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관광 22개 장면 중 아홉 번째]
급박하고 전격적이었다. 북한도 어느 나라와 마찬가지였다. 코로나19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시점, 자국에 코로나19가 퍼지는 걸 막기 위한 각국의 조치 말이다. 당시 ‘우한 폐렴’으로 통칭되던 코로나19로 글로벌 세상이 순식간에 국가 단위로 ‘단절’되던 전대미문의 경험을 한 것이 불과 2년 전이었는데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다. 그래도 복기해 보면 이렇다.
2019년 11월 17일 첫 확진자가 보고된 후 12월말부터 중국 언론과 SNS 웨이보 등을 통해 우한에서 원인 불명 폐렴이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져 나갔다. 국내 언론을 통해서도 12월말 관련 보도를 접할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팬데믹이 선언되고, 전세계에서 7백만명 이상이 사망하고, 7억7천6백만명 이상이 감염되고, 몇 년에 걸쳐 국가간 이동이 봉쇄되고, 마스크를 필수를 쓰고 다니고, 백신을 맞아야 하고, 주식시장은 대공황급으로 붕괴하고, 세계경제성장률은 –3.4%로 역성장하고, 국제관광규모는 전년도 15억명에서 3.8억명으로 줄어들지 상상할 수 없었다.
이후 중국 이외 다른 나라에서도 의심환자가 잇따르면서 세계 각국은 긴장하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도 1월 20일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 2020년 1월 25일 설날을 앞두고 중국 관광객들은 최대 명절인 만큼 국내는 물론 해외로 물밀 듯이 여행을 나가고 있었기에 각국은 앞 다투어 검역을 강화했다.
북한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가장 전격적이고 강력한 선제조치를 취했다. 1월 22일부터 모든 외국인 관광객의 입국을 금지했다. 조선국제여행사가 중국 여행사들에게 이미 통보했고, 고려투어스나 영파이어니어투어스 등 서방 여행사들을 통해 확인됐다. 춘절을 앞둔 시점이기에 당연히 중국인 관광객이 핵심 타깃이었다. 중국인 관광객의 비중이 절대적인 북한으로서는 춘절이라는 ‘대목 장사’를 포기하는 선택을 한 셈이다.
조치의 일환으로 북중간 항공노선 운항도 중단했다. 북한과 중국을 연결하는 항공사는 북한 고려항공과 중국 에어차이나인데 평양-베이징 노선을 모두 중단했으며 평양-단둥(베이징), 만포-지린성 지안 구간을 연결하는 철도 노선도 모두 중단했다.
의료 시스템과 의약품 등이 부족한 북한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을 한 셈이다. 물론 코로나19의 파급력에 전세계가 긴장하고 있었지만 그 시점만 해도 아직 전면 통제를 선언한 국가는 없었는데 북한은 원초적인 조치로 일단 급한 불은 막았다.
북한이 얼마나 위기감과 경각심을 느끼는지는 언론보도건수로 간접 확인할 수 있다. 2020년 1월부터 2021년 9월까지 북한 노동신문의 코로나19 관련 보도건수는 다음과 같다.
이 보도건수는 제목 또는 내용에 ‘신형코로나비루스’란 단어가 포함된 기사만이다. 북한에서 코로나19를 표현하는 단어는 신형코로나비루스감염증이지만 일부 기사에서는 ‘악성 전염병’, ‘악성 비루스 전염병’, ‘대류행 전염병’ 등으로도 표현하기에 상기 기사 외에도 관련 기사는 더 많을 개연성이 있으나 ‘신형코로나비루스’란 단어만으로 국한해서 정리해도 2020년에는 2,271건, 2021년 10월까지만 해도 1,059건에 이른다. 어느 한 주제에 대해 이렇게 빈번하고 자세한 보도를 한 사례는 전례를 찾기 힘들다. 북한에 있어 코로나19를 막기 위한 사업은 “국가존망과 관련된 중대한 정치적문제”인 것이다.
북한은 실제로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최대비상체제로 전환했고 상황에 따라 완화하기도 하고 강화하기도 했다. 격리조치도 어느 나라 못지않게 엄격했다. 입국자 대상 격리기간은 30일이고 접촉자의 격리기간은 40일이었다. 수입물품도 예외가 아니었다. ‘격폐된 장소에서 10일 동안 자연상태로 방치’하면서 검사와 소독을 진행했다.
이러면서 한동안 회자됐던 장면이 연출됐다. 국경이 봉쇄되면서 북한 주재 타국 외교관들이 본국으로 가는 것도 난감했다. 이러다 보니 러시아 외교관과 가족 8명이 북한에서 러시아로 넘어가는 두만강 철교를 건너기 위해 철길수레를 1km 이상 직접 밀며 건넜던 것이다. 이 사진을 처음 보며 어느 시대인가 싶었다. 코로나19가 문명을 되돌렸다. 날씨는 좋았다.
한편 북한이 글로벌 전염병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관광을 중단한 사례는 과거에도 빈번하게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2003년 사스, 2014년 에볼라바이러스의 경우다. 당시 4~5개월 대외관광을 중단한 바 있다. 물론 국경을 아예 봉쇄한 수준은 아니었다.
사스는 아시아 중심으로 퍼졌기에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인 사스로 당시 774명이 사망했다. 다만 에볼라바이러스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망자가 11,000명이 넘고, 치사율이 매우 높으며 예방법이나 치료법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아 경각심을 느낄 수는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 일원에서 주로 발병하는 질병이다. 에볼라로 인해 관광을 통제하거나 국경을 봉쇄한 아시아 지역 국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시 코로나19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코로나19 봉쇄를 극적으로 진행한 만큼 코로나19 환자 공개와 확산 속도도 전격적이었다. 의아하긴 했었다. 발원국인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아무리 국경을 봉쇄한다 하더라도 밀무역 등이 없을 수 없을 터인데 확진자가 0라니.
북한의 코로나19 상황에 대한 외부적 시각에서의 검증은 불가능하지만 북한은 WHO를 통해 확진자 수는 0명이라고 보고해 왔다. 검사는 진행해 왔다. 북한 보건성은 2021년 10월 11일에는 검사자수가 42,095명이라고 밝혔다. 의심자 대상으로 코로나19 진단검사(RT-PCR)를 열흘 간격으로 2차례 실시했단다. 참고로 2021년 10월 기준으로 전세계 237개 국가 및 지역 가운데 북한을 비롯해 투르크메니스탄, 통가 등 12개 국가 및 지역이 확진자가 0명이라고 보고되었다.
그러던 북한은 2022년 5월 12일 처음으로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최중대 비상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국가방역조치는 다시 ‘최대비상방역체계’로 전환됐다. 코로나19 확산을, 국경봉쇄로 맞섰던 북한도 막을 수는 없었을 게다.
허나 확산속도에 놀랐다. 첫 확진자 발표 이튿날인 5월 13일 북한은 격리자가 18만여명을 넘었고 사망자도 6명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발열 증상자는 이미 4월말부터 전국적으로 폭발적으로 확대되어 35만명에 달했다 한다. 신규 확진자는 가히 폭발적이다. 12일 1만명, 13일 17만명, 14일 29만명, 15일 39만명, 16일 26만여명, 17일 23만명, 18일 26만명대였다.
급속한 확산만큼 안정화 단계도 빨랐다. 북한 통계에 의하면 말이다. 첫 환자 발생 인정 10일도 안 돼 21일부터는 20만명 이하로 신규 확진자수가 내려온 이후 계속해서 감소하다 26일부터는 신규 확진자수가 10만명 이하로 떨어졌다. 북한의 통계를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지는 차치하고 북한 정부로서는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위기를 넘어서게 된 것이다.
이후 북한이 다시 외래관광을 재개하는 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2024년 2월이었으니 말이다. 북한으로서는 돌다리를 두드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