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관광 22개 장면 중 여덟 번째] 국제관계 따라 변하는 관광교류흐름
국제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관광교류 흐름
자그마한 부스 1개. 북적북적한 다른 부스와 달리 다소 여유 있는 느낌이다. 부스에 앉아 있는 사람은 두어 명이고 대만 사람 특유의 친절한 미소로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관광 상품을 안내하고 있다.
올해 타이베이에서 열린 타이베이국제관광박람회(TTE) 한쪽에 자리한 북한관광상품 판매부스 모습이다. 해외 관광박람회에 참가하면 ‘습관적으로’ 북한 관광상품을 홍보하거나 판촉하는 부스가 있는지 둘러본다. 북한은 아직 관광을 본격 재개하지 않았고 대만인의 방북관광 규모가 크지 않아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있다.
90년대에는 북한 당국이 수차례(1993년과 1996년 등)에 걸쳐 TTE에 직접 참가했기에 북한 당국이 이번에 나왔나? 하고 궁금해 했지만 북한 당국에서 직접 나온 것은 아니다. 북한관광상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대만 여행사 A에서 꾸렸다.
부스를 운영하는 담당자 B씨와 이런저런 얘기 나누었다.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있으니 담당자도 흥미로웠나 보다. 박람회 기간 4일 동안 매일 만나 북한관광 이야기를 들었다.
인솔자 역할이나 여행 등으로 북한을 수십 번 다녀왔다는 B씨. 각종 재미난 사진 자료를 이것저것 꺼내어 보여준다. 북한 입국 시 필요한 관광증도 있고 평양 양각도국제호텔의 방키도 있다. 호텔 키는 당연히 두고 왔어야 했는데 깜박 잊고 가져왔단다. 양각도 호텔은 고려호텔과 함께 평양에서 제일 좋은 호텔 가운데 하나다.
2019년도 평양에서 중국 단동 구간 국제열차표도 보여준다. 티켓 뒷면에는 각종 안내문구가 있는데 수하물 제한용량이 35kg이며 침대칸을 이용하려면 별도 티켓을 구매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A여행사의 북한 파트너 여행사는 평양고려국제여행사. 고려여행사는 북한국가관광총국 홈페이지에도 소개돼 있는 여행사다. 2015년 설립됐고 마식령스키장의 스키상품은 이 여행사의 대표 운영 상품 가운데 하나다. B씨는 A여행사가 고려여행사로부터 대만지역 모객 권한을 위임받은 증서를 보여준다. 아울러 이 여행사는 북한 내에서의 대만관광객 생명과 안전, 합법적 권리를 보장한다는 고려여행사의 보장문건도 받아두었다. B씨는 고려여행사로부터 받은 북한관광을 다녀왔다는 기념증도 참고로 보여줬다.
B씨는 올여름 여행사들에게 소문으로 돌고 있던 마카오발 평양 전세기 상품은 가짜라고 확인해 주었다. 대만 여행업계에서는 온라인상으로 마카오발 북한여행 홍보물이 돌고 있었는데 이를 궁금해 하니 선양 지역 지인을 통해 진위 여부를 밝혀 준 것이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고 B씨는 내게 북한 지폐를 기념품으로 건넨다. 이후 명절 때면 간혹 안부 인사를 주고받고 있다. 아 그리고 이 여행사가 금강산 홍보물로 보여준 것은 한국관광공사의 꽤 오래된, 2000년대 금강산관광 홍보물이었다. 우리나라 홍보물이 돌고 돌아 북한관광 홍보물로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의 외래관광유치에서 중국이 물론 압도적 규정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북한은 대만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2010년대에도 북한 조선국제여행사 수장인 조성규 사장(국가관광총국 부국장)이 직접 민스뉴스채널(民視新聞台)이라는 대만 유력 방송에 출연해 특별대담을 하는 등 북한관광을 적극 홍보한 바 있다.
2011년과 2012년 연달아 출연했는데 시점이 묘하다. 중국인의 북한 단체관광이 2010년 이후 공식화 되면서 2011년과 2012년에는 중국인의 방문관광객수가 큰 폭으로 증가했는데 그 시점에 대만을 방문해 대만관광객 유치에 나선 것이다.
조성규 부국장은 “2010년 중국은 중국공민의 출국 목적지로 북한을 허용했다. 이후에 사실상 중국 대상 마케팅 활동을 펼치지 않아도 됐다. 왜냐하면 중국시장은 이미 매우 크기 때문이다. 광고를 하지 않고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많은 중국 여행사들이 북한관광 광고와 판촉을 했다.”면서 2010년대 초반 대만 시장에 관심을 두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대만 시장은 90년대 북한 외래관광에 있어 주요시장이었으나 2000년대를 거치며 다소 소원해졌는데 이를 다시 회복하려 한 것이다.
또한 탈북자 C씨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움직임을 방북 유치시장의 다원화로 설명했다. 북한의 외교는 전통적으로 어느 한 국가에 ‘올인’하는 것을 경계해 왔다. 관광에서 현실적으로 중국 시장의 압도적 점유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나 이를 탈피하기 위한 고민을 언제나 하고 있던 것이다.
2010년대 북한의 대만에 대한 관심은 계속 이어졌다. 2018년 7월에는 북한의 조선민족유산국제여행사가 대만 여행업계를 대상으로 타이베이에서 북한관광설명회를 개최했다. 북한이 이렇게 해외에서 적극적으로 관광설명회를 여는 것은 꽤 이례적이다. 이 자리에서는 대만 촹신(創新)여행사를 대만 모객 대행 여행사로 지정했다. 2015년 설립된 조선민족유산국제여행사는 고려여행사와 마찬가지로 국가관광총국 홈페이지에 소개돼 있는 여행사로 북한과 중국 장쑤성의 여행사가 합작으로 설립한 여행사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대만 여행프로그램의 방북촬영으로도 이어졌다. 대만 GTV 방송사의 ‘세계 넘버원’(世界第一等)이란 프로그램은 2019년 방북 여행에 나서 촬영분을 그해 10월 방영했다. 해외 방송사의 북한관광 취재는 북한 당국의 승인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북한 당국이 대만 관광객 유치에 적극 나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지점이다. 대만 시청자들의 호응도 뜨거웠다. 북한편 프로그램의 유튜브상 조회수는 10~40만회로 다른 편에 비해 월등히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대만인의 방북관광은 이와 같이 코로나19 이전까지 의외로 활발한 양상을 띄었다. 그러나 대만 정부는 2017년 9월 북핵 및 미사일 문제로 취해진 UN의 대북제재에 동참하는 취지에서 북한과의 수출입을 전면금지했다. 위에서의 북한-대만 관광교류는 대만 정부 당국의 무역봉쇄조치 이후에 이뤄지는 모습이라는 점에서 대만은 정부차원의 조치와 민간교류를 분리해서 대응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실제 그럼 어느 정도 규모의 대만인이 연간 북한 관광에 나섰을까?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다. 다만 조성규 사장이 대만 언론과의 2012년 인터뷰에서 연간 2천명 정도의 대만인이 북한관광에 나선다고 언급한 바 있다.
관광루트는 어떻게 될까? 대만의 유력 여행사 가운데 하나인 동남여행사가 출시한 북한관광 전세기 상품을 보면, 관광코스는 여타 북한관광 상품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8일 상품으로 우선 중국 선양으로 이동해서 북한 고려항공을 탑승한다. 3일차부터 6일차까지 3박4일 동안 북한에 체류하면서 평양(인민대학습당, 김일성 만경대 생가, 평양지하철 체험, 주체사상탑, 개선문 등), 개성(판문점, 38선 등), 금강산을 둘러본다. 상품가는 NTD10,000으로 지금 환율로 하면 약 42만원 정도다.
한편 대만과 북한간의 관광교류의 역사는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대의 양국의 접촉과 타진은 어찌 보면 1990년대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다. 90년대 대만은 북한의 주요 홍보마케팅 대상국이었다. 당시 연간 1,500명 정도의 대만 관광객이 북한을 방문했다.
90년대 이렇게 대만과 북한이 나름 밀착하는 모양새를 보인 이유는 일종의 ‘동병상련’ 때문이었다. 1992년 8월 24일 우리나라는 중국과 수교를 하며 대만과는 단교했다. 한중수교는 대만과 북한 모두에게 ‘충격과 배신’으로 느껴졌을 터이다. 이러한 동일한 감정은 양측이 가까워질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대만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던 수교국(한국)을 놓친 가운데 ‘하나의 중국 원칙’에서 조금이라도 움직일 여지를 만들어야 했고 북한은 중국과 한국을 조금이라도 견제할 카드가 필요했을 것이다.
당장 1992년 10월과 12월 양측간 고위급 대표단이 처음으로 상호 방문했다. 이후 지속적으로 상호간에 투자와 경제교류 논의가 이어졌으며 1997년에는 대만의 대규모 경제사절단이 북한을 방문했는데 원동항공, 국민당중앙투자공사, 대만전력공사, 대만 중국석유공사 등을 망라했다.
이러한 관계개선의 일환으로 관광은 좋은 소재였다. 1995년 4월 평양축전과 연계해서 대만 국적 항공사인 중화항공은 평양행 전세기를 취항했다. 양측간 항로 개설이 이뤄진 것이다. 1996년에는 북한 조선국제여행사의 타이베이사무소가 정식 개설되어 관광 홍보와 비자발급 업무를 담당했다. 또한 앞서 언급한 대로 대만의 대표 관광박람회에 북한 당국자들이 직접 참가해 북한 관광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의 기저에는 앞서 언급했던 조성규 부국장이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0년대 대만 TTE 박람회와 ITF 박람회에 참가해 실무 차원의 홍보와 판촉에 나선 것이 조성규 사장이었다. 90년대 대만 현지를 누비던 조 부국장은 대만 언론과의 인터뷰는 물론 전세기 유치 등을 위해 2010년대에도 여전히 대만을 누볐다.
다만 그는 2013년 12월 대만 남부 가오슝의 ‘2013 아시아 도시 관광 회의’ 참석을 예정했다가 돌연 방문을 취소했다.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숙청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소문에 의하면 대만 회의 참석차 중국 선양까지는 나왔으나 선양에 도착하자마자 공항에서 다시 북한으로 귀국했다 한다. 이후 소식은 없다.
한편 90년대 양측간의 밀월 관계는 결국 대표부 설치 등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대만은 대표부 설치를 제안하며 북한보다 더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서 투자유치에 보다 방점을 찍고 한 발 더 나아간 관계개선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가운데 1997년 대만전력회사의 핵폐기물을 북한 황해북도 평산에 매립해 처리하는 문제로 양측이 협의를 진행했으나 국제사회의 강한 반대 여론 등에 부딪쳐 결국 추진되지는 못했다. 그 결과 양측 관계는 점차 소원해졌다.
국제관계에서는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친구도 없다고 했나. 대만과 북한의 관계도 그렇다. 1990년대 한중수교라는 동일한 ‘위협’ 속에 북한과 대만은 관계개선 움직임을 보였고 관광교류도 그에 발맞춰 강화됐다. 이제 2020년대다. 20년대 어떤 파고가 또 어떻게 동북아에 영향을 미칠지에 따라 대만과 북한 간의 관계가 변화하고 있다는 언론보도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