 정상회담을 기념해 랴오닝성 다롄에 설치됐던 두 정상의 발자국 기념물도 치워졌다는 점도 이상기류의 방증으로 거론된다.
양국간의 구체적인 파열음은 노동자 파견 문제에서 들려온다. 북한에게 노동자 해외 파견은 외화수입을 창출하는 중요 창구인데 중국이 원칙을 내세우며 북한 노동자의 귀국을 종용하고 있다는 언론보도다. 북한 노동자 10만여 명이 40여 개국에 파견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국가 가운데 하나가 중국이다.
급기야 김정은 위원장은 재중 북한 외교관들에게 ‘중국과 마찰을 두려워하지 말고 업무를 수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전언이다.
북중관계의 소원함은 북러관계의 밀접함과 대비된다. 소원해진 북중관계의 배경에는 밀접해진 북러관계가 놓여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북한에 대한 ‘그립감’을 유지하려 하는데 북한이 이에 ‘반발’하면서 파열음이 노출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북중 관광교류가 여전히 재개되지 않고 러시아와의 관광만 재개한 데는 이러한 맥락이 놓여 있을 법하다.
북한은 전통적으로 어느 한 국가에 매몰되는 것을 경계해 왔다. 혈맹이라 표현하는 중국에도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중국에 대한 경계의 눈초리는 더욱 삼엄하기까지 하다. 그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8월 종파 사건이라는 북한 근현대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사건도 자리한다.
8월 종파사건이란 1956년 북한에서 발생한 권력투쟁 사건이다. 북한 역사상 사실상 유일하게 김일성 권력체계에 직접적으로 도전했던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북한 사회의 방향성을 결정적으로 규정한 사건이다. 표면적으로는 김일성 개인숭배에 대한 비판으로 촉발된 권력투쟁으로, 그 결과 북한 권력의 한 축을 형성하던 연안파와 소련파는 정치지형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그 근원에는 한국전쟁 종전 이후 부족한 자원 배분을 둘러싼 갈등이 내재해 있었으며 성장모델을 어떤 식으로 구성해야 할지, 축적전략을 어떻게 정립해야 할지 등에 대한 첨예한 대립이 있었다.
8월 종파사건 당시 중국과 소련 또한 북한 국내정치에 개입하는 양태를 보였다. 그 개입을 겪고 난 뒤 북한은 강대국의 북한 내 영향력 확장에 근본적인 위기감과 경계심을 갖게 됐을 것이다. 그 후 1962년 북한은 중국 및 소련과 각각 안보와 자율성 관여를 맞교환하는 비대칭 동맹을 맺으면서도 내부적으로 양국과의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과 북한의 전통적인 외교 맥락을 고려해 본다면 중국 관광객의 급증은 일견 반가우면서도 일견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관광분야에서는 특히나 중국의 관광 무기화 모습을 목도했기에 더욱 그러하리라.
중국의 관광 무기화란 자국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관광을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나라나 중국 관광객의 비중과 파이가 커지면 당연히 수용국 입장에서는 ‘유커’의 중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유커 규모의 파동은 수용국 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중국은 바로 이러한 ‘약한 고리’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사례는 다양하다. 우선 대만. 중국은 대만 정부 성향에 따라 자국민의 대만 관광을 확대하거나 축소 또는 금지하고 있다. 확대 국면은 친중 성향의 국민당 마잉주 정부가 집권했던 2008년에서 2016년까지이고, 관광 규모가 축소되거나 경색국면인 시기는 코로나 이전까지만 본다면 민진당 차이잉원 정부가 집권했던 2016년에서 2019년까지다. 구체적인 수치를 보자면 2008년 방대만 중국관광객 규모는 329,204명이었고 지속 증가해서 2015년에는 4,184,102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후 지속 감소해서 2019년에는 2,714,065명으로 35.1%나 감소했다. 전형적인 관광 무기화 양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대표사례 가운데 하나다. 우리나라의 사드 배치에 반발하면서 중국은 2016년 하반기부터 일부 방한관광 제한 조치를 취했고 2017년 3월 15일부터는 방한단체관광을 전면 중단했다. 아울러 크루즈관광, 온라인 여행사 모객 중단 등의 조치도 내렸다. 이로 인해 2017년 방한 중국관광객 규모는 전년 대비 48.3% 격감했다.
일본도 중국의 관광 무기화를 경험한 바 있다. 중국과 댜오위다오 문제로 갈등을 빚으면서 중국은 방일 관광 및 광고 등을 제한했다. 이로 인해 2012년 9월부터 2013년 8월까지 중국인의 방일관광 규모는 전년 동기대비 31% 급감했다.
사실 중국의 관광 무기화 역사에서 가장 빈번히 가장 오래된 대상은 북한이다. 중국 관광객 비중이 절대적인 북한에게는 그 영향이 더 클 수밖에 없기에 중국은 전가의 보도처럼 관광 중단과 재개를 휘둘러 왔다. 2005년 북한 내 중국인의 도박문제, 북한의 1차(2006년), 3차(2013년) 핵실험 이후 일시적으로 관광을 중단하며 이를 지렛대로 삼아 북한을 압박하곤 했다.
북한은 그럼 좁게는 중국의 관광 무기화, 넓게는 중국 관광객 비중 확대에 어떻게 대응해 왔을까. 주요 대응 전략에는 바로 다원화 전략이 위치한다. 북한 외래관광 유치기본전략이라 할 만하다. 다원화 전략이란 기본적으로 관광객 유치시장 확대 및 다변화, 즉 관광선 확대 전략이다.
북한의 다원화 전략은 시기별 강조점에 차이를 보인다. 80년대 처음 외래관광 유치에 나서기 시작하면서는 외래관광 유치토대 마련을 위한 다원화였다면 90년대에는 대만 등 동남아 지역에 대한 전략적 확대가, 2000년대에는 아리랑 축전을 계기로 비교적 서구 관광객에 대한 인지도 향상 노력이 증대됐다. 200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는 중국 관광객 확대 전략 및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동남아 지역에 대한 강조에 방점이 찍혀 있는 모습을 보였다.
김정은 시대에는 특히나 서구관광시장에 대한 개방폭을 확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중국관광시장의 큰 폭의 확대에 대한 일련의 반작용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 보면 그간 서구인들에게 개방하지 않던 지역을 새로 개방하거나 신규 관광형태를 허용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또한 코로나 이후 첫 번째 유일한 관광 개방 대상국인 러시아 관광시장에 대해서도 2010년대에도 이미 상당한 관심을 표명한 바 있다. 2014년 초 김영일 국가관광총국 선전국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양국은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여전히 북한을 찾는 러시아 관광객수는 적다”면서 “중국에 편중된 관광수요를 다변화하기 위한 것이 러시아 관광상품을 개발하는 목적”이라고 밝혀 북한의 의도를 그대로 내보이기도 했다.
한 나라의 관광유치전략은 고정불변일 수 없다. 시기와 상황에 맞게 유동적으로 변화된다. 그런 점에서 북한 또한 다원화전략을 기본 골간으로 하되 다원화전략의 세부 내용과 방점은 변화해 왔다.
과연 이러한 관광 다원화 전략이 코로나 이후 관광이 본격 재개된다면 어떤 양상을 보일까. 이는 북한의 외교경제 전략과도 맞물릴 것이다. 북한에 있어 외래관광은 국제관계전략과 경제전략의 하위 부문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