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학 전 아동은 감각이 상당히 예민해서 조그마한 자극도 크게 느낀다
어린 시절엔 머리 자르는 순간 자체가 짜증을 불러일으켰던 걸로 기억한다. 우선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답답할 수밖에 없는 어린 시절에 꼼짝 말고 오랜 시간 동안 앉아있어야 한다는 점이 힘들었다. 그리고 잘린 머리카락이 얼굴과 온몸에 덕지덕지 붙어서 따갑고 가렵게 만들어도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는 상황이, 마치 누군가가 내 몸을 꽁꽁 묶어놓고 바늘 갖다가 얼굴과 몸 구석구석을 찌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점점 머리를 자르면서 흉해지는 내 모습을 거울을 통해 계속 마주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 날카로운 가위소리와 바리깡 돌아가는 소리가 온몸을 소름 돋게 만들었다.
실제로 많은 남자아이들이 머리를 잘리면서 비슷한 생각을 한다. 어른들 입장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이발을 아이들은 그렇게 싫어하는 걸까? 우선 아이는 이성이 덜 발달했기 때문에, 감각에 많은 부분을 의존한다. 그래서 몸의 반응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으면 불쾌함과 불안함을 느낀다. 한마디로 본능에 충실해야 잘 큰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는 감각이 예민해서 조그마한 자극도 엄청나게 크게 느낀다. 그런 아이한테 머리 자르는 모든 과정은 공포감과 불쾌감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움직이지 못하게 몸을 압박하는 어른의 손길, 거친 파장의 바리깡과 가위질 소리, 잘린 머리카락이 주는 통증, 거울을 통해 보이는 자기 자신의 흉한 모습, 자신의 신체를 함부로 대하는 어른에 대한 증오심과 수치심 등등...... 그리고 결정적으로 친한 사람이라 해도 내 몸을 불쾌하게 하는 신체 접촉은 싫어할 수밖에 없는데,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자기 몸을 이래라저래라 하고 맘대로 만지고 불쾌하게 하면 기분이 좋을까?
하지만 남자아이에 대한 이발은 너무나도 일반화되어있는 부분이라, 어느 누구도 큰 문제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남자애가 머리를 자르지 않으면 뭔가 잘못된 것처럼 생각한다. 오래전에 머리를 자르지 않고 키우는 3살 아들의 사진을 인터넷에 공유했다가 댓글 테러를 받은 부모가 있다. 남자애 머리 길러주면서 키우면, 나중에 성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온다는 둥, 주변의 놀림거리가 돼서 자존심의 상처를 입는다는 둥, 애를 망치려고 작정을 했냐는 둥 십중팔구는 댓글로 우려의 목소리를 표현했다. 하지만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 그 아이를 살펴보니, 사람들이 우려했던 바와는 전혀 다르게, 오히려 활달하게 지내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이해심과 배려심이 가득한 아이로 자랐다. 그 아이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머리를 자르지 않고 자라왔던 남자아이들을 관찰해본 결과, 일반적인 아이들보다 더 주도적이고, 이해심과 배려심이 깊고, 감성이 풍부한 경향이 컸다. 당연한 결과다. 머리 길이가 성별과 관련 있는 것도 아니고, 원래 자라는 게 맞는 건데, 머리가 길다고 성 정체성의 혼란이 오고, 잘못한 거 하나 없는데 사람들이 비아냥거린다고 자존심이 추락할까? 오히려 자연스럽게 크고 자신을 믿어주는 부모에 대한 믿음 속에서 큰 아이가 더 잘 자라는 법이다.
머리 자를 때마다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남자아이를 보면서, 굳이 잘라야 될까? 하는 의문을 한 번쯤은 가져봤지만, 남들과 다른 모습을 하고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아이가 걱정이 돼서 아픈 가슴을 움켜쥐고 아이의 머리를 잘라주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아이의 입장에서, 머리가 길어서 마주하게 되는 불편함보다, 머리를 자르면서 느끼는 불편함이 더 크다. 머리 기르는 게 죄도 아니고, 아이의 성장에 있어서 자연스러운 과정이니, 아이가 머리 자르기 싫어한다고 한숨을 내쉴 게 아니라, 아이의 바람직한 성장에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머릴 길러주는 게 어떨까?