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선동자 Feb 15. 2020

남초 조직에서의 생존과 탈출

난 그곳에서 남자가 아닌 스님, 대마법사로 불려졌다.

난 야동을 처음 접했던 게 17살 즈음이다. 야동을 접했던 계기도 학창 시절 또래들이 졸음이 많았던 나에게 "너 맨날 밤마다 야동 보냐?" 하고 물어서 처음 듣게 됐고, "야동이 뭐야?"라고 물었다가 또래집단 사이에서 블랙리스트가 됐다. 순수한 척한다고, 혼자서 깨끗한 척 다 한다고, 봐 놓고도 모르는 척한다는 온갖 비난을 들어야 했다. 그래서 대체 야동이 뭔가 해서 인터넷에서 야동을 찾아서 보게 됐고, 처음으로 야동을 본 순간 나는 큰 충격에 빠졌다. 아무 죄 없는 여자를 잡아다가 패고 강간하는 모습을 보고는 무슨 범죄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처음으로 보게 된 야동 속에서 여자의 절박한 비명소리를 듣고는 큰 죄책감이 느껴졌고, 다시는 야동을 보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물론 야동을 처음 접하기 이전에 이성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니다. 좋아하는 또래 여학생도 있었고, 여자의 몸에 대해 궁금해서 누드사진 정도를 찾아본 게 전부였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학창 시절엔 그것 때문에 또래집단 사이에서 마법사, 스님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놀림거리가 되었고, 군대에서는 선임의 음담패설에 열렬한 리액션을 주지 않는다고 아다, 고자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내 두 번째 직장은 깊은 산속에 자리 잡은 아동복지센터였는데, 여기도 마찬가지로 마초 성향의 남초 집단이었다. 거기는 시골 외진 곳에서 기숙해야 하는 곳이라 여교사를 구하기가 힘든 곳이었는데, 그렇게 여교사가 새롭게 지원을 오면 남직원들 사이에서 온갖 품평이 이어졌다. 그리고 밤에 회식을 하게 되면 꼭 이성과 관계된 이야기가 나오고, 거기서 아직 성관계 경험이 없는 나에게 "곧 있으면 대마법사 찍겠네" 하는 말만 몇 번을 들었는지 모른다.


나는 그러한 학창 시절과 군대생활, 두 번째 직장에서의 생활 때문에 또래 남성 집단에서 배제되었고, 아는 형들과 그런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네가 사회생활을 많이 안 해봐서 그래"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내가 문제가 있는 건가 하고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했고, 나도 그러한 마초적인 남성 집단 안에서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 당구와 축구도 배우고, 야구 프로그램도 보고, 억지로 술도 많이 마셨다. 하지만 나에게 맞지 않는 멍에를 둘러싸고 있는 느낌이라 그 집단과 완전히 동화되긴 어려웠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은 여성 혐오와 마초이즘이 마치 공기와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인간성이나 관계 능력이 개차반이어서가 아니라 여혐을 함께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제되고 소외되는 그런 집단이었으니까......

그래도 내가 몸담았던 나의 대학교 학과와 첫 직장은 참 청정구역이었던 것 같다. 대학교 선배들의 불필요한 권위의식도 거의 없었고, 여성 성적 대상화나 음담패설 같은 것도 없었다. 성별과 학번과 나이와 학년을 가리지 않고 같은 인간으로 관계할 수 있었던 게 참 좋았다. 첫 직장은 유치원이었는데, 거기는 여초 직장이니만큼 소수자인 남자로서 또 다른 불편함과 고충이 있었지만 그래도 남초 마초 집단에서의 외모 품평이나 비하 발언 문화는 현저히 적어서 나한테는 그 공간 안에서 함께 숨쉬기가 더 편하였다.


요즘 학내 성폭력, 군, 검찰 내 성폭력 등 다양한 일반 집단 안에서 성폭력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난 그걸 보면서 내가 가장 마음을 다해 몸담았던 대학시절과 첫 직장과 현 직장이 여성혐오나 마초이즘 문제에 대해서 자유롭고 구성원들 간에 인간 대 인간으로 관계할 수 있는 공동체라는 것에 대해 한없이 감사함을 느낀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된다는 사명감도 예전에 비해 더 강하게 갖게 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