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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관광 콘텐츠는 변화하고 있나

[북한관광 21개 장면 중 열두 번째] 쇼핑&식도락, 위락 콘텐츠 확충

by KHGXING

어느 분야에서건 콘텐츠는 중요하다. 관광 분야라고 다를 바 없다. 콘텐츠가 매력적이어야 관광을 갈 터이다.


관광에서 콘텐츠라 한다면 관광 목적지에서 누리는 일체라고 할 만하다. 체험하는 것, 먹는 것, 보는 것, 방문하는 곳, 머무는 곳 등이 다 포함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분위기 등도 콘텐츠가 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A가 서울로 여행을 왔다 해보자. 방문하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촌 골목, 부암동 카페 등이 다 관광 콘텐츠다. 토속촌 삼계탕과 통인시장 기름 떡볶이도 관광 콘텐츠임이 분명하다. 김치 만들기 체험을 한다면 이 또한 관광 콘텐츠이고 청와대 뒷길로 해서 북한산으로 넘어가는 등산을 한다면 물론 관광 콘텐츠다. 롯데월드타워도 관광콘텐츠고 한강 싸이클링을 한다면 그것도, 대학로에서 보는 ‘당신만이’ 공연도 훌륭한 관광콘텐츠다. 에어비앤비 투숙을 한다면 이것도 관광콘텐츠라 일컬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관광콘텐츠는 얼마나 다양해지고 변화하고 있을까.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2020년대 비교하면 그 변화가 눈에 보일까. 글쎄, 80년대와 90년대를 비교하면 그 변화가 확연히 다가오지 않을 수 있지만 80년대와 2020년대를 비교하면 정말 달라졌다고 느끼지 않을까. 특히나 K-culture 하나하나가, 라이프스타일 자체가 관광 콘텐츠가 되고 있기에 그 다양성과 폭은 이전 시대와는 완연한 차이가 날 것 같다.


아울러 관광콘텐츠는 그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리라. 그 사회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는 그대로일 수 있지만 사회가 역동적일수록 사회의 변화와 새로움은 관광콘텐츠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콘텐츠는 다양해질 것이고, 같은 콘텐츠더라도 보여지는 방식이 바뀌어 새로운 콘텐츠로 각색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북한의 관광콘텐츠는 변하고 있을까. 변하고 있다면 얼마의 깊이로 어느 방향으로 변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 변화는 북한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편의상 북한 관광콘텐츠를 이렇게 분류해보자. 자연 관광콘텐츠, 문화 관광콘텐츠, 체제선전 관광콘텐츠, 사회시스템 관광콘텐츠, 예술 및 기타 사회 관광콘텐츠, 쇼핑 및 식도락 관광콘텐츠, 기타 산업 관광콘텐츠, 위락 관광콘텐츠. 이 콘텐츠들이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평양 지역에서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살펴봤다. 그래프를 통해 평양 관광콘텐츠의 시기별 비중의 변화를 보면 다음과 같다.


평양 관광콘텐츠의 시기별 비중 변화.png 북한 평양 관광콘텐츠의 시기별 비중 변화


평양지역 관광콘텐츠에서 체제선전 관광콘텐츠는 기본적으로 어느 시기에서나 핵심적인 콘텐츠로 활용됐고 제일 큰 비중을 차지했다. 외래관광이 본격 시작되었던 1980년대 출발선 자체가 달랐던 체제선전 콘텐츠는 각 시기별로 지속적으로 보완되고 보충되었다.


1990년대에는 당창건기념탑,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 푸에블로호, 2000년대에는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 김일성화김정일화전시관, 2010년대에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등이 새로 들어서거나 개보수가 진행되었다. 그에 앞서 주체사상탑, 만수대대기념비, 천리마동상, 개선문, 만경대생가, 대성산혁명열사릉 등은 기본적으로 80년대부터 관광콘텐츠로 활용되었다. 체제선전 관광콘텐츠는 실제 어느 시기 관광상품코스에서나 제일 많은 시간이 할애되어 방문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평양 시내 모습(수정).png 평양 시내 모습


큰 변동이 없는 평양 관광콘텐츠의 시기별 비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2010년대에 나타난다. 쇼핑 및 식도락, 위락, 사회시스템 등 3개 콘텐츠의 비중 증가가 확연하다. 우선 쇼핑 및 식도락 관광콘텐츠는 80년대만 하더라도 비중이 크지 않았다. 관광코스에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고 단순히 식사 정도 해결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러다 90년대 배식당 ‘평양1호’. 대성수출품전시장이 들어섰고 2000년대에는 통일거리시장과 월향전시관이 새로 쇼핑 및 식도락 콘텐츠로 등장했다. 물론 기본적으로 관광을 위한 시설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북한 주민을 위한 시설이라는 기본 기능 이외에 외래객들도 방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쇼핑 및 식도락 관광콘텐츠의 변화로 평가할 수 있다. 점차 비중을 넓혀 오던 쇼핑 및 식도락 콘텐츠의 큰 폭의 비중 증대는 2010년대 들어와 이뤄졌다. 최고급 복합상업시설과 식당들이 들어서 이제는 평양 관광에서 당당하게 주요한 관광코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위락 관광콘텐츠도 80년대에는 그 비중이 중하 정도에 머물렀으나 90년대 들어 평양볼링관과 문수유희장 등이 들어서면서 서서히 그 비중을 늘려왔다. 그러다 2010년대 들어 큰 폭의 비중 증가 추세를 보였다. 각종 유희장이 리모델링 및 확장됐으며 마라톤, 비행기, 승마, 종합테마수영장 등 다양한 시설과 아이템으로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이런 관광콘텐츠가 북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여부는 차치하고 이런 관광자원의 변화는 충분히 적극적으로 평가할 가치가 있다.


사회시스템 관광콘텐츠도 2010년대 주목되는 변화를 보인 콘텐츠 가운데 하나다. 사회시스템 관광자원은 80년대에도 그 비중이 적지는 않았다. 관광상품 코스에는 만수대의사당이나 평양학생소년궁전, 인민대학습당, 평양지하철, 김일성종합대학 등의 사회시스템 관광콘텐츠 방문 및 체험이 적지 않게 포함돼 있어 체제선전 관광콘텐츠 다음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회시스템 관광콘텐츠는 일종의 체제선전효과도 노릴 수 있어 이러한 양태는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다만 새로운 사회시스템 콘텐츠가 추가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2010년 들어서야 평양국제축구학교, 장천남새전업협동농장 등이 새로 등장했고 평양 지하철 개방 폭이 확대됐다.


시기별로 예술 및 기타 관광콘텐츠의 변화 폭도 비교적 작지는 않다. 80년대 비중은 사회시스템 콘텐츠와 마찬가지로 체제선전 관광콘텐츠 다음의 비중을 갖고 있었다. 각종 예술 관련 시설물은 물론이고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 등 그곳에서 이뤄지는 각종 공연은 북한이 관광상품 코스에 적극 포함시켜왔던 주요 콘텐츠였다. 2000년대 들어 그 비중이 크게 높아진 것은 아리랑 축전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아리랑축전은 북한이 2000년대 핵심적으로 강조한 관광콘텐츠 가운데 하나였다.


평양지역의 관광자원에서 자연 및 문화 관광콘텐츠는 비교적 낮은 비중을 보여왔다. 자연 관광콘텐츠는 북한 전체 관광자원 측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평양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각종 도시 인프라에 밀리면서 그 비중은 다른 관광콘텐츠에 비해 전반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 아울러 문화재 등을 중심으로 한 문화 관광콘텐츠 또한 북한이 적극적으로 강조하고 있지는 않아 그 비중은 비교적 낮은 편이다. 다만 90년대 당군릉이나 동명왕릉이 조성되면서 비중이 다소 증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밖에 기타 산업 관광콘텐츠는 80년대 이후 크게 변화되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호텔 시설 등은 새로 건축하지 않고 기존 시설을 계속해서 활용하고 있으며 산업적 측면에서 새로운 시설이 조성되지 않고 있어 그 비중의 변화는 크지 않다.


평양 경비행기 관광.png
항공기 매니아 관광.png
평양 능라인민유원지 모습.png
(좌) 평양 경비행기 관광콘텐츠, (가운데) 항공기 매니아 관광, (우) 평양 능라유원지 모습

그렇다면 이러한 관광콘텐츠 변화 배경으로는 무엇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


2010년대 평양 관광콘텐츠의 변화는 무엇보다도 정치부문 변화와의 관계를 제외하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북한이 아무리 권력세습 국가라 하더라도 20대에 권력을 물려받은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권력 승계의 정당성, 당위성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어느 국가와 다르지 않다.


아울러 김정은 식의 미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압축적인 권력승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사전에 차단해야 했다. 변화와 파격행보를 통해 자신만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구축하고자 했고 새로운 이미지를 연출하려 했다. ‘스킨십 정치’, ‘유희장 정치’, ‘애민 정치’, ‘친서민적인 이미지 구축’ 등은 모두 이러한 새로운 비전 제시, 새로운 이미지 연출, 자신만의 카리스마 리더십 구축의 일환으로 등장한 용어다.


2010년대 북한의 관광자원이 위락, 쇼핑 및 식도락 콘텐츠 중심으로 크게 확충된 것은 이러한 김정은 위원장의 권력 정당화를 위한 노력의 흐름 속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분석된다.


물론 이러한 인프라를 갖추었다고 해서 관광자원으로 적극 활용할 것이냐는 다른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김 위원장에게 있어 이러한 인프라를 순전히 국내 치적용 선전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외래객 유치용으로까지 확장 활용한다면 권력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관광콘텐츠화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일종의 북한식 ‘관광정치’인 셈이다. 중국인과 서구인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평양에서 김 위원장이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인프라의 관광에 나선다면 북한 인민으로서는 새로운 ‘변화’를 눈앞에서 확인하는 셈이 된다. 해외 문물을 체험한 젊은 지도자가 불러오는 북한의 ‘참신한 변화’가 구체적인 형태로 각인되는 것이다.


이러한 외래객 유치와 새로운 관광콘텐츠 구축은 체제 안정과 체제선전차원에서 효과적이기도 하다. 북한 주민들은 외래객이 찾아오는 모습을 통해 북한 체제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국제적인 고립에 처한 것이 아니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 ‘평양 시내를 돌아다니는’ 외국인은 다시 김정은 체제 안정에 기여하는 효과를 불러올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북한과 같은 통제사회에서 외래관광객 유치는 양날의 칼일 수 있지만 김정은 체제에서는 이러한 상황은 다소 옅어진 것으로 보인다. 임계점을 넘어서지만 않는다면 개방이 꼭 체제불안과 등치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쇼핑 및 식도락 관광콘텐츠와 위락 관광콘텐츠는 같은 관광자원 중에서도 더 많은 외화수입 창출이 가능하기에 다른 관광자원보다 강조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북한 주민들은 시장에서의 상업활동에 종사하고 있고 그러면서 ‘돈주’라고 불리는 신흥계층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받아 안기 위한 수단으로 새로운 관광자원이 적극 구축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신흥계층은 자본이 충분한 만큼 높은 생황 수준을 영위하려 하고 있는데 그들의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 관광콘텐츠의 변화는 북한 사회의 변화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통로가 되고 있다. 북한 관광콘텐츠의 변화는 주의 깊게 관찰해야 보이는 것일 수 있지만 단순히 관광차원에서만 의미있는 것이 아니라 북한 사회의 변화를 드러내 보여줄 수 있는 훌륭한 소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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