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선동자 Feb 15. 2020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다른 건 과연 본능 때문일까?

사회적인 성 고정관념. 껍데기는 가라!

성별에 따른 타고난 본능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대화를 하게 됐는데, 그 사람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아들과 딸을 낳아 키우는데 전혀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아들은 남자 짓을 하고 여자는 여자 짓을 한다. 어린애들일지라도 성별에 따른 차이가 있을 진데 성별에 따른 본능적인 차이를 왜 부정하는지 모르겠다."


과연 가르치지 않았을까?

내 인스타그램에 적어뒀던 글을 인용해본다.


"아들과 딸이 있습니다. 두 아이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딸인지 아들인지에 따라 다른 기대를 받습니다. 두 아이들은 엄마의 배가 만삭이 될 때쯤에 성별에 따라 다른 선물을 받습니다. 곧 태어날 딸아이는 공주라며 분홍빛에 레이스가 달린 아기 옷을 선물로 받고, 곧 태어날 아들아이는 왕자라며 파란색의 심플한 아기 옷을 선물 받습니다.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들과 딸은 똑같이 민머리로 태어났지만, 딸아이는 민머리를 드러내면 남자아이로 오해를 받는다고 엄마가 예쁜 장신구가 달린 모자를 씌워줍니다. 그렇게 아이가 태어나고 1년이 지났습니다. 돌잔치를 하는데 돌잡이를 할 때 아들과 딸이 다른 옷을 입고 다른 물건을 선택합니다. 시간이 지나 머리카락이 점점 자라 눈 앞을 가리고 땀범벅이 되는데, 딸에게는 머리핀을 꽂아서 앞머리를 정리해주는데 아들에게는 이발소로 데려가서 머리카락을 짧게 깎습니다. 아이가 좀 더 자라서 장난감을 사러 마트에 가면, 여아 완구 코너에는 분홍빛 가득한 소꿉놀이도구 인형놀이 화장놀이 장난감들이 있고, 남아 완구 코너에는 퍼런 로봇 자동차 총 칼과 같은 무기 장난감들이 있습니다. TV를 틀어서 만화영화를 보면 남자 캐릭터들은 진취적이고 리드하고 하고 말썽도 부리는 역할로 나오지만, 여자 캐릭터들은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고 말과 행동을 조신하게 하는 역할로 나옵니다. 아이에게 동화책을 들려주려고 하니 주인공이 전부 남자입니다. 어린이집에 가니 모두 여자 선생님이 계십니다."


이런 성장과정에서 과연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건 본능일까? 사회로부터 길들여진 걸까? 나는 사회로부터 길들여진 게 비중이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한다. 남아와 여아가 본능적으로 다르다고 하는 연구들을 보면 기본 전제부터가 중립적이지 않다. 위에 나열한 부분 말고도 훨씬 더 많은 환경 차이가 존재하는데 이 차이가 없는 환경에서 연구를 하지 않았다. 이미 엄마 뱃속에서부터 어른들의 기대에 물들여지고, 태어난 이후에도 일상이 전부 성 고정관념에 물들여진 사회를 온몸으로 보고 듣고 겪은 아이를 놓고 실험을 하면 당연히 결과야 뻔하지 않을까?


"난 성별과 무관하게 아이를 키웠는데 왜 아들은 남자 짓을 하고 딸은 여자 짓을 하지? 역시 아들과 딸은 본능적으로 달라" 하고 말하는 부모님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실상을 보면 아들은 머리 짧게 자르고 딸은 머리 기르고 묶어주는 건 기본이고, 장난감과 소품의 색깔도 다른 경우가 많았으며 아들에게 치마나 레이스 달린 옷을 입혀 본 경우도 없었다. 애초에 부모님들이 성별과 무관하게 아이를 키웠다고 하는 육아 과정을 진짜 객관적으로 따져봤을 땐 무관하게 키우지 않았다. 여태 완전무결까진 아니더라도 '진짜로 이 가정은 아이에게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게끔 가정환경을 조성해줬구나' 하고 생각되는 가정은 아직 단 한 곳도 만나보지 못했다.


"얘들아 분홍색은 여자들이 쓰는 색이야"라고 가르치는 부모는 요즘엔 거의 없다. 근데 밖에 나가보면 대다수의 여자아이들은 분홍색 차림을 하고 있고 남자아이들 중에 분홍색 차림을 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든, 그 환경을 보고 익숙해진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분홍색은 여자들이 쓰는 색이구나, 남자들은 쓰는 게 아니구나'라고 생각한다.


여자와 남자의 근본적이고 본능적인 차이는 몽정, 월경, 출산과 같이 생식기 구조의 차이로 인한 것과 성 호르몬 차이로 인해 일어나는 육체적 차이와 생리적 현상밖에 없다. 그 외의 겉으로 보이는 차이들(의상의 차이, 선호하는 색상의 차이, 머리카락 길이의 차이 등)은 전부 사회화된 결과물일 뿐이다. 근데 어떻게 사회화가 되어 그렇게 차이가 생겨나는지는 생각을 깊이 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냥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같은 기준으로 대하고 키우면 된다. 성별을 따지기 이전에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대하라는 것이다. 머리가 자라서 불편할 때 남자아이는 자르고 여자아이는 핀 꽂아주는 등 차별대우를 하지 말고 둘 다 머리를 길러주면 된다. 여자아이니까 인형을 좋아할 거라 생각하고 인형 선물을 하거나, 남자아이니까 로봇을 좋아할 거라 생각하고 로봇 장난감을 선물해줄 게 아니라, 그 아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아이에 대해 애정 어린 관심을 가지고 그 아이가 진정 좋아하는 선물을 해주면 된다. 이렇게 여자아이니까, 남자아이니까 하고 아이를 다르게 대하지 말고, 아이의 개인 특성에 맞추어 대하면 된다. 그러면 아이들이 껍데기에 불과한 사회적 성 고정관념에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행동하여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진 신세대로 자라날 수 있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어린 시절 머리를 잘릴 때의 기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